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버블 때 휘청한 100년 기업… 'GPS 단 건설기계' 아이디어로 대박

입력 2017.12.16 03:04

저성장 돌파한 일본 기업 <8> 세계 2위 건설기계 업체 고마쓰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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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건설장비 제조업체 고마쓰는 한때 고전했으나, 위치 추적용 통신 칩을 제품에 내장해 도난을 막고 원격 점검도 가능하게 한 혁신 덕택에 급성장했다. 사진은 지난해 독일 뮌헨에서 열린 바우마 건설중장비페어에 전시된 고마쓰의 장비들. /블룸버그
미국 캐터필러에 이어 세계 2위 글로벌 건설기계 제조사인 고마쓰제작소(이하 고마쓰)가 최근 재조명받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정보기술(IT) 거품 붕괴로 경영 위기에 빠진 후 단기간에 실적을 회복했을 뿐 아니라 현재 산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총아로 일본은 물론 세계적인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IT 거품 붕괴 때 110개 비주력사 정리

1921년 설립된 고마쓰는 전신인 고마쓰철공소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올해로 딱 100년 된 기업이다. 고마쓰의 경영 위기는 1960년대 캐터필러의 일본 진출에 맞서 약 40년 동안 추진된 사업 다각화가 실패한 영향이 컸다.

고마쓰는 1960년에 실리콘 제조를 목적으로 고마쓰전자금속을 설립한 후 액정 패널 제조 장치 사업에 뛰어드는 등 1990년대까지 IT 제조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왔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들어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를 비롯한 IT 관련 시장이 위축됐고, 급기야 2001년에는 IT 버블이 터졌다. IT 부문 실적 악화로 고마쓰는 2002년 3월 결산(2001년도)에서 132억엔의 영업 적자를 내면서 경영 위기에 봉착했다.

고마쓰의 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위기가 한창이었던 2001년 취임한 사카네 마사히로(坂根政弘) 사장은 2003년까지 연평균 300억엔의 고정비 삭감을 목표로 대규모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고마쓰실리콘아메리카 등 IT 관련 자회사를 중심으로 전체 계열사의 3분의 1 수준인 110개 비주력사를 정리했다. 또 이 과정에서 전체 사원의 약 14%인 2800여 명을 퇴직 또는 전직시켰다. 고마쓰는 이듬해 결산에서 332억엔의 흑자 전환으로 일단 위기에서 벗어났다. 2017년 3월 현재 고마쓰 전체 계열사는 182개이다. IT 버블 붕괴 전에 비해 축소되었지만, 종업원 수는 4만7200명으로 위기 전 2배 이상 수준으로 증가했다.

제조업의 서비스화: 콤트랙스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단기간에 경영 위기를 극복한 고마쓰가 주목받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건설 및 광산기계 최강 경쟁자 캐터필러를 능가하는 지속적인 수익력 때문이다. 고마쓰의 영업이익률은 2012년을 제외하면 2006~2016년 캐터필러를 앞질렀다. 2000년대 초반 뜻하지 않게 개발한 콤트랙스(KOMTRAX·기계 가동 관리 시스템)라는 차량 관리 시스템 덕택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도난당한 건설기계 등이 현금자동지급기나 패밀리레스토랑, 수퍼마켓 절도에 이용되는 사례가 빈번했다. 2002~2003년 2년 동안 101건에 이를 정도였다. 이에 대응하려 개발한 것이 콤트랙스다. 건설기계에 위성항법장치(GPS) 안테나와 통신 시스템을 부착해 위치 정보는 물론 건설기계 내에 부착된 각종 센서와 컨트롤러가 생성하는 데이터 등 각종 정보를 원격 송수신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렇게 모인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고객과 고마쓰 판매 대리점에 무상 제공된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는 사물인터넷(IoT)을 이용한 제조업의 서비스화가 고마쓰에서 실현된 것이다. 콤트랙스는 2001년부터 표준 장비화되어 10년 만인 2011년에 21만대의 건설기계에 적용됐다.

고가의 건설기계는 매입 가격보다 운용 비용이 3배에 달한다. 고객 입장에서는 가동률을 높이고, 고장률을 낮추고, 도난당하지 않아야 한다. 콤트랙스는 이 세 가지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고 있다. 건설기계 원격 조종을 통해 엔진을 멈추게 할 수 있어 도난이 예방되고, 혹시 도난당했더라도 추적이 가능해 고객의 자산을 지킬 수 있다. 기계 엔진 이외의 각 부분에 부착된 센서 등에서 얻은 정보를 통해 건설기계의 가동 상황을 알 수 있어 가동률을 높일 수 있다. 보수 시기를 예측할 수 있어 건설기계 운용의 효율성도 증가한다.

건설기계 렌털 회사와 고마쓰의 공동 연구 결과 콤트랙스 이용 전 건설기계 가동률은 40%인데 반해 이용 후 가동률은 8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건설기계의 운용 및 보수 등의 사용 이력들도 콤트랙스에 축적되어 중고 건설기계 거래 시 이용된다. 중고 자동차를 거래할 때와 마찬가지로 사용 이력이 없는 중고 건설기계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고마쓰에 대한 고객 충성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전체 매출의 80%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하는 고마쓰의 경우 글로벌 차원의 건설기계 운영 정보를 바탕으로 수급 계획을 세워 안정적인 실적을 거둘 수 있었다. 고마쓰는 2012년도부터 2015년도까지 4년간 매출이 연평균 11% 이상 축소되었지만, 영업이익률은 약 12%에 이르는 높은 수준을 유지해 왔다.

압도적 1위 추구: 단토쓰 프로젝트

콤트랙스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많은 건설기계 정보를 축적하고 분석해 이를 실시간으로 고마쓰나 납품 업체, 판매 대리점, 고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고마쓰의 건설기계가 세계 곳곳에 최대한 많이 공급되도록 상품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이를 위해 추진된 것이 단토쓰 프로젝트다. 단토쓰는 한자인 '단연(斷然)'과 영문 'Top'의 합성어다. 단연 선두 즉, 압도적 1위를 추구하는 고마쓰의 상품 개발 전략이다.

단토쓰 프로젝트는 사카네 사장 취임 당시 추진했던 구조조정과 궤를 같이한다. 버블 붕괴로 일본 내 건설·토목 투자가 급감하면서 건설 기기 수요가 크게 줄었다. 사카네 사장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상품 경쟁력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고 인식, 150개 기본 상품군과 750개의 세부 기종을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모델을 바꾸는 데 드는 비용을 줄이고, 매출 기여도가 높은 상품을 중심으로 개발 인력을 재배치함으로써 개발 효율성을 높였다. 이 과정에서 개발된 단토쓰 상품은 제조 원가를 10% 이상 낮추면서도 경쟁사들이 적어도 3년 이상 따라올 수 없는 선진성을 가졌다. 또 환경과 안전, 정보통신기술(ICT)로 특화된 것이었다.

환경 측면에서는 2008년에 내놓은 세계 최초 하이브리드 유압 쇼벨이 대표적인 단토쓰 상품이다. 이전 기계보다 25% 정도 연비를 개선했다. ICT 측면에서는 2005년 남미의 칠레 북부 광산에서 세계 최초로 도입된 무인 덤프트럭 운행 시스템(AHS·Autonomous Haulage System)이 대표적인 단토쓰 상품이다. 이 시스템에는 고정밀 GPS, 장애물 탐지 센서, 각종 컨트롤러, 무선 네트워크 등 최첨단 ICT 기능이 탑재되어 중앙관제실에서 트럭의 운행을 관리한다.

최근 일본의 건설·토목 업계는 노동력 자체의 감소뿐 아니라 숙련 노동자가 급격히 축소되면서 건설 현장의 안전성과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고마쓰는 이러한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 2015년에는 '스마트 건설' 솔루션 사업을 개발했다. 드론, 3D 레이저 스캐너, 스테레오 카메라 등 각종 ICT 기술을 이용하여 측량·설계·시공·관리에 이르는 전 프로세스를 관리한다. 단토쓰 상품은 고마쓰 전체 매출에서 5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성공적인 프로젝트라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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