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하지 말라, 네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 네 지식이 아니다

입력 2017.10.21 15:43

필립 펀바흐 콜로라도주립대 리드경영대학원 교수

뉴욕의 유명 헤지펀드 매니저 A씨는 매일 무지막지한 양의 정보를 흡수한다. 눈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켜고 밤사이 뉴스를 살핀다. 출근길도 평소 관심 있는 정치·사회 뉴스와 함께한다. 투자한 자산에 관한 다양한 보고서와 기업·업계 소식을 쉴 새 없이 읽은 뒤 투자 전략을 짠다. 잠자리에 들기 직전까지 세계 곳곳의 뉴스를 읽고 시장에 미칠 영향을 고민하다 잠든다. 전형적인 '지식 노동자'의 삶이다.

필립 펀바흐 콜로라도주립대 리드경영대학원 교수
필립 펀바흐 콜로라도주립대 리드경영대학원 교수
그러나 올해 3월 미국에서 출간된 '지식의 착각: 생각이 혼자만의 것이 아닌 이유(The knowledge illusion: why we never think alone)' 저자들은 "많이 읽고 공부한다고 해서 스스로 똑똑하다 여기지 말라, 다 착각일 뿐"이라고 일침을 놨다. 인지과학자인 공동저자 스티븐 슬로언(Sloan) 브라운대 교수와 필립 펀바흐(Fernbach·사진) 콜로라도주립대 리드경영대학원 교수는 "인간은 세상의 방대한 정보에 비해 한없이 '무지한(ignorant)' 존재인데, 자신의 지적 수준이 대단히 높다고 과대평가하며 살아간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시각으로 보면 A씨 역시 '무지하지만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두 저자는 "최근 진행한 심리학 연구에서는 쉴 새 없이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투자 전문가들도 정작 최종 투자 결정을 내릴 때는 거의 '배짱(guts)'에 의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인간은 지적인 추론 대신 직관에 의존하는 무지한 존재"라고 했다.

무지한 인간이 어떻게 현명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을까. 미국 콜로라도주 볼더에 있는 펀바흐 교수의 연구실을 지난달 찾았다. 10㎡ 남짓 작은 방에서 런닝머신 위를 걸으면서 런닝머신 위 책상의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인사를 건네자 그는 멋쩍게 웃으며 "이렇게 조용하고 고립돼 있으면 '지식의 착각'에 빠지기 쉽다"며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기 때문에 평소 강의실이나 로비에서 학생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1.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라

Getty Images Bank
―사람은 기본적으로 '무지하다'고 주장한 이유가 궁금하다. 손쉽게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시대 아닌가.

"첨단 기술이 현대인을 '지식의 함정'에 빠뜨린다. 사람들은 구글 검색을 통해 손쉽게 '결론'에 이른다. 그렇지만 정작 그 결론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구글 검색으로 얻은 지식은 내가 직접 연구해 속속들이 모든 과정을 아는 '내 지식'이 아니다. 그뿐 아니다. 편리한 기술은 점점 더 사람을 '무지하게' 만든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오늘날 화장실 양변기는 누구나 사용할 줄 안다. 그런데 그 변기가 작동하는 원리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나? 그런데 사실 구석기 시대 원시인은 스스로 사냥해야 하기에 무기 제작법을 알았고, 옷을 지어 입어야 하기에 어떻게 하면 입기에 편리한 옷을 만들 수 있는지도 알았다. 현대인은 문명이 발전한 만큼 아는 것이 없다. 다른 여러 전문가의 지식을 빌려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론'을 안다는 이유로 스스로가 대단히 똑똑하다고 믿는다. 문제는 이들이 갖게 되는 과도한 자신감이다. 착각이 강해질수록 타인의 의견은 듣지 않고 완고해진다. 인터넷을 통해 지식을 더 많이 공유하게 된 오늘날 편향된 생각과 사상에 빠진 극단주의자가 출몰하는 근본적인 이유도 이런 '지식의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리더가 '지식의 착각'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보다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스스로의 무지함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은 혼자서 생각을 발전시키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대다수의 사람은 특정한 주장이나 이론의 진위를 가려낼 때 자신이 '숙고한다'고 착각하지만, 대부분 직관적으로 결론을 내린다. 스스로 이를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사람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지식과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지식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그래서 적절한 때에 서로의 지식을 합치고 발전시켜 활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인간은 같은 목표를 놓고 이를 향해 나아갈 방법을 함께 고민할 줄 아는 능력을 갖고 있다."

2. 아이디어의 질보다 좋은 팀이 우선

―하지만 뛰어난 리더의 직관이 성공을 거두는 사례도 많지 않나.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같은 인물의 성공 신화를 두고 많은 사람이 리더의 창의성이나 독창성을 주목했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들은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줄 아는 좋은 팀을 꾸려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다. 성공하는 스타트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특정한 아이디어의 질(質)이 아니라 팀의 질이다.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처음 자신들이 만난 리더가 제시하는 아이디어 한 가지만 보고 투자하지 않는다. 그 리더를 둘러싼 팀에 투자한다. 좋은 팀은 쉴 새 없이 시장의 작동 원리를 함께 연구하며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효과적으로 접목할 방법을 찾아낸다. 신생 기업 초기 투자자로 활동하는 와이컴비네이터 역시 어떤 기업이든 처음 낸 아이디어 한 가지에 올인해서 성공하는 스타트업은 거의 없다는 전제하에 투자에 나선다. 일단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팀에 투자하되, 그 아이디어를 놓고 쉼 없이 토론해 변화하고 진화하도록 돕는다. 그렇게 해서 성공 신화를 쓰는 기업이 나오는 것이다."

3. 대화 유발하는 방법 총동원하라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우리에게 쏟아져 들어오는 모든 정보에 대해 좀 더 회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정보 홍수 시대에는 맹목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게 독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인터넷에서 기사를 하나 읽으면, 알고리즘이 내 취향을 분석해 취향에 맞는 기사를 계속해서 추천해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접하는 세계와 시야가 내 취향에 맞는 선으로 좁아지는 것이다. 자꾸만 의심해 보고, 평소 관심사와 전혀 다른 주제에 일부러 다가가 볼 필요가 있다. 기업을 이끄는 리더라면, 나와 의견이 다르더라도 신뢰할 만한 정보, 검증된 정보나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곁에 두는 편이 좋다. 단순히 곁에 두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과 끊임없이 얼굴을 맞대고 대화해야 한다.

지식의 발전은 고립된 공간에서 나올 수 없다. 사람은 대화를 통해 서로의 직관을 자극하고, 이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완성해 나간다. 전 직원이 단층의 개방형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페이스북, 신사옥으로 옮기면서 개인 사무 공간을 대폭 줄인 애플을 보라. 구글 역시 직원들이 2분 30초 안에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는 디자인으로 신사옥을 건축하고 있다. 하나같이 직원 간의 다양한 대화를 유발하기 위한 것이다. 이들 기업은 조직원 간의 지적 대화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탄생하고 좀 더 생산성 높고 실용적인 방향으로 발전한다는 사실을 안다. 단순히 건물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팀플레이, 생산적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유도하는 보상 방법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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