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공장' 디즈니를 '콘텐츠 왕국'으로

입력 2017.11.18 03:03

조직 체질 바꾼 밥 아이거

밥 아이거 디즈니 CEO가 콘텐츠 제작에 열정을 보인 것은 대학 시절부터다.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아이거는 사회 초년병 시절 지방 방송국의 기상 캐스터로 일하며 미국의 전설적 아나운서인 월터 크롱카이트처럼 TV 앵커를 꿈꿨다. 그러나 23세 때 TV 프로그램 제작 일을 맡으며 마음을 확 바꿨다고 한다. 그는 최근 한 연예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카메라 앞에 서기보다는 카메라 뒤에 있는 게 더 적성에 맞았다"고 회고했다.

2005년 디즈니 CEO에 취임한 아이거의 최대 업적은 디즈니를 '만화 공장'에서 '콘텐츠 왕국'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다면 혁신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언뜻 뻔한 말로 들릴 법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 디즈니의 문화는 위험을 감수한 창의성과는 딴판이었다.

아이거의 전임 CEO였던 마이클 아이스너는 스튜디오가 제작자의 창의력보다는 정해진 규율에 따라 마치 공장처럼 움직이길 원했다. 사업부가 '돈이 될 만한 아이템'을 선정해 제작 부서에 일방 통보하는 방식이었다. 콘텐츠의 질보다 제작 비용을 줄이는 게 최우선 과제이다 보니 상당수 중요 업무를 한국이나 동남아 등에 하청을 맡겼다. 디즈니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10년 넘게 이렇다 할 히트작을 못 냈던 것도 비용 절감에 골몰했던 과정 속에서 스튜디오의 제작 역량이 점차 떨어졌기 때문이다. '릴로앤스티치' '보물성' 등 디즈니가 2000년대 초 연이어 내놓은 야심작은 '토이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등 픽사의 경쟁작에 판판이 깨졌다.

20년 전의 성공 방정식 바꿔

아이거는 취임하자마자 경쟁사 픽사를 74억달러에 사들였다. 월스트리트에선 터무니없이 비싸게 샀다는 비판이 잇따랐지만, '라이온킹' '인어공주' 같은 디즈니의 20년 전 성공 방정식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조직을 바꾸려면 픽사의 선진 제작 역량과 유연한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다고 봤다.

그는 이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블록버스터 제작사를 사들여 외부 제작사의 장점을 받아들이는 한편, 양질의 콘텐츠 제작에 집중했다. 그 결과, 디즈니는 지난해 '주토피아' '캡틴 아메리카' '스타워즈' '도리를 찾아서' 등 단 4개 영화만으로 넉 달 만에 매출 10억달러(북미 지역 기준)를 돌파했다. 한 영화사가 매출 10억달러를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달성해 낸 신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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