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조7000억원 시장 잡자" 中 '광고계 아이돌' 키우기 전쟁

입력 2017.12.16 03:04

웨이보에 기업 홍보용 글·사진·동영상 게재… 기업화하는 '왕훙' 육성사업

중잉타오·모코·루한 3대 육성 회사에선 스타 50~100명씩 보유
180㎡ 촬영장에 안무연습실·녹음실 갖추고 혹독한 교육

베이징에 있는 왕훙 교육 회사 모코에서‘S급’ 으로 거듭나기 위해 초보 왕훙들이 훈련을 받고 있다. 이들은 회사에서 춤과 노래, 생방송 진행과 사진 촬영 등을 연습한다./모코
중국 광둥성 출신 샤오만디(小蠻弟·27)는 매일 아침 여행사·항공사·호텔 등이 보내는 수십통의 이메일을 받는다.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微博) 팔로어가 500만명이 넘는 덕분에 기업들이 자사 홍보글을 웨이보에 올려달라고 제안해오는 것이다. 2011년 IT 회사 시나웨이보의 포털 편집부 직원으로 입사했던 그는 취미로 웨이보에 여행지 사진을 올리다가, 2년 전 사표를 내고 지금은 웨이보에 글·사진을 올리는 것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샤오씨는 "기업 홍보 계약 1건당 약 10만위안(약 1700만원)을 받는다"며 "한 달에 10~15건의 계약을 체결하고 있으며 연 수입은 수십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른바 'A급' 왕훙으로 통한다.

샤오씨가 이렇게 '왕훙'으로 과감하게 전직할 수 있었던 것은 왕훙 전문 육성 기업의 지원 덕분이다. 샤오씨는 "하루에도 수십건씩 홍보 제안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홀로 일정과 계약을 관리하는 것은 무리였다"며 "주변에도 우연히 팔로어가 늘어난 직장인이 왕훙으로 전업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 등장한 왕훙은 3~4년 전까진 주로 개인 단위로 활동했다. '내 직업은 왕훙'이라 말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고, 대부분이 취미 활동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최근엔 샤오씨처럼 직업을 아예 버리고 왕훙 전문 기업과 계약을 맺어 전업으로 활동하는 왕훙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마치 한국에서 아이돌이 대형 연예기획사의 관리를 받아 연예 활동을 벌이는 것과 비슷한 구조다. 왕훙이 온라인에서 착용한 의상이나 사용하는 화장품이 1초에 수천개씩 팔리는 등 관련 시장 규모가 528억위안(약 8조7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급성장하자 왕훙 생태계 역시 기업화되고 있는 것이다.

1. 합자회사 만들어 전방위 지원

왕훙 생태계에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든 것은 2014년 무렵부터다. 인터넷 사용 인구가 7억명까지 늘어난 상황에서 소셜 미디어로 홍보 콘텐츠를 쉽게 퍼뜨릴 수 있는 인터넷 환경이 마련되자, 왕훙이 인터넷 공간에서 홍보한 상품 매출이 급증하는 사례가 속속 등장했다. 왕훙들은 5조2000억위안(약 855조원)에 달하는 중국 인터넷 시장에서 친근함과 전문성을 무기로 기업 광고보다 더 큰 파급력을 자랑했다.

왕훙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는 모델 출신 장다이(張大奕)를 꼽을 수 있다. 장씨는 2014년부터 왕훙 인큐베이팅(육성) 기업인 루한(如涵)과 함께 인터넷 쇼핑몰 타오바오에서 여성 의류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장씨는 홍보 콘텐츠 제작에 집중하고, 루한은 마케팅·재무·물류 등 제품 판매에 필요한 모든 기능을 대행해주는 게 핵심이다.

장씨와 루한이 함께 타오바오에 세운 쇼핑몰은 불과 8개월 만에 영업이익이 2억위안(약 329억원)을 돌파했으며, 타오바오 전체 매출 2위를 기록할 정도였다. 전문 모델이 추천하는 의류 상품이라는 데 매력을 느껴 장다이의 글을 읽는 수백만명의 팔로어가 그의 추천대로 상품을 구매한 덕분이다. 왕훙은 광고료를 받고 일방적으로 제품을 홍보하는 연예인과 달리 상품에 대한 전문성과 리뷰가 더해져 더 큰 설득력을 얻곤 한다.

루한은 이듬해 아예 합자회사를 설립해 장씨의 이름을 건 '장다이' 브랜드를 만들어 타오바오뿐 아니라 다른 플랫폼의 판매처 개척도 시도 중이다. 지난해 합자회사의 영업이익(4478만위안)은 루한의 영업이익의 2배에 달했다. 중국 최대 IT 기업 알리바바까지 루한에 3억위안을 직접 투자하는 등 외부 투자자도 속속 진입하고 있다.

2. '스타 왕훙' 육성 전문 회사 등장

장다이의 성공 이후 중국 내 연예기획사, 모델 에이전시 등은 왕훙 인큐베이팅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왕훙을 연예인처럼 적극적으로 육성, 기업 홍보 등에 활용해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다. 타오바오·징둥 등 인터넷 쇼핑 기업들은 왕훙이 TV 홈쇼핑 쇼호스트처럼 상품을 홍보해주는 생방송 프로그램(直播)을 개발 중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최근엔 왕훙들도 팔로어 수를 늘리려 혹독한 교육과정을 거친다. 예를 들어 중국 최대 왕훙 인큐베이터인 모코(MOKO·美空) 사옥 내부에는 180㎡(약 54평) 규모의 촬영장은 물론 안무 연습실, 녹음실까지 갖춰져 있다. 이곳에서 왕훙은 수개월에 걸쳐 소셜미디어 활용법, 사진 촬영 기술, 생방송 실전 훈련, 춤, 노래 등을 훈련받는다. 이후 각자의 방식으로 눈에 띄는 콘텐츠를 인터넷에 올려 팔로어 수를 늘리는 데 집중한다. 30분~1시간 안에 빠르게 콘텐츠를 작성하는 게 교육의 목표다.

현재 왕훙 업계에선 중잉타오(中櫻桃), 모코(美空), 루한(如涵)이 3대 왕훙 육성 회사로 꼽힌다. 거액의 계약금을 주고 스타 왕훙을 외부에서 영입하거나 직접 육성하는 방식으로 각자 약 50~100명의 스타 왕훙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과 홍보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한다. 이들은 한국·일본 연예기획사의 관리 체계를 모방해 왕훙들에게 술집·클럽 출입을 금지하는 등 사생활까지 관리한다.

한 달 전 왕훙 활동을 시작한 시유이(秀伊·20)는 "팔로어 수가 1만명 미만인 초보 왕훙 시절에는 이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 기업들이 들어와 홍보 의뢰를 한다"며 "어린이 간식부터 화장지, 백화점 세일 홍보까지 광고 범위가 너무 넓지만, 수입을 얻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왕훙 인큐베이터의 도움을 받아 팔로어 수 10만명을 넘긴 유잉(昱穎·31)은 "인지도가 일정 수준에 올라서면 자기 캐릭터에 맞는 상품을 골라가며 홍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3. 콘텐츠 제작에 대규모 자본 투입

'S급 왕훙'이 콘텐츠를 제작할 때 파급력을 높이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기도 한다. 왕훙 세계에서 우상처럼 여겨지는 파피장(Papi醬)은 최근 전거(眞格), 뤄지스웨이(邏輯思維), 싱투(星圖) 등 4개의 투자사로부터 1200만위안(약 20억원)을 투자 받았다. 팔로어가 1000만명에 육박하자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해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시도다. 그는 2년 전부터 연애, 결혼, 직장 생활 등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 일반인이 공감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를 망가진 표정으로 비속어를 써가며 거침없이 내뱉어 큰 인기를 얻었고 있다.

중국의 왕훙 생태계가 기업화하면서 한국인 인터넷 스타들이 중국 업체들과 손잡고 중국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재구 한중미디어 연구소장은 "중국 왕훙 시장은 1인 토크쇼 형식의 흥미 위주 동영상이 대부분이고 90%가 오락에 집중돼 다양성이 떨어진다"며 "스토리가 있는 국내 1인 방송이 진출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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