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외환위기 직전에도 거시 지표는 좋았다… '반도체 착시'에 또 속아선 안 돼

    •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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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7.12.02 03:03

      [WEEKLY BIZ Column]
      글로벌 호황에 올라탈 경쟁력 갖춘 기업 더 많이 필요
      1997년엔 그나마 정부 부채 비율 6~7% 지금은 40%대 육박
      재정정책 쓰더라도 안전판 갖출 필요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1997년 외환위기 직전, 거시경제 지표는 나쁘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 실질성장률은 9%대 높은 수치였고, 1996년 7%대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양호했다. 물가상승률 역시 1995~97년 4%대로, 당시 기준으로 안정된 편이었다. 하지만 총자산을 활용한 기업수익성을 나타내는 지표는 악화되고 있었고, 1997년 모두 마이너스가 된다.

      당시 거시지표와 기업수익성의 괴리는 반도체경기와 관련이 높다. 1990년대 중반 국제 반도체 호황이 있었고 정점인 1995년에는 전자부품산업 총자산경상이익률이 20.1%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반도체산업 이외 다른 부문의 수익성은 낮았고, 더욱이 외환위기 이전에는 원화 강세여서 기업수익성이 낮아도 해외에서 단기 외화부채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서, 이러한 차입자금으로 투자를 확대하며 총자산이 커져 총자산대비 이익률은 악화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특정산업의 압도적인 성과로 주가가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는 등 마치 경제 전반이 좋아지는 것으로 해석되곤 했다. 따라서 수익성 악화에도 적시에 부실구조조정과 개혁이 이뤄지지 못했고, 해외에서 단기로 조달되었던 외화부채자금이 급격히 유출되자 외환위기에 빠진다.

      외환위기 직전의 '반도체 착시'

      반도체 호황은 2000~2001년, 그리고 2000년대 중반에도 나타났다. 또 최근 다시 생겨나 수출·성장·투자지표 개선을 주도하고 있다. 다만 외환위기 직전에는 수익성이 저하된 기업까지 차입자금으로 투자를 확대해 총자산이 커져 있어 전체적으로 총자산대비 이익률이 낮아졌다. 반면 최근에는 대규모 차입투자가 감소해 기업수익성 약화에도 총자산대비 수익성은 개선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사정을 종합하면 결국 대부분 기업의 수익성이 약화되고 있는데도 거시경제 지표가 개선되고 주식시장이 호황을 누리는 상황은 한국 경제가 국제경기변동에 민감한 특정 산업에 얼마나 의존하는지 보여준다. 따라서 개인이나 기업들은 거시지표 외에 미시 상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살펴 위험을 관리하고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보다 궁극적으로 한국경제가 또다시 위기를 겪지 않으려면, 글로벌 산업호황에 올라탈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글로벌 산업호황이 와도 해당 부문에 국제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또한 국제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있어도 특정 산업에 국한된다면 국가 경제는 산업경기변동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의 실적 개선이 중소기업과 가계 부문으로 흘러넘치는 것이 낙수효과이다. 한국 사회에는 낙수효과를 일으킬 국제경쟁력을 갖춘 기업 자체가 부족하다. 하버드대학 헬프만(Helpman) 교수 등에 따르면 임금격차는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하는 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와 그렇지 못한 경우에 발생한다. 즉, 임금격차의 핵심적인 차이는 근로자가 속한 기업의 국제경쟁력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결국 장기적으로 볼 때 근로자들의 소득을 늘리려면 많은 기업들이 국제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재정 안전판 유지 위해 애써야

      다가올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재정여력을 점검할 필요도 있다. 외환위기 때는 국제통화기금(IMF) 긴급자금으로 외화유동성 문제를 일단 해결한 뒤, 재정정책으로 경기를 회복시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외환위기 초반 IMF 프로그램은 긴축재정과 고금리 처방을 골자로 했는데, 이는 대개 만성재정위기를 겪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적합한 처방으로 우리에게는 맞지 않았다. 그 결과 1998년 1월 콜금리가 25%까지 치솟으며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업뿐 아니라 생존 가능한 기업마저 무너지자, IMF는 수정안을 제시하고 정책을 전환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 변환이 가능했던 바탕에는 당시 GDP 대비 정부부채비율이 6~7%대에 머물던 건전재정이 있었다. 경기회복을 위해 재정지출을 확대하면서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초반에는 공식 정부부채 비율이 20%대, 그리고 예금보험공사나 자산관리공사 등 공적자금 투입 부분까지 고려하면 30%대로 올라가게 된다.

      2016년도 기준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 부채를 합한 국가부채(D1)는 GDP 대비 40%대에 육박한다. 물론 선진국보다는 사정이 양호하지만, 연금 충당부채와 공기업 채무 및 사회보장성 기금을 합한 광의의 국가부채는 2016년도 기준 GDP 대비 90%대에 이른다. 외환위기 때에 비해 재정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그렇다고 경기 악화 시에도 대응을 위한 정부지출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경기위축 시기에 재정정책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 지출은 단기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되 경기회복 이후 중단할 수 있는 성격이어야 한다. 인건비나 연금 같이 지속적이고 경직적이면 재정건전성을 구조적으로 악화시켜 위기대응역량을 취약하게 만든다.

      외환위기 20년을 맞아 우리는 당시 상황을 차분히 되짚으며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 특정 산업에 기댄 거시지표를 전반적인 경기상황으로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또한 다양한 산업에서 국제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생겨날 수 있도록 규제를 합리화하고 혁신을 장려해야 한다. 경기침체에는 재정정책으로 적극 대응해야 하지만 경직적인 지출로 취약한 재정구조가 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외환위기 직전 해외투자은행은 '아시아를 떠나라'는 경고를 냈다. 당시의 경고 요인을 되새겨 보면, 한국 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정부 정책이 안정적으로 시행돼 국제투자자들이 한국을 장기투자처로 신뢰할 만하다고 평가할 때 위기 가능성이 줄어든다. 그때 해외장기자금이 유입되고 선진국 기업들의 국내 실물투자도 활발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