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1997년 대선 앞둔 한국 정부 국가 부도위기 숨겨 사태 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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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7.12.02 03:03

      미셸 캉드쉬 전 IMF 총재
      외환 보유액 바닥나 국제 신뢰 회복 위해선 충격요법 필요한 상황 당시로선 최선
      정부가 문제 회피하면 위기 또 올수도

      미셸 캉드쉬 전 IMF 총재는 84세 나이에 꼿꼿한 자세와 정정한 목소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를 회상하면서 “당시 IMF 역사상 가장 중요한 협상이었다”고 말했다.
      미셸 캉드쉬 전 IMF 총재는 84세 나이에 꼿꼿한 자세와 정정한 목소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를 회상하면서 “당시 IMF 역사상 가장 중요한 협상이었다”고 말했다. /이재은 기자
      "정부가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회피하면 위기는 반드시 찾아온다. 리더는 제도의 약점에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미셸 캉드쉬(Camdessus·84)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WEEKLY BIZ 인터뷰에서 "20년 전 한국은 국가 부도 위험을 숨기고 있다가 뒤늦게 도움을 요청했다"면서 "정치와 기업 경영이 투명한 시스템으로 위기를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한 한국을 찾은 캉드쉬 전 총재는 1997년 12월 3일 임창렬 부총리와 함께 전 국민이 TV로 지켜보는 앞에서 구제금융 지원 서류에 서명했다. IMF 외환 위기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캉드쉬 전 총재를 지난달 프랑스 파리에서 만났다. 그의 사무실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약 200m 떨어진 프랑스 중앙은행 건물 2층이었다. 20년 전 냉철한 인상은 세월과 함께 누그러졌지만, 고령에도 그는 여전히 자세가 꼿꼿했고 발걸음이 빨랐다.

      북핵·글로벌 금융시장 불안

      미셸 캉드쉬 전 IMF 총재
      ―한국 경제가 직면한 위협은 무엇인가.

      "경제 체질을 개선한 덕분에 한국은 2008년 금융 위기에도 큰 충격을 받지 않고 견뎌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세상은 변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 정책은 안타깝게도 성공하지 못했다. 현재 북한이라는 안보 위기가 도사리고 있고, 글로벌 금융시장은 여전히 취약해 언제든지 또 다른 글로벌 위기가 발생할 수 있어 안심할 수만은 없다."

      ―IMF를 이끌면서 수차례 위기를 경험했다. 위기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정부가 문제를 회피하면 위기가 온다. 영국식 표현을 빌리자면, 구조적인 문제가 소리 없이 진행되다가 어느 날 '왕이 벌거벗었다'고 말하는 순간이 온다. 문제가 이렇게까지 치달으면 극단적인 조처를 해야 한다. 리더는 신중하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시스템의 약점에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야 위기를 피할 수 있다."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정치·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1997년 한국 정부는 외환 보유액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다. 문제를 숨기려고 했다가 부도 위기에 처하자 급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수많은 리더가 국가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구조적인 문제이자 심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리더와 정부는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 내부적으로는, 특히 국회에서, 현재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를 나눠야 하고, 외부적으로는 IMF 등 국제기구와 활발하게 소통해야 한다. 세계가 더 이상 미국 중심의 단극(unipolar) 경제가 아니라 다극(multipolar) 경제이기 때문에 한국도 여러 국가와 협력해 국제 금융 시스템 개혁에 이바지하고, 유동성 관리에 나서야 한다."

      금 모으기 때의 의지로 개혁하라

      ―1997년 외환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그런 큰 사건의 원인은 복합적이라 한 가지로 단순화할 수 없다. 우선 방만한 기업 경영을 하는 재벌이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경직적 구조였다. 차입 위주의 경영이 확산하면서 단기 외채가 급증했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외환 보유액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1997년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이 된 상태였고 경제 성장률도 높았기 때문에 상황이 나빠지더라도 미국, 일본 등 해외 동맹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사실이 아니었다.

      1997년 11월 한국 정부는 국가 부도 위기에 처했다면서 IMF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지만 협상이 어려웠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있었던 터라 정부는 협상을 대선 이후로 미루려고 했다. 정부가 문제를 인정하지 않고 외부에도 알리지 않았던 탓에 사태가 악화됐지만, 불은 급하게 꺼야 했다. 보통 3~4개월 걸리는 작업을 열흘 내 완성해야 했다."

      ―고금리 정책 등 IMF가 내건 조건이 가혹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20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국가는 부도 위기였는데 시간이 없었다. 한국 정부는 외환 보유액이 바닥나 200억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구제금융이 필요한 상태였다. 고금리, 통화·재정 긴축 등의 충격 요법을 사용해 국제사회와 투자자 신뢰를 회복하는 게 중요했다. 물론 시간이 더 많았더라면 조금 더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로써는 최선이었다. 가혹했다고 평가받는 조치도 당시에는 필요했다."

      그에게 IMF 수장으로 한국 경제를 지켜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수많은 일이 떠오르지만, 한국인의 애국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전 국민이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캉드쉬 전 총재의 표정은 '금 모으기 운동'을 회상하면서 한층 부드러워졌다. "전 국민이 자발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했다. 당시 만난 김수환 추기경은 어머니가 주신 십자가를, 조계종 총무원장 월주 스님은 부모님 결혼 반지를 국가를 위해 내놓겠다고 했다. 이렇게 모인 금으로 20억달러 외화를 차입하는 효과를 봤다. 한국인의 의지는 내게도 자신감을 줬다. 이런 국가라면 발전할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캉드쉬 전 총재는 금 모으기 운동에서 보인 의지와 단결력이 향후 구조 개혁에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20년 전 보여준 개혁에 대한 의지와 실행력을 지금 실천한다면 한국은 앞으로 수십년 동안 세계경제를 이끄는 주역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장담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