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소프라노 칼라스가 부활시킨 종교전쟁에 희생된 연인의 哀歌

    • 박종호 풍월당 대표

입력 2017.12.16 03:04

CEO Opera <5> 벨리니 '청교도'

英 청교도파 vs 왕당파적으로 나뉜 청춘들
고통과 슬픔의 300년 같았던 석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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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니의 오페라 ‘청교도’는 목소리를 악기처럼 사용해 아름다움과 기교를 강조하는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힌다. 난이도가 워낙 높은데다 벨칸토 오페라가 잊혀졌던 20세기 초까지 공연 횟수가 극히 적었지만, 명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명연으로 명사들이 꼭 봐야할 오페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마드리드 왕립극장
독일 영화감독 베르너 헤어초크가 만든 영화 '피츠카랄도(Fitzcarraldo·1982)'는 남미를 배경으로 한다. 아마존에서 활동하던 독일인 사업가 피츠카랄도는 오페라 애호가이기도 하다. 그의 꿈은 밀림에 오페라하우스를 짓고 최고 테너 엔리코 카루소를 불러 공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업에 실패해 돈을 다 잃는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돈으로 당시 남미를 순회 중이던 이탈리아 오페라단의 1회 공연을 산다. 자신만을 위한 공연 단 한 번을 부탁하는 것이다.

아마존강을 지나는 배 위에서 공연은 시작되고, 피츠카랄도는 갑판에 홀로 서서 공연을 듣는다. 그때 흐르는 음악이 빈센초 벨리니(Bellini·1801~1835)의 오페라 '청교도' 중의 아리아 '사랑하는 이여, 그대에게 사랑을(A te, o cara, amor talora)'이다. 사업에 실패한 자가 혼자서 듣는 오페라. 결코 잊을 수 없을 장면이다. 오페라가 무엇이길래…. 오페라는 아무것도 아니다. 없어도 사는 데 상관없다. 하지만 오페라는 꿈이다. 인간은 꿈으로 살기도 한다. 그 남자는 이역만리 생활을 축음기로 오페라 듣는 것으로 견뎠고, 오페라하우스를 짓겠다는 꿈으로 현실을 이겨냈다.

종교 분쟁에 찢긴 사랑·결혼

시칠리아 출신 작곡가 벨리니는 34세의 짧은 생애에 오페라를 10편 썼다. 그중 마지막 작품인 '청교도'는 선율의 아름다움으로 첫손가락에 꼽을 만한 오페라다. 잉글랜드 내전이 벌어지던 164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영국의 기독교도는 두 종파로 나뉘어서 무지막지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오페라의 원제는 두 종파 이름을 딴 '청교도파와 왕당파'인데, 흔히 줄여서 '청교도'로 부른다.

무대는 청교도 군대의 요새다. 영주의 딸 엘비라는 오늘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사랑하는 아르투로는 왕당파 기사여서, 이제 적군이 된 그와 결혼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런데 등장하는 신랑이 바로 아르투로가 아닌가? 딸의 심정을 헤아린 아버지가 결혼을 허락한 것이다. 전장의 총성은 하루 동안 그치고, 전선을 넘어 결혼식이 열린다. 그때 신랑 아르투로가 들어오면서 부르는 아리아가 '사랑하는 이여, 그대에게 사랑을'이다. 이 노래는 그 자체로 무척 아름답지만, 그녀가 적군의 장교와 사랑을 이루는 상황까지 보고 나서 이어지는 곡을 듣는다면 감격은 소름이 돋을 정도다.

하지만 결혼식 직전에 신랑이 사라지는 사고가 일어난다. 아르투로는 적진인 청교도 요새에서 처형당한 찰스 국왕의 왕비가 이곳에 감금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왕비를 구해 달아난다. 신랑이 사라진 사실을 알게 된 엘비라는 충격을 받아 미쳐버리고 만다. 오페라의 2막은 엘비라의 '광란의 장면'인데, 현란한 성악 기교가 유명하지만, 실은 비탄에 빠진 처녀 연기와 가슴에서 우러나는 대사만으로도 관객의 가슴을 눈물로 적실 장면이다. 전쟁은 청교도의 승리로 끝나고 왕당파 장교들은 처형된다.

그런데 왕당파 가운데 살아남은 기사 한 사람이 목숨을 걸고 적진인 청교도 요새로 숨어든다. 여전히 엘비라를 사랑하는 아르투로다. 아르투로는 그녀가 정신착란을 일으킬 것이라고는 꿈에도 짐작하지 못했다. 그는 엘비라의 모습을 보고 절망한다. 엘비라가 아르투로에게 "우리가 헤어진 지가 얼마나 되었어요?" 하고 묻고, 그는 "석 달"이라고 답한다. 그러자 엘비라는 "아니에요. 삼백년이에요. 고통과 슬픔의 삼백년 동안 저는 매순간 당신만을 불렀어요" 하고 말한다.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함께하게 되지만, 그동안 받은 그녀의 고통은 관객의 눈시울을 적시기에 충분하다.

관용 모르는 사람들에게 경종 울려

지구상 종교는 저마다 '사랑'을 외치면서, 왜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은 그토록 미워하고 죽여 왔을까? 심지어 같은 신을 섬기면서도 왜 사람들은 자신과 해석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종파를 박해하고 죽였을까? 지금도 세계의 수많은 분쟁과 전쟁이 종교가 서로 달라서 벌어지는 것이다. 볼테르에 따르면 종교는 역사상 가장 관용을 베풀지 않았던 분야의 하나였다.

'청교도'는 자신의 신과 자신의 방식만을 강요하는 자칭 '종교적' 인간들에게 희생된 가련한 영혼들에게 바친 헌사(獻詞)다. 오페라는 늘 권력의 폭압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그리고 있다. 종교 권력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도 우리는 종교로, 인종으로, 지역으로, 학연으로, 노선으로 사람을 나누고 차별하며 살고 있다.

로마의 신을 강요받던 기독교인들이 로마 황제에게 종교 선택의 자유를 역설하며 올린 글이 호교서(護敎書)다. 여기에 이런 말이 나온다. "신을 선택하는 사람의 자유를 종교의 이름으로 빼앗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입니다. 신께서도 섬김을 강요받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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