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와 달리 가는 시장… 설계자가 돼라

입력 2017.11.04 14:07

실패한 시장 살리는 3요소 … 앨빈 로스 전미경제학회 회장

에어비앤비는 남는 방이나 아파트를 빌려주려는 집주인과 싼 방을 찾는 여행객을 연결해 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 위해 탄생한 회사다. 에어비앤비는 창업 초기엔 여행객이 인터넷 웹 사이트에 예약 신청을 넣으면, 집주인이 나중에 이를 확인해 예약을 수락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처음 소수만 서비스를 이용할 때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이용객이 점차 늘어나자 불편함을 호소하는 여행객이 급증했다. 에어비앤비는 여행객이 동시에 한 곳 이상 예약을 못 하게 제한했다. 허수 주문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예약자 입장에선 보통 반나절 이상 기다려야 예약 확정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부 여행객은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에어비앤비가 아닌 기존 숙박 시설로 발길을 되돌렸다. 커지는 시장이 오히려 성장을 방해했던 것이다.

예상치 못한 난관에 직면한 에어비앤비는 예약 시스템을 확 바꿨다. 집주인이 스마트폰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예약자를 받게 해 여행객이 예약에 실패하더라도 즉각 다른 집을 찾을 수 있게 숨통을 터 줬다. 쌍방의 거래 속도를 높이고 나서야 에어비앤비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숙박 시장의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201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앨빈 로스(Roth) 스탠퍼드대 교수는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이처럼 가격 변수 외에도 시장 특성에 따라 거래 쌍방을 원활하게 연결해 주는 규칙과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실 세계의 시장은 교과서에 실린 수요·공급 그래프처럼 말끔하게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시장 설계(market design)'라 부른다. 30년 넘게 시장 설계를 연구한 로스 교수는 WEEKLY BIZ 인터뷰에서 "시장 설계는 신뢰성을 높이고, 적정한 거래 속도를 유지하며, 시장 혼란을 초래하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세 가지 요소를 살펴봐야 한다"며 "창의적 시장 설계가 좋은 시장을 만든다"고 말했다. 로스 교수에게서 시장 설계의 세 가지 요소를 들어 보았다.

/스탠퍼드대
부정직한 이용자, 자연스럽게 도태

미국에서 온라인 쇼핑을 대중화한 이베이는 창업 초창기 판매자와 구매자의 신뢰도(평판)를 측정할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다. 일반인끼리 얼굴을 맞대지 않고 원거리로 거래를 하다 보니, 엉망인 제품을 판매하는 판매자나 부도수표를 내미는 구매자 등 '나쁜 거래'를 가려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베이는 처음엔 거래 후 실명으로 '만족' '불만족'의 피드백 등급을 주는 장치를 고안해 냈다. 그러나 거래에 따라붙는 피드백 중 절대다수는 서로를 칭찬하는 내용이었다. 당초 목표대로 '나쁜 거래'를 솎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왜 이런 문제가 생겼나.

"구매자가 좋은 피드백을 남기면 판매자도 구매자에게 좋은 피드백을 주는 관행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피드백 내용이 평가 즉시 공개됐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불만족' 등급을 줬다간 나중에 보복을 당할 것을 걱정했다. 그 결과 시장에 정확한 정보가 공급되지 않아 상당수 판매자와 구매자가 거래에 불만족을 느끼는 부작용이 생겼다. 평소에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인간의 행동 양식이 거래 관계에서 드러난 셈이다. 시장 설계에서 세부 사항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시장에 좋은 정보를 어떻게 공급할 수 있나.

"이베이는 구매자가 익명으로 불만 사항을 구체적으로 남길 수 있도록 시스템을 확 뜯어고쳤다. 거래 상대방에 대한 평가를 마치기 전에는 상대방이 자신에게 한 평가를 보지 못하도록 한 게 핵심이다. 에어비앤비 역시 비슷한 문제를 겪자 이베이처럼 피드백 시스템을 바꿨다. 이베이는 지금도 시장 상황에 따라 피드백 시스템을 진화시키며 부정직한 이용자를 자연스럽게 도태시키고 있다."

적절한 거래 속도로 시장 안정시켜라

로스 교수가 강조하는 시장 설계의 또 다른 핵심 요소는 속도다. 시장 거래를 활발하게 만들려면 에어비앤비처럼 거래 체결 속도를 적정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는 게 로스 교수의 조언이다. 우버 역시 에어비앤비처럼 스마트폰의 확산으로 거래 속도를 높여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로스 교수는 거래 속도를 무작정 높인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빠른 속도가 시장을 악화시킬 수도 있나.

"거래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지면 오히려 시장은 불안해진다. 미국 주식시장이 대표 사례였다. 일부 주식거래소는 '선착순'이 원칙이어서 누구든 먼저 거래를 제의한 트레이더가 거래를 성사시킨다. 그러다 보니 수천 분의 1초라도 빨라지려 금융회사마다 거래소 근처에 고속 광섬유케이블을 설치하는 비생산적 경쟁이 생겨 났다. 그러다 2010년엔 다우존스 산업 평균 지수가 5분 만에 10% 가까이 급락했다가 회복한 사고가 터지기도 했다. 시장의 일부 컴퓨터가 초고속으로 대량 매도 주문을 내는 바람에 인간 트레이더들과 시장 관리자들이 통제력을 잃어 발생한 혼란이었다."

―어떤 식으로 시장을 재설계해야 하나.

"무조건 거래를 빨리 성사시키도록 하지 말고, 일정 시차를 두는 편이 낫다. 미국 주식시장의 경우 제자였던 에릭 버디시(Budish) 교수가 1초에 한 번의 거래만 성사시키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1초 동안 트레이더들이 부른 호가(呼價)를 모은 후 가장 높은 매수가와 가장 낮은 매도가를 제시한 트레이더끼리 거래를 체결하는 방식이다."

칸막이 없애고 정보를 유통시켜라

2000년대 초, 뉴욕 지역의 고등학교 배정 시스템은 대기자가 수만 명이나 발생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입학생 수와 입학 정원은 엇비슷했지만 상당수가 자신이 지망하는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엉뚱한 학교를 배정받았다. 학교마다 각자 합격 통보를 내다 보니 복수 합격자가 1만7000명에 달했던 게 주요 원인이었다. 학교들은 입학 직전에 부랴부랴 무작위로 학생을 충원했고, 학생과 학부모들은 그 과정에서 눈치작전을 펴야 했다. 불만이 쌓이자 앨빈 교수는 교육 당국의 의뢰로 배정 시스템 재설계에 착수, 입학 직전까지 학교 배정을 기다려야 했던 대기자 수를 3만1000명에서 이듬해 3000명으로 줄였다. 이는 그가 거래 장애물을 없애고 시장을 성공적으로 재설계한 대표 사례로 종종 언급된다.

―어떤 해법을 제시했는가.

"복수 합격자를 없애기 위해 우선 학생들의 지원서를 한데 모은 중앙정보센터를 세웠다. 이곳에서 학생들의 지망 선호도 정보와 학교가 원하는 인재상에 따라 짝을 지었다. 예를 들어 A라는 학생이 1지망으로 적은 학교에서 A를 원하면 합격시킨다. 아닐 경우 2지망, 3지망 학교와 계속 짝을 지어 보는 방식이다. 단 이런 과정은 모든 학생에 대해 한꺼번에 진행하고, 모든 학생의 배정이 끝날 때까지 합격 발표를 미뤘다."

―어떤 시장이 이와 같은 짝짓기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취업 시장 역시 짝짓기로 거래 장애물을 해결할 수 있는 대표적인 시장으로 본다. 상당수 의료·법조계·스포츠계 고용주는 A급 인재 확보에 애를 먹다 보니 입도선매로 고용 계약을 맺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입도선매 방식에선 취업자가 취업 후 고용 조건에 만족하지 않거나, 고용주가 취업자의 역량에 실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시장에선 앞서 말한 '짝짓기'로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편이 낫다. 시장에 결함이 있으면, 시장 참가자들이 결국 암시장이나 편법에 의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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