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외환위기發 政情불안' 겪은 인도네시아·태국·말레이시아… 외환 보유액 5~10배 늘려

    • 0

    입력 2017.12.02 03:03

      아시아 '경제 참사'… 다른 국가들은

      외환보유액 변화
      태국 방콕 시내 중심지에 있는 시암(Siam)박물관에는 벤츠 트렁크에 루이비통 가방 등 사치품이 가득 담겨 있는 기이한 전시품이 있다. 고급 승용차를 몰던 부자조차 순식간에 길거리에 내몰리는 바람에 차곡차곡 쌓아왔던 비싼 수집품을 헐값에 팔아서라도 생활비를 마련해야 했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전시품이다. 태국인들은 1990년대 말 외환 위기를 '똠암꿍 위기'라고도 부른다. 당시의 쓰라렸던 경험을 태국 전통 음식의 시큼씁쓸한 맛에 빗댄 것이다. 1997년 7월 태국 바트화 폭락이 시발점이 됐던 동아시아 금융 위기는 한국은 물론, 인도네시아 등 1980년대 이후 고도성장을 이어온 대다수 아시아 신흥국에 큰 상흔을 남겼다.

      1990년대 말 초유의 퍼펙트 스톰(동시다발로 터지는 위기) 속에서 가장 극적 변화를 겪었던 곳은 인도네시아였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보유 외환이 바닥날 지경에 이르자 국가 파산을 막기 위해 그해 8월 달러당 자국 통화 환율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고정환율제를 버리고 변동환율제를 전격 도입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화폐 가치가 폭락해 주요 기업이 줄줄이 쓰러졌고, 실업자가 쏟아졌다. 인도네시아 곳곳에서 발생한 시위 진압 과정에서 10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소요 사태가 끊이지 않았다. 32년간 독재 정권을 지켜온 수하르토 대통령은 이듬해 반정부 민주화 시위로 권좌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신 자유주의 정책으로 양극화 심화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대다수 동남아시아 국가는 외환 위기를 거치며 경제뿐 아니라 정치·사회 분야에서도 수많은 후유증을 겪었다. 외환 위기의 진앙이었던 태국은 외환 위기 이후에도 여러 차례 경기 침체에 빠져 쿠데타까지 발생하는 등 아직도 정정 불안을 겪고 있다. 태국 곳곳엔 당시 자금 사정 악화로 건설이 중단된 수십층짜리 호화 건물이 흉물로 방치돼 있다. 말레이시아는 내정 간섭을 이유로 IMF 지원을 거부했는데, 투기 세력의 공격으로 시가총액이 절반 넘게 증발하는 등 금융시장이 고꾸라졌다. 이 바람에 건국 이래 이례적으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는 등 수년간 극심한 고초를 겪었다. IMF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것으로 평가되는 한국과 홍콩은 외환 위기 이후 도입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당시 외환 위기가 동시다발로 터진 주요 이유로 단기간에 금융시장을 개방했던 점과 환율 제도가 경직적이었던 점을 꼽는다. 외환 위기를 거치며 아시아 관료들이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외환 방패를 두껍게 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다수 국가가 외환 위기 전보다 외환 보유액을 5~10배 넘게 늘렸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2~4%에서 4~7%로 높아졌다. 덕분에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극심한 달러 자금 경색 속에서도 외환 위기 때처럼 국가 도산 위기까지 몰리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