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품 올해 10개 쏟아내 흑자로… "하자 0.01% 가능성도 없애야"

입력 2017.12.16 03:04

세계 2위 CPU 회사 AMD 부활 주역… 리사 수 CEO

1995~2007년 미국 IBM에는 리사 수(Lisa Su)라는 대만계 여성 엔지니어가 있었다. 수는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전기공학 박사로 반도체 논문 40편 이상을 발표했고, 30대 나이에 IBM 반도체 연구·개발(R&D)센터 부사장에 올랐다. 그는 '최고 반도체 엔지니어'라는 타이틀을 가졌지만, 마음속으로는 최고경영자(CEO)라는 더 큰 목표를 갖고 있었다. 2012년 세계 2위 CPU(중앙처리장치) 회사 AMD(어드밴스드 마이크로 디바이스)는 구조 조정 후유증과 25억달러(약 2조7300억원)에 가까운 부채로 파산설이 돌았다. 당시 니콜라스 도노프리오 AMD 이사회 이사는 수를 AMD의 구원투수로 영입했다. 그는 IBM 근무 시절에 수의 멘토였다.

수는 AMD 글로벌 비즈니스 사업부장으로 입사한 후 탁월한 사업 수완을 발휘했다. 경쟁사인 인텔이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비디오 게임기용 CPU·GPU(그래픽 처리 장치) 시장을 개척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2014년 10월 AMD는 45년 역사상 '최초 여성 CEO' 임명이라는 결단을 내렸고 수에게 회사의 미래를 맡겼다. 수 CEO는 "우리는 다른 누군가(세계 1위 CPU 회사 인텔)의 그림자 속에서 스스로를 정의하지 않는다"며 "제품으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그는 2015년과 2016년 신제품 개발을 직접 진두지휘하며 반전 타이밍을 노렸다. 그리고 올해 10종 이상의 신제품을 한꺼번에 쏟아내며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지난 3분기 매출(16억4000만달러)은 2014년 10월 리사 수 취임 후 최고를 기록했다. 취임 후 10분기 연속 계속되던 영업적자도 올 2분기 흑자로 돌아섰고 3분기에는 1억2600만달러로 대폭 늘어났다. 죽어가던 AMD를 다시 살린 수 CEO의 전략은 무엇이었을까.

1. 신제품: 반값 CPU로 시장 흔들다

시장조사 업체 IDC에 따르면 2007~2016년 사이 AMD의 PC용 CPU 시장점유율은 23%에서 10% 밑으로 추락했다. 서버용 CPU 시장점유율은 1% 미만이었다. 수 CEO는 시장 흐름을 바꾸기 위해선 결국 제품으로 승부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다행히도 AMD에는 실력 있는 엔지니어가 다수 포진해 있었다. 스티브 잡스 애플 공동 창업자가 아이폰용 칩 개발을 위해 영입했던 IBM 출신 마크 페이퍼매스터, 애플의 레티나 디스플레이 생산라인을 담당했던 라자 코두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 인재들을 동원해 신제품 개발에 들어갔다.

수 CEO는 5세 때부터 통계학자였던 아버지로부터 퀴즈를 푸는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10세 무렵에는 동생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 차를 분해하면서 엔지니어로서의 감각을 익혔다. 30세에는 루이스 거스트너 전 IBM 회장의 기술고문으로 근무하면서 CEO의 의사결정과 판단력을 어깨너머로 배웠다. 그는 2016년 4월 AMD 엔지니어들과 수시로 전화하고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미 텍사스주 오스틴 사업장에서 신제품 개발 상황을 점검했다. 그런데 그가 인도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엔지니어들은 개발 중이던 신제품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수 CEO는 자신이 돌아갈 때까지 4개의 엔지니어팀이 브레인스토밍(자유 토론)을 통해 해결책을 찾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오스틴 실험실에 도착한 다음 "실패는 우리의 선택지에 없다"면서 반드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MD 엔지니어들은 결함이 제품 성능에 미치는 영향이 0.01% 이하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문제없이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이렇게 개발된 신제품이 바로 올 3월 출시된 고성능 데스크톱·노트북용 CPU '라이젠(Ryzen)'이다. 라이젠(최고급 기준 499달러)은 동급 인텔 CPU(1089달러)와 성능은 비슷하면서도 가격은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수 CEO는 "내년 상반기에 HP, 레노버, 델이 라이젠이 들어간 제품을 내놓으면 AMD의 라이젠 관련 매출은 50% 이상 늘어날 것"이라며 "PC용 CPU 시장점유율을 10%대 후반~20%대 초반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했다.

2. 전략: PC 대신 새 먹거리 개척

AMD는 지난 2012년 수 CEO가 합류할 당시 회사 매출의 90% 이상이 일반 PC와 그래픽 칩에서 나왔다. 반면 글로벌 PC 시장은 2012년 3억5000만대에서 올해 2억5000만대 수준까지 쪼그라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시장과 함께 회사가 몰락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수 CEO는 AMD가 갖고 있는 강점을 냉정하게 되돌아봤다. 그러면서 고성능 CPU와 고성능 GPU를 모두 만들 수 있는 유일한 회사는 AMD뿐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때마침 소니, 마이크로소프트(MS), 닌텐도 같은 비디오 게임기 회사는 CPU 외에 고해상도 그래픽 구현을 위한 GPU가 필요했다. IBM 근무 시절 소니와 비디오 게임기용 칩을 개발했던 수 CEO는 전 직장의 경험을 틈새시장 공략에 활용했고, 오늘날 AMD의 효자 사업으로 키웠다.

수 CEO는 CPU를 넘어 GPU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래서 2015년 그래픽 칩 부문을 라데온 테크놀로지 그룹으로 확대 개편하고 인력을 대폭 강화했다. 라데온 테크놀로지 그룹에서 근무하는 인력은 3200명 수준으로 조직 개편 전보다 60%나 늘었다. 수 CEO가 투자를 확대한 GPU는 올 들어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AMD가 지난 7월 선보인 GPU '베가(Vega)'는 애플의 PC 신제품 '아이맥 프로'에 들어갔다. 올해부터 구글 클라우드에도 라데온 GPU 기술을 적용한다. 여기에 세계적 광풍이 불고 있는 가상 화폐 '비트코인'이라는 호재도 맞았다. 비트코인을 채굴하려면 암호를 풀기 위해 고성능 '채굴기'가 필요한데, 채굴기 제작을 위해 GPU가 필요하다. AMD는 올 3분기 아마존웹서비스(AWS)와 텐센트에 제품을 공급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3. 협력: 비즈니스 세계엔 적이 없다

수 CEO는 사업을 위해서는 철저히 실리를 추구하는 합리주의자다.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례로 AMD는 지난달 자사 GPU를 인텔이 만드는 노트북용 칩에 공급한다는 내용의 파트너십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PC용 CPU 시장에서 수십 년간 경쟁해온 두 회사의 협력에 반도체 업계는 박수를 쳤다. AMD는 인텔과의 전략적 협력으로 GPU 시장점유율을 높일 기회를 잡았으며, 인텔은 GPU 회사 엔비디아를 견제하는 수단으로 AMD를 활용할 수 있다.

AMD는 이번 달 퀄컴과의 협력도 발표했다. 서버 칩 시장에서는 경쟁 관계이지만 퀄컴의 통신 칩을 활용해 노트북 시장을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 CEO는 "우리는 당장 오늘의 매출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향후 수년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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