"회의는 없다" CEO가 축구장만한 사무실 다니며 직원과 대화로 업무 결정

입력 2017.12.30 03:07

HBR 선정 '올해 최고 경영자' 파블로 이슬라 인디텍스 CEO
매장·공장·본사 간 끊임없이 정보 교환… 디자인·물량 조절에 실시간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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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라 화보 2 인디텍스 본사 3 벨기에 브뤼셀의 자라 매장 4 스웨덴 솔나의 오이쇼 매장 5 인디텍스 공장 6 본사의 인디텍스 디자이너 7 인디텍스 물류센터
미국 하버드대가 발간하는 경영 저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는 매년 최고 성과를 낸 최고경영자(CEO)를 선정한다. 올해 1위에 오른 파블로 이슬라(Isla·53)는 12년간 인디텍스(Inditex)를 세계 최대 의류 업체로 키워낸 베테랑 CEO다. 인디텍스는 2주마다 매장에 새 옷을 선보이는 '패스트패션'으로 세계 의류업계 판도를 바꾼 '자라(Zara)'의 모회사다. 이슬라 CEO는 내수 중심이었던 인디텍스의 해외 시장 진출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HBR은 평가했다. 이슬라 CEO의 재임 기간 동안 인디텍스의 매출은 2005년 67억4100만유로(약 8조6000억원)에서 지난해 233억유로(약 30조원)로 245%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매장 수는 3000개에서 7300개로 늘었다.

인디텍스는 지난 1963년 아만시오 오르테가(Ortega)가 스페인 라코루냐에 세운 의류 공장에서 출발했다. 목욕가운 등을 팔아 목돈을 모은 오르테가 창업자는 1975년 아내와 함께 옷가게 자라를 열었다. 이후 사업이 커지자 1985년 모회사 인디텍스(Industria de Diseño Textil·섬유디자인공업)를 설립했다. 현재 인디텍스는 자라 외 버쉬카·풀앤베어·마시모두띠·자라홈 등 총 8개 의류·소품 브랜드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일찍이 기술의 중요성을 깨달은 오르테가 창업자는 1980년대 전산 전문가인 호세 마리아 카스테야노를 고용해 유통 시스템을 구축했다. 1997년부터 인디텍스 CEO를 지낸 카스테야노는 2000년대 초반 인디텍스의 성장세가 주춤하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슬라 CEO는 2005년 외부 인사의 소개로 CEO가 됐다. 검사 출신인 이슬라 CEO는 스페인 포풀라르 은행(현 산탄데르 은행) 법률팀 부장과 사무장을 거쳐 2000년부터 담배 회사 알타디스의 회장을 지냈다. 그는 인디텍스의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했고 기술과 매장에 집중 투자해 구매·생산·유통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였다. 그 결과, 인디텍스는 2010년 갭(GAP)을 제치고 세계 1위(매출 기준) 의류 유통업체로 올라섰다. 경영 성과를 인정받은 이슬라 CEO는 2011년 인디텍스의 회장이 됐다. 그는 인디텍스가 12년 연속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로 "구매와 생산이 본사 근처에서 이뤄지는 사업 모델, 매장 직원이 주도하는 생산 구조, 수평적 조직문화"를 꼽았다.

1. 의류 디자인부터 매장까지 단 2주

파블로 이슬라 인디텍스 CEO
스페인 인디텍스 본사에서 구상한 코트가 서울의 자라 매장에 진열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평균 2~3주, 길어야 4주다. 경쟁사인 포에버 21은 디자인부터 매장까지 최소 6주, H&M은 8주가 소요된다. 의류업계 평균은 6~18개월이다. 전통 의류회사에서는 디자이너가 새로운 의상을 구상하는 데 한 달 이상 걸린다. 이후 중국·방글라데시 등 아시아 소재 공장에서 제품을 만드는 데 수개월, 완성품을 배에 실어 전 세계 매장까지 운송하는 데만 추가로 한 달이 필요하다.

인디텍스가 이런 과정을 2주로 줄일 수 있는 비결은 제품 생산에 필요한 원단·재료의 60%를 본사에서 가까운 지역에서 확보하는 근거리 구매(proximity sourcing) 덕분이다. 이슬라 CEO는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등에서 원단을 구매하기 때문에 소비자 요구에 제때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품 생산도 본사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인디텍스와 협력하는 7000여 개 공장의 60%가 스페인·포르투갈·터키·모로코에 있다. 원단 공급부터 생산까지 본사 근처에서 해결, 거리로 인해 발생하는 불필요한 물류 과정을 생략해 속도를 높인 것이다. 완성품은 대형 트럭에 실려 유럽 각국 매장에 24시간 내에 도착한다. 북미·아시아 등은 비행기로 48시간 안에 배송한다. 스페인의 3대 경영대학원 중 하나인 IESE경영대학원의 호세 루이 누에노 교수는 "인디텍스 사업 모델은 생산과 판매 간 간격을 최대한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2. 매장에서 실시간 수요·디자인 예측

이슬라 CEO는 "우리 사업 모델은 전통 의류업계와는 정반대"라면서 "제품을 미리 만든 뒤 고객 반응을 살펴보는 대신, 지금 고객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파악한 후 제품을 디자인해 만든다"고 말했다. 패스트패션이 등장하기 전 의류업계는 계절별로 1년에 4번 신상품을 선보였고 제품의 60~80%를 한 계절 앞서 디자인하고 생산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인디텍스가 미리 준비하는 제품 비중은 전체의 15~20%에 불과하다. 나머지 80%는 그때그때 만들어 유연하게 대응한다.

인디텍스가 이처럼 실시간 대응이 가능한 이유는 매장과 공장, 본사 간 정보를 끊임없이 교환하는 '통합 공급망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이다. 이슬라 CEO는 "(이 시스템에서) 매장 직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매장 직원들은 현재 잘 팔리는 상품, 신상품에 대한 고객 반응, 유행하는 의상 정보 등을 본사에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본사와 공장은 들어온 정보를 토대로 일주일 후 인기를 끌 옷을 디자인하거나 팔리지 않는 옷의 색상을 바꿔 출시한다. 매장 점장들은 각 매장에서 취합한 정보를 토대로 700여 명의 본사 디자이너와 상의해 신제품을 디자인한다. 구상과 스케치, 디자인은 하루 만에 끝나고 패턴디자이너가 이틀 내로 시제품을 완성한다. 시제품의 절반 이상은 재단과 공정을 본사에서 마친 뒤 유럽과 모로코 공장으로 보내진다. 실시간 재고 현황을 제공하는 공급망 시스템 덕분에 인디텍스는 배송 직전까지 세계 7300여 개 매장에 보낼 물량을 조정할 수 있다. 이슬라 CEO는 "인디텍스의 강점은 속도가 아니라 정확도"라면서 "고객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통합 생산·물류 시스템을 구축해 제품을 제공하는 데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인디텍스는 지난해 매출의 6.9%인 16억유로를 기술과 매장에 투자했다.

인디텍스 매출
3. 소량 생산으로 재고 최소화

이슬라 CEO는 정교한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다양한 제품을 소량 생산해 재고를 최소화한다. 프랑스 은행 소시에테제네랄에 따르면 인디텍스 대표 브랜드 자라의 재고율은 15%로, 경쟁사 H&M의 재고율(45%)보다 낮다. 개별 제품은 실시간 수요 예측을 통해 생산을 늘리거나 중단한다. 소시에테제네랄은 "자라는 브랜드라기보다 패션 트렌드에 신속하게 적응하는 카멜레온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이슬라 CEO는 아무리 잘 팔리는 제품도 크기별로 6만 개 이상 만들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일례로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손빈이 입은 자라 재킷이 품절됐을 때도 자라는 해당 제품의 총생산량을 2만5000개로 제한했다. 대신 같은 재킷의 디자인이나 색상을 조금 변형시킨 제품을 출시했다. "디자인은 진화해야 한다, 반복하면 안 된다"는 게 그와 자라 디자인팀의 철학이다. '지금 구매하지 않으면 같은 제품을 구할 수 없다'는 희소성과 2주라는 짧은 상품 교체 주기 때문에 소비자는 자라 매장을 더 자주 찾고, 제품은 대부분 정가로 팔린다. 누에노 교수는 "자라 고객의 매장 방문 횟수는 업계 평균의 4~5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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