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명품 車·아기 옷·강아지 간식까지… 세계는 지금 '배달의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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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7.11.18 03:03

      진화하는 '맞춤 정기 배송 서비스'

      - 美 2500업체 각축
      소비자 취향 AI 분석, 패션 스타일링해 전달…생존 미션 도구 배달도

      스마트폰 앱을 실행해 지난달부터 눈여겨봤던 신형 포르셰 카이엔을 골라 사무실로 배송시킨다. 업무를 마치고 주차장에 나가보니 신청했던 차량이 깔끔하게 정비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다. 매달 요금 2000달러를 내면 원하는 차를 골라 빌려 탈 수 있는 포르셰의 정기 대여 서비스 '포르셰 패스포트'다. 차를 몰고 달려간 집 대문 앞에는 여러 상자가 쌓여 있다. 이번 주 저녁 요리에 사용할 식재료가 든 상자, 이달의 추천 패션 아이템이 담긴 상자, 이달의 추천 커피 원두와 간식거리가 담긴 상자다.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는 반려견에게는 매달 받는 반려견 용품 상자에 들어 있던 새 간식을 건넨다.

      2010년 '버치박스' 등 화장품 샘플 배송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기 시작한 '맞춤 정기 배송 서비스(subscription service)'가 이제 일상 전반으로 스며들고 있다. 화장품과 식재료 일색이던 제품군은 패션 아이템과 다양한 취미 활동, 반려동물 제품부터 자동차로 넓어졌다.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선택 사항을 일일이 검토할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의 특성 때문에 탄생한 새로운 소비 문화다.

      '선택의 심리학' 저자 시나 아이엔거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좋아하는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고르는 작업은 사람에게 '재미'로 다가오지만, 갑작스럽게 너무 많은 선택권이 생기면 기회비용을 따지느라 정신적 피로도와 압박이 높아진다"고 분석한다. 이런 현대인을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미국에서만 2500개 이상의 정기 배송 서비스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스타트업이 먼저 시작했던 정기 배송 사업에 뛰어드는 대기업도 늘고 있다. 개인의 취향을 정교하게 파악하고 최적의 선택으로 소비자를 붙들기 위한 기업 간 두뇌 게임이 한창이다.

      패션 업계, 개인 맞춤형 배송으로 진화

      가장 움직임이 활발한 곳은 패션 업계다. 매달 패션 아이템을 취향에 맞게 스타일링해 보내주는 스타트업 '스티치픽스'는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을 활용해 소비자 취향을 정교하게 수집하며 급성장했다. 지난해 영업이익 7억7000만달러(약 8800억원)를 기록했고, 올해는 작년보다 영업이익이 30%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스티치픽스의 성공에 자극받은 의류 대기업들도 비슷한 서비스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미 의류업체 갭은 유아 의류 정기 배송 사업을 지난달 정식으로 시작했다. '클래식' '재미있는' 등의 큰 주제 중 하나를 고르고 옷을 입을 아기의 나이, 신체 치수를 입력하면, 전문가가 고른 옷 여섯 벌이 배송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21일 안에 돌려보내면 된다. 다음 박스가 배송될 때는 가입자의 취향과 그 사이 자랐을 아이의 신체 사이즈를 반영해 옷을 보내 준다.

      스포츠의류 업체 언더아머도 지난달 '아머박스'란 이름의 정기 배송 사업을 시작했다. 달리기, 실내 피트니스 등 자신이 즐기는 운동과 옷 취향, 신체 사이즈 등을 가입자가 입력해 두면 언더아머의 스타일리스트가 그에 맞춰 고른 운동복을 30일, 60일, 90일 등 지정한 주기마다 보내 준다. 가입자는 그중 마음에 드는 옷만 골라 옷값을 지불하고, 나머지는 무료로 돌려보내면 된다.

      소비자가 어떤 옷을 선택하는지, 어떤 옷을 반송하는지 같은 정보가 기업 서비스의 핵심이다. 이런 서비스는 시작 단계에서는 '취향 맞춤 서비스'라기보다는 단순한 '멤버십'에 가깝다. 하지만 내용물을 받아보는 소비자가 취향에 맞는 옷만 걸러 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개개인의 취향 정보가 쌓이고, 점점 더 개인 맞춤형 추천 서비스로 진화하는 것이다.

      충성 고객 만들려 명품차 업체도 진입

      이달 13일 미국 GM의 고가 브랜드 캐딜락은 지난 1월 뉴욕에서 시작한 '북바이캐딜락(Book by Cadillac)' 프로그램을 로스앤젤레스와 댈러스로 확장한다고 밝혔다. 매달 1800달러의 이용료를 내는 회원이 앱을 통해 원하는 모델을 선택하면 해당 차를 집 앞으로 배달해주는 맞춤 렌털 서비스다. 주유나 주차는 빌리는 사람이 해결해야 하지만, 차량 등록세나 보험, 수리 지원 등 각종 부대 비용이 월 비용에 포함돼 있다.

      캐딜락만이 아니다. 포르셰는 이와 비슷한 서비스인 '포르셰 패스포트'를 미국 애틀랜타주에서 지난달부터 시험 중이며, 볼보는 휴대전화 약정처럼 월 정액제로 신형 차를 이용하는 '케어 바이 볼보'의 시험 운영을 시작했다. 기업용 정기 결제 플랫폼 회사인 리컬리의 공동 창업자인 댄 버크하트 최고경영자(CEO)는 "타보기조차 어려운 명품차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향후 구매까지 이어갈 수 있는 충성 고객을 만들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마니아 모으는 커뮤니티로 발전

      한정된 소비자를 타깃으로 삼아 개성 있는 아이템과 독특한 스토리텔링으로 승부하는 업체도 있다. 2012년 반려견을 위한 자연식 간식과 장난감을 골라 보내주는 서비스 '바크박스'로 출발한 스타트업 '바크앤코'는 반려견을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들을 겨냥한 서비스와 콘텐츠를 확장해 나가며 고정 가입자를 늘리고 있다. 이 회사가 운영하는 '파괴자 클럽(destroyer's club)'은 장난감을 물어뜯어 찢거나 부수는 걸 좋아하는 반려견을 겨냥한다. 더 많은 장난감을 부수거나 못 쓰게 만들수록 자체 쇼핑몰에서 쓸 수 있는 포인트와 무료 장난감을 지급하고, '최고의 파괴자' 순위를 매겨 시상도 한다. 이 회사의 블로그 '바크포스트'는 매달 1회 뉴스레터 형식으로 익살스러운 반려견 모습을 담은 사진과 여러 정보를 게재하는데, 월간 조회 수가 평균 1000만건 이상이다.

      2015년 출범한 '배틀박스'는 야외 활동을 즐기는 남성을 겨냥해 매달 '생존 체험용' 제품을 보내주는 회사다. 매달 배송되는 '배틀박스' 안에는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미션'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가 들어 있다. 핵물질로 오염된 땅에서 살아남기, 도시에서 살아남기 등 매달 다른 주제의 '미션'이 제시되고, 홈페이지에는 제품을 사용하는 방법을 다룬 영상이 올라온다. 시장조사 업체 유로모니터는 최근 낸 보고서에서 "소비자의 개인 취향을 더 집요하게 파고들어 맞춤형 서비스에 집중하거나, 아예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차별화된 독특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업체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① 베이비갭... 美 의류회사 갭(GAP)이 지난 10월부터 시작한 유아용 의류 정기 배송 서비스 ‘베이비갭 아웃핏박스’. 3개월 주기로 갭 스타일리스트가 고른 100달러 상당의 유아 의류가 배송된다. 가격은 박스당 70달러(약 7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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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배틀박스... 생존 체험을 즐기는 성인 남성을 겨냥한 ‘배틀박스(Battlbox)’는 매달 ‘미개척지에서 살아남기’ ‘핵폭탄이 터진 뒤 살아남기’ 같은 주제와 생존법을 영상으로 안내하고 이와 관련된 물품을 보내준다. 가격은 구성물에 따라 매달 25~150달러(약 2만7000~16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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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스티치픽스... 스티치픽스(Stitch Fix)는 매달 소비자의 취향과 직업, 생활 패턴 등에 맞춰 전문 스타일리스트와 인공지능(AI)이 고른 5가지 패션 아이템을 지정한 날짜에 박스에 담아 보내준다. 소비자는 3일 동안 박스에 담긴 물품을 시험 착용해 본 뒤 구매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스타일링 비용은 월 20달러(약 2만2000원)지만 옷을 구매하면 무료, 옷값은 별도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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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 바크박스... 美 반려견용품 정기 배송 업체 바크박스는 매달 반려견을 위한 새로운 간식과 장난감, 목욕용품 등을 선별해 보내 준다. 가격은 월 21~29달러(약 2만3000~3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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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⑤ 더치즈소사이어티... 英 더치즈소사이어티는 매달 새로운 수제 치즈 5가지를 각각 200g 씩 담은 1㎏가량의 박스를 보내준다. 가격은 월 38파운드(약 5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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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⑥ 아마존... 아마존은 3~13세 어린이에게 매달 새로운 수학·과학 교육용 장난감을 보내주는 ‘STEM Club’을 운영하고 있다. 가격은 월 20달러(약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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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⑦ 포르셰 패스포트... 獨 자동차 업체 포르셰는 美 애틀랜타에서 매달 일정 금액을 내면 필요에 따라 원하는 포르셰 차량을 골라서 탈 수 있는 ‘포르셰 패스포트’를 운영하고 있다. 박스터, 카이맨S, 마칸 S, 카이엔, 911 등의 다양한 차종 가운데 필요한 차를 스마트폰 앱으로 고르면 해당 차를 집이나 사무실로 배달해준다. 가격은 차종 구성에 따라 월 2000~3000달러(약 230만~340만원, 차량 등록세·보험료 등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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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⑧ 플레이버리... 英 플레이버리(FLAVOURLY)의 ‘크래프트비어박스’는 소비자의 입맛 설정에 맞춰 매달 독립 양조장에서 만든 수제 맥주 10병을 골라서 보내준다. 가격은 월 20파운드(약 3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