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시장 들었다 놨다… '큰손' 카타르 공주

    • 이규현 이앤아트 대표·'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100'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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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7.10.07 08:00

      [이규현의 Art Market] (4) 미술 시장의 오일머니 파워

      9월 셋째 주 서울에서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에 카타르의 알 마야사 알사니 공주가 방문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VIP 오프닝이 있던 20일, 키아프에 참여한 각 갤러리의 관계자들은 부스에서 가장 잘 보이는 바깥쪽 벽에 무엇을 걸면 공주의 눈에 들까 고민하고 있었다. 갤러리들이 내린 결론은 백남준의 비디오 조각과 한국 현대 화가들의 단색화.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한국의 대표적 현대미술을 걸어야, 세계 주요 미술 현장을 다 누비고 다니는 알 마야사 공주가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알 마야사 공주의 방문은 소문으로 끝났다. 주최 측은 "공주가 방문 계획은 있었지만 개인 사정으로 취소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세계 미술 시장의 거물인 카타르 공주가 방문한다는 소문만으로도 키아프 참여 갤러리들은 충분히 술렁거렸다. 심지어 뉴욕의 손꼽히는 갤러리인 D갤러리가 카타르 공주의 방문 소문을 듣고 키아프에 참여할 것을 고려했다는 후문이다. 아트페어는 참여하는 갤러리를 보고 컬렉터들이 찾아오는 것인데, 특정 컬렉터를 노리고 갤러리가 따라오는 경우도 생길 뻔한 것이다.

      1983년생인 알 마야사 알사니 공주는 카타르의 현재 국왕인 타밈 알사니의 여동생이다. 카타르 국립박물관협회 회장이며 세계 미술 시장의 큰손이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그녀가 미술품 구매에 쓰는 돈은 연간 10억달러(약 1조1200억원) 정도 된다. 세잔이 딱 다섯 점 그린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을 약 2500억원에, 고갱의 '언제 결혼하니?'를 약 3000억원에 샀다는 보도도 있었다.

      미술계의 큰손으로 불리는 카타르의 알 마야사 알사니 공주가 지난 2015년 이탈리아 토리노의 한 시상식에 참석한 모습
      미술계의 큰손으로 불리는 카타르의 알 마야사 알사니 공주가 지난 2015년 이탈리아 토리노의 한 시상식에 참석한 모습./게티이미지코리아
      카타르가 지난 2015년 3000억원가량을 주고 구입한 고갱의 작품 ‘언제 결혼하니?’.
      카타르가 지난 2015년 3000억원가량을 주고 구입한 고갱의 작품 ‘언제 결혼하니?’.
      알 마야사 카타르 공주가 매입한 주요 미술 작품
      국력 과시 위해 초고가 미술품 수집

      카타르 공주 이야기처럼 최근 몇 년 동안 세계 미술 시장에서는 '중동'이 화제다. 하지만 정작 중동 내에서 미술 시장의 성장은 기대만큼 빠르진 않다. 아랍에미리트의 대표적 아트페어인 '아트 두바이'와 '아부다비 아트'에 참여했던 한국 갤러리들은 대부분 한 번만 참여해본 뒤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며 손을 뗐다. 2005년에 두바이에 지사를 열었던 경매회사 크리스티는 올해 10월 두바이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경매를 런던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중동이 세계 미술 시장의 화제가 되는 것은 자국 내 시장보다는 알 마야사 공주 같은 몇몇 왕족 컬렉터들이 막대한 돈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현대 미술 시장에서 개인이나 기업 컬렉터는 자주 등장하지만, 이렇게 국가 컬렉터가 화제가 되는 경우는 중동을 제외하고는 별로 없다. 그럼 중동의 왕실들은 왜 미술 작품을 살까? 미술 작품을 소유함으로써 국가 지위를 올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중동 산유국 왕실들이 고가 그림을 사들이는 이유는 이들이 대부분 '지대국가(Rentier State)'인 것과도 관련이 있다. '지대국가'들은 세금을 걷지 않고 천연자원이 벌어들이는 부(富)로 국가를 운영하고 국민 복지 정책을 편다. 이런 나라의 왕족에게는 신이 선물한 석유로 국민에게 베푼다는 일종의 시혜의식이 있다. 그래서 고가의 유명한 작품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국가의 이미지도 제고하는 것이 이 나라들에서는 자연스럽다.

      세계적 미술관도 잇따라 건립

      산유국 왕실들의 미술 컬렉팅은 다른 나라와 경쟁에서 앞서나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산유국 왕정국가 협력체인 걸프협력이사회(Gulp Cooperation Council·GCC) 회원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오만, 바레인,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사이에서는 정치·경제적 경쟁에 이어 최근 '문화의 허브'가 되려는 경쟁이 일고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수도 아부다비에 루브르 박물관 제2관, 구겐하임 미술관, 자이드 국립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을 짓고 있다.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는 세계적 건축가 이오밍 페이(I. M. Pei)가 설계한 아랍 현대미술관 '마타프(Mathaf, Arab Museum of Modern Art)'가 있다. 카타르는 국가 경제 다변화 플랜인 '비전 2030 (Vision 2030 )'을 2008년에 발표했는데, 문화와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특히 올해 6월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를 중심으로 한 대(對)카타르 단교 조치가 내려짐으로써 GCC 다른 국가들과 카타르 사이의 긴장과 경쟁이 더욱 고조되었다. 카타르는 외부 국가들도 인정해 주는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럴 때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초고가의 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은 국가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다. 석유 파워 못지않은 아트 파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