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조직은 '동물원'인가 '대평원'인가

    •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입력 2017.11.18 03:03

개방적이고 유연한 조직 만들려면

절박함 속에 진화 이뤄져
생존경쟁 하며 환경 변화에 유연 대처

사무실에 미끄럼틀?
자유롭게 쉬고 일하라 그러나 약속한 목표는 책임지고 달성해야

고어텍스 회사처럼
직원 직급 없이 프로젝트마다 소규모 TF 결성·해체

외부 활용 능력이 경쟁력
GE 항공기 경량화 내부 연구는 지지부진 외부 공모서 活路 찾아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동물원의 동물들은 안전하다. 위생적인 환경에서 굶주리지 않는다. 사육사들이 24시간 대기하면서 물·식량 같은 필수품을 공급하고 병이 나면 치료해 준다. 반면 대평원 동물들의 삶은 고달프다. 밤낮으로 천적들을 경계하며 먹잇감을 찾아야 한다. 군집 생활에서는 집단 내부 경쟁도 치열하다. 하지만 개체가 감당해야 하는 절박함은 역동성을 높인다. 변화에 적응하는 우량한 개체가 번식하면 변종(變種)이 출현하고 진화가 일어난다. 대평원 생태계에서의 삶은 개체 단위에서는 고달프지만, 집단 차원의 역동성을 유지하고 진화하는 메커니즘이다. 반대로 동물원은 개체 차원의 안정성은 높지만 역동성은 실종된 화석(化石) 같은 공간이다.

기업 관점에서 아날로그 환경을 동물원, 디지털 환경을 대평원에 비유할 수 있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조직의 내부와 외부가 분리되어 있다. 위계질서와 매뉴얼에 기반한 중앙의 명령과 통제가 근간이다. 동물원처럼 닫혀 있는 공간 내에 소위 정규직·비정규직 등 또 다른 경계선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조직은 대평원 생태계처럼 열려 있는 공간이다. 내부와 외부의 구분이 불명확하다.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변화하며, 자율성에 기반을 둔 전문가의 연합 형태이다.

정규직·비정규직 문제, 딱딱한 노동법 등 국내의 제도적 제약을 극복하고 디지털 경제의 특징인 개방성과 유연성을 조직 구조와 인재 활용에 접목하는 것은 많은 우리나라 기업의 과제다. 어느 때보다 역동적 생태계로 관점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날로그 시대의 닫히고 구분된 조직을 글로벌 디지털 시대의 개방적이고 유연한 조직으로 혁신하기 위한 과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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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초원에서 사자 떼가 먹이를 먹고 있다. 대평원에서는 식량과 물, 출산과 양육 등 모든 것을 개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대평원의 낮은 안정성, 높은 역동성은 집단 생존력을 유지해 준다.
1. 자유롭지만 규율도 강하게

우리나라 기업들은 아날로그 시대엔 벤치마킹 위주의 추격자(catch-up) 전략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금은 선도자(first mover) 전략으로 선회하면서 유연하고 자율적인 문화에 기반을 둔 창조적인 조직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한 구체적 실행 방안은 다양하다. 유연근무제, 재택근무제 등이 실험되는가 하면 직급을 단순화하고 여름철에는 반바지 착용을 허용하는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단편적 프로그램들을 병렬적으로 늘어놓은 것이 능사는 아니다. 디지털 조직의 작동 방식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라는 관점에서 대평원 생태계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표면상 평화롭고 일견 무질서해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생존과 경쟁의 엄정한 자연적 질서가 형성되어 있는 역동적인 대평원 생태계를 조직 운영 방식에 접목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구글·애플·페이스북 등 디지털 시대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기업들은 조직 문화도 다르다고 말을 한다. 통상 사무실 안에 칸막이가 없고, 미끄럼틀과 당구장 등 기분 전환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헬스클럽과 수영장 등의 부대 시설을 무료로 이용하고, 호텔급 식사를 제공하고 스마트워크를 시행하는 등 인재를 중시하는 조직 문화를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표면상 자유로운 분위기의 이면에 존재하는 대평원의 엄정한 질서를 이해하지 못하면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근무시간을 선택하는 스마트워크는 존중되지만, 팀장이 소집하는 회의는 무조건 참석해야 한다. 또한 업무와 연관되어 수시로 진행되는 상사, 동료, 직원들의 다면 평가가 인사 고과에 반영되는 시스템(peer pressure)이다. 업무 긴장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출퇴근 시간, 휴가 일수 등에 대한 세세한 간섭은 없지만 약속한 목표는 책임지고 달성해야 한다. 상사가 야근과 주말 출근을 지시하지는 않지만, 엄정한 성과 평가와 보상 구조의 환경에서 연장 근무를 해야 할지는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겉보기에 직장인의 천국으로 보이는 이런 회사에서도 자발적 퇴사자가 여타 기업과 마찬가지 수준으로 발생하는 배경이다.

2. TF팀 연합 형태로 운영하라

아날로그 시대 조직 구조는 리더를 정점으로 계층별로 조직화된 삼각형 구조를 기본으로 한다. 전략기획, 생산, 판매 등 기능별 분업을 근간으로 구성된 위계적 조직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하는 구조다. 단위 조직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는 사안별 태스크포스(Task Force·TF)를 구성하여 대처하는 보병(步兵) 부대 편제의 개념이다. 반면 디지털 시대의 조직은 TF의 집합체 (aggregation)다. 소규모 특수부대들의 네트워크에 가깝다. 기간 조직은 있되 유연성을 높여 내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TF들을 활발하게 구성하여, 다양한 문제 해결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조직 운영의 방점은 혁신과 변화의 지속 및 스피드와 역동성의 유지에 있다.

아웃도어용 의류 원단인 고어텍스로 유명한 고어앤드어소시에이츠는 우주선용 특수 케이블, 대체 혈관 소재, 기타줄 등 다양한 제품의 핵심 기술을 개발하였다. 1958년 창업 이래 연구개발과 엔지니어링 역량에 기반을 둔 문제 해결 능력을 바탕으로 연간 매출 30억달러를 웃도는 대기업으로 성장하면서도 특유의 조직 구조와 기업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경영진 이외에는 직급이 없으며 규정된 권한, 관리 범위와 보고 체계도 없다. 업무 처리는 프로젝트마다 필요한 기술을 기반으로 소규모 TF가 결성되고 해체되는 식으로 진행된다. 어소시에이트라고 불리는 직원들은 지위에 상관없이 TF 구성원 결정권을 가진다.

고어앤드어소시에이츠처럼 되기가 물론 쉽지는 않다. 통상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창업 당시의 유연성과 역동성은 감소하고 안정성과 효율성 중심의 조직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환경이 변하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면 디지털 시대는 경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기업 조직도 일상적 업무 대응 위주에서 수시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 중심으로 개편돼야 한다. 수평적 TF 연합체 성격으로 변모해야 한다. 기존 기업들이 조직 혁신을 통해 유연성과 안정성, 역동성과 효율성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상황에서 고어앤드어소시에이츠의 사례는 좋은 본보기이다.

3. 외부 역량을 최대한 끌어들여라

생태계의 진화와 기업의 혁신은 맥락은 동일하지만 시간 개념에서 차이가 있다. "전략적인 경쟁은 시간을 압축한다. 경쟁은 여러 대(代)가 소요될지 모를 진화를 불과 2~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일어나게 한다"라고 전략 전문가 브루스 핸더슨은 통찰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의 차이점은 속도에 있다. 가속적 변화의 시대엔 기존 방식으로는 변화를 따라갈 수가 없다. 그냥 열심히 일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이는 19세기 마차와 20세기 자동차의 속도감이 다른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마차를 타고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자동차를 따라갈 수 없다. 가장 유효한 대응 방식은 마차에서 자동차로 갈아타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도 마찬가지로 변화에 적합한 방식과 수단을 선택해야 한다. 내부 문제 해결에도 외부 역량을 활용하여 속도를 높일 수 있다.

GE는 항공기 엔진에서 부품을 고정하는 조임쇠의 무게 감소를 내부 연구로 진행하였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2013년 6월 홈페이지에 3D프린팅을 이용해 조임쇠 경량화 디자인 과제를 공지하고 포상금을 내걸었다. 수주일이 지나면서 전 세계에서 기업, 개인, 연구자, 디자이너들이 697건의 대안을 제시했다. 최종 심사에 오른 10명 중 미국인이나 항공엔지니어는 없었고, 최우수 상금 7000달러는 조임쇠 무게 2kg을 327g으로 줄인 인도네시아의 21세 엔지니어에게 돌아갔다.

사업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내부 역량에만 의존하지 않고 외부 역량을 동원하여 해결하는 방식은 이노센티브(Inno Centive)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서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이제는 기존 방식으로 더욱 열심히 일해서 속도를 높이는 한계를 넘어서 글로벌 플랫폼을 이용한 외부 역량과 연계해 가속적 변화에 대응하는 효과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1980년대에 일찍이 피터 드러커가 미래의 기업은 내부 자원 활용보다 외부 자원을 활용하는 능력에서 경쟁력이 판가름날 것이라는 예견이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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