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째 세계 최고… '샤넬 제국' 이끄는 사장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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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7.10.07 08:00

      [Cover Story] '샤넬 제국' 이끄는 사장 3명 동시 인터뷰

      "여성에게 자유를" 코르셋·장신구 벗게한 패션 이상의 브랜드
      1918년 집무실에도 파리 보석 공방에도 코코 샤넬 정신이 흐르고 있었다
      새 향수 '가브리엘' 창업자 본명에서 따와… 새 역사 쓰겠다는 의지

      100년 된 패션 기업 샤넬(Chanel)의 본사는 파리 패션 중심지인 캉봉(Cambon) 거리 31번지에 있었다. 창업자인 가브리엘 코코 샤넬이 1918년 파리에 처음 연 의상실이 바로 그곳이었다. 샤넬의 원래 이름은 가브리엘이며 젊은 시절 얻은 예명 '코코'를 따 이후 코코 샤넬로 널리 불렸다.

      1층 매장 입구에 들어서자, 기다리던 직원이 코코 샤넬 집무실부터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의 삶과 철학을 알아야 샤넬 브랜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혔다. 집무실은 박물관이었다. 샤넬이 좋아했던 보리수 문양이 들어간 수백년 된 예술 작품이 즐비했다. 청나라 시대 병풍도 눈에 띄었다. 패션 영역에 제한을 두거나 타성에 젖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그의 성향이 컬렉션에 그대로 드러났다.

      과거 코코 샤넬이 집무실로 썼던 매장 뒤편은 다양한 연령·인종의 본사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실로 채워져 있었다. 회의실에서 샤넬 최고 경영진을 기다렸다. 패션 총괄 브루노 파블로브스키(Pavlovsky) 사장과 향수·화장품 총괄 크리스틴 다구세(Dagousset) 사장은 약속한 시간 정오에 정확히 나타났다. 파블로브스키 사장은 파란 와이셔츠에 노타이, 다구세 사장은 검은색 정장 차림이었다. 샤넬의 세 사업부 중 나머지 하나인 시계·보석을 총괄하는 프레데릭 그랑지에(Grangie) 사장은 홍콩 출장 중이라 나중에 전화로 인터뷰했다.(이해를 돕기 위해 이 기사는 한 건의 인터뷰처럼 재구성했다.) 1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에서 세 사장은 샤넬이 100년간 세계 최고의 명품 기업 자리를 놓치지 않은 이유를 "디자이너와 경영자가 자기 영역에서 해야 할 일을 완수하는 데 최고였기 때문"이라고 정의했다.
      1937년의 코코 샤넬
      1937년의 코코 샤넬

      여성을 장신구에서 해방시킨 코코 샤넬

      100년 전 샤넬은 코르셋과 무거운 장신구에 눌려 있던 파리 여성들에게 자유를 부여한 패션 혁명가였다. 그러나 샤넬이 사업적으로 성공한 데는 1920년대 이후 코코 샤넬의 사업 파트너이자 샤넬 브랜드 실질 소유자였던 피에르 베르트하이머 때부터 이어져 온 경영 철학이 큰 역할을 했다. 베르트하이머는 까탈스럽고 편집광적이며 때론 자신에게 적대적이기까지 했던 코코 샤넬을 끝까지 존중하고 사랑했다. 그녀의 창작에 일절 관여하지 않으면서 다만 창작물이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게끔 지원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파블로브스키 사장은 "샤넬은 디자인이 경영 중심에 있는 기업"이라고 했다. "디자인 팀이 핵심이고 이들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게 최고경영자의 제1 임무"라고 했다. 그는 디자이너를 크리에이터라 불렀다. "샤넬에는 2만명의 직원이 있는데 100명의 크리에이터가 회사를 이끈다"고 했다.

      샤넬 측은 인터뷰가 끝나자 파리 시내 방돔 광장에 있는 보석 공방으로 안내했다. 기자에게 공개한 것은 처음이었다. 샤넬 보석 매장 건물 5층 꼭대기에 있는 공방에선 세공사 10여명이 작업에 한창이었다. 나이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했다. 보석 전문학교를 나와 어릴 때부터 샤넬과 줄곧 일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세공사는 100만달러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만드는 중이었다. 한 달 내 제작하면서 수억원짜리 다이아몬드를 들고 공방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들지만 아무도 그를 검색하지 않는다. 공방 최고책임자 프레드릭씨는 "샤넬 직원은 모두 한 가족"이라는 말로 그 이유를 대신했다.

      위기 만난 샤넬, 창업자 정신으로 복귀

      샤넬의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비상장기업인 샤넬은 실적 발표를 하지 않지만 추정치로 보면 지난 몇 년은 명백한 위기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가 입수한 샤넬 회계자료에 따르면 샤넬의 작년 매출은 56억7000만달러로 전년보다 9% 감소했다. 2015년 매출은 전년보다 17% 하락했다.

      2년 연속 하락은 제아무리 콧대 높은 명품업체라 해도 자기 성찰을 하게 한다. 성찰의 결과는 새 제품에 투영돼 있다. 이달 샤넬이 15년 만에 새로 내놓은 향수 '가브리엘'은 창업자 본명에서 따왔다. 가브리엘 코코 샤넬은 새 삶에 뛰어들었고 스스로 역사를 개척했다. 그에게 일은 인습으로부터의 탈출이자 자유였다. 부잣집 사모님의 전유물처럼 돼버린 샤넬. 그러나 파블로브스키 사장은 "여성에게 자유를 주겠다는 코코 샤넬의 이념은 요즘의 시대정신과 일맥상통한다"고 했다.

      새 향수 가브리엘은 샤넬의 자기 성찰이자 미래 고객을 향한 유혹이다. 향기에 미래를 향한 발랄함을 담았다. 다구세 사장은 "우리 조향사들은 시대가 원하는 제품을 스스로 만들어낼 줄 안다. 이들은 코코 샤넬의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브루노 파블로브스키 패션 총괄 사장, 크리스틴 다구세 향수·화장품 총괄 사장, 프레데릭 그랑지에 시계·보석 총괄 사장.
      왼쪽부터 브루노 파블로브스키 패션 총괄 사장, 크리스틴 다구세 향수·화장품 총괄 사장, 프레데릭 그랑지에 시계·보석 총괄 사장.
      코코 샤넬은 관습을 깨는 옷을 만들어 세계 여성을 사로잡았다. 새로운 관점과 사고방식을 의상으로 구현해낸 창작자(크리에이터)였다. 브루노 파블로브스키 패션 부문 사장은 “샤넬은 디자인 중심의 창조 기업(creative company)이다. 창의성이 샤넬의 기본 사업 모델이다”라고 정의했다.

      1. 크리에이터와 창의성이 전부

      패션 총괄 브루노 파블로브스키(Pavlovsky), 향수·화장품 총괄 크리스틴 다구세(Dagousset), 시계·보석 총괄 프레데릭 그랑지에(Grangie) 등 샤넬을 이끄는 3명의 사장은 인터뷰 도중 여러 번 “경영진의 임무는 크리에이터(디자이너)들이 최대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디자인 중심의 사업모델이란 어떤 것인가.

      그랑지에(시계·보석 총괄)=“예를 들어보겠다. 샤넬 시계는 언제나 디자인이 먼저다. 대개 제작 기술의 한계 때문에 당초의 디자인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샤넬에서는 그렇지 않다. 디자인대로 만드는 데 몇 년이 걸리더라도 기술적 한계를 극복할 때까지 기다린다. 크리에이터가 시계를 디자인하면, 엔지니어가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크리에이터와 엔지니어 간의 협업과 상호 존중은 매우 중요하다.”

      다구세(향수·화장품 총괄)=“샤넬 크리에이터들은 본업 외 외부 사업이나 프로젝트에 참여할 자유가 주어진다. 화장품 총괄 디자이너인 루시아 피카(Pica)는 패션 잡지 편집장을 겸임하고 있다. 창의적인 사람은 자유가 없으면 매우 불행해진다. 크리에이터에게는 시장과 동떨어지지 말라는 차원에서도 자유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잡지사 근무도 허용한다. 크리에이터들의 충성심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을 얻어야 성공한다. 다행히 우리는 비상장 기업이기 때문에 분기 실적에 연연하지 않는다. 가장 독특하고 창의적인 제품만 나올 수 있다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때를 기다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경영진은 크리에이터를 지원하는 역할인가.

      파블로브스키(패션 총괄)=“브랜드를 구축하는 것은 경영진 몫, 창의적 디자인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칼 라거펠트의 몫이다. 내가 라거펠트의 영역을 존중하듯이 그도 우리의 영역을 존중한다. 라거펠트는 천재다. 그와 항상 의견 일치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매일 대화한다. 샤넬이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각자 자기 영역에서 자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분업과 협업이 확실하다. 예컨대 쿠바에서 패션쇼를 열기로 했을 때 라거펠트는 ‘그게 가능하겠냐’면서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경영진은 쿠바 패션쇼가 좋은 아이디어라고 여겨 밀어붙였다. 쿠바 정부가 패션쇼를 승인하자 라거펠트는 무척 놀랐다. 경영진이 멍석을 깔아놓자 라거펠트는 대단히 성공적인 의상 컬렉션을 내놓았다.”
      샤넬 깃털 공방 ‘르마리에(Lemarie)’에서 장인이 작업을 하고 있다.
      샤넬 깃털 공방 ‘르마리에(Lemarie)’에서 장인이 작업을 하고 있다. / 샤넬
      2.예술이라기보다는 장인정신

      코코 샤넬은 자신을 예술가라고 부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대신에 장인이라 불리기를 원했다. 1997년 샤넬은 공방 전문 자회사 파라펙시옹(Paraffection)을 세우고 파리의 유서 깊은 공방을 인수하기 시작했다. 대량 생산에 밀린 전문 공방들이 재정난을 겪으면서 하나둘씩 사라져가자, 샤넬이 구원투수로 나선 것이다. 현재 파라펙시옹에는 단추, 깃털, 자수, 금·은세공, 꽃 장식, 장갑 제조 등을 전문으로 하는 11개 기술 공방이 소속돼 있다. 1000년 이상 명맥을 이어온 공방도 상당수다. 샤넬의 지원을 받는 공방은 독립성을 보장받고 다른 명품 기업과의 작업도 허용된다. 샤넬은 공방 소속 장인의 도움을 받아 최고 품질의 의상과 가방, 패션 잡화를 만들어낸다. 명품 기업 중에 전통 기술을 보유한 공방을 의상 제작에 활용하는 기업은 샤넬이 거의 유일하다. 1900년대 초 파리에는 300여개의 깃털 공방이 있었지만, 현존하는 깃털 공방은 샤넬이 1996년에 인수한 ‘르마리에’ 하나라는 점을 감안하면, 샤넬이 얼마나 디자인의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지 가늠할 수 있다.

      ―샤넬 제품이 너무 비싸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구세=“그럴 수밖에 없다. 샤넬의 품질은 세계 최고다. 최고의 원재료를 사용해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든다. 향수의 경우 샤넬이 소유한 그라스(Grasse) 지역 꽃밭에서 꽃을 재배할 때부터 시작해 병 디자인 등 향수를 병에 담을 때까지 모든 공정을 일일이 확인한다.”

      파블로브스키=“가격은 창의성과 인력의 전문성을 반영한다. 샤넬 제품을 다른 나라에서 생산하지 못하는 이유는 샤넬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인력이 그곳에 없기 때문이다. 샤넬 제품은 모두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만든다. 이곳의 전문가들은 샤넬과 오랫동안 일하면서 최고의 디자인·제조 노하우를 쌓았다. 샤넬은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보호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중국에 주문자생산(OEM)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파블로브스키 사장은 “절대 그럴 일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만 “중국에서 세계 최고 품질인 비단을 수입해서 쓸 수는 있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세계 최고 품질의 원단을 수입해서 샤넬 제품을 만들기도 한다. 최고 품질이라면 지역은 상관없다”고 덧붙였다.

      [그래픽] 샤넬의 역사
      3. 창업자 철학과 단일 브랜드 고수

      샤넬은 매년 여섯 차례 패션쇼를 열고 여덟 차례 신제품(컬렉션)을 선보인다. 화려한 패션쇼가 막을 내리기까지가 크리에이터의 영역이다. 패션쇼가 끝난 후 어떤 의상을 제품화할지는 경영진이 결정한다. 경영진은 유통·판매 단계에서 제품에 어떤 이야기를 곁들일지 고민한다. 샤넬 제품을 고객에게 가장 매혹적인 방법으로 소개하기 위해서다. 파블로브스키 사장은 “샤넬은 고객이 좋아할 만한 제품을 만들어 파는 게 아니라, 세계 최고 품질과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어 고객을 유혹(seduce)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서 “샤넬은 고객에게 꿈을 심어준다”고 했다.

      ―세계 많은 여성이 샤넬에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다구세=“코코 샤넬이라는 인물 때문이다. 샤넬은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 여성이다. 당시로는 혁명적인 사고방식이었다. 스스로를 가꾸고 자신을 최고로 만든 여성이었다는 사실과 여성의 권리 신장을 실현한 코코 샤넬의 철학에 세계 많은 여성이 공감하는 것이다. 샤넬 디자이너들은 코코 샤넬의 이 같은 철학을 디자인에 담고, 경영진은 샤넬의 정신을 유통과 판매 과정에 녹여낸다.”

      그랑지에=“오늘날 여성들은 자신만의 개성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어한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게 일반적이다. 샤넬 시계는 이런 여성들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다.”

      ―다른 명품 기업도 꿈을 판다. 그러면서도 젊은 잠재 고객층 확대를 위해 저가 제품을 내놓는다. 샤넬도 그런 계획이 있는가.

      다구세=“샤넬은 일반적인 명품 기업과 달리 브랜드가 샤넬 하나다. 별도의 저가 브랜드가 없다. 그러나 접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화장품 중에 200달러짜리 향수도 있지만 25달러짜리 매니큐어도 있다. 매니큐어 중에서는 비싼 편이지만 고객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가격이다. 샤넬 매니큐어를 사는 고객은 이 제품을 소중히 여긴다. 시중의 매니큐어 가운데 최고의 디자인과 품질인 데다 샤넬이라는 꿈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코코 샤넬은 여성들이 자기 자신을 최고로 만들 수 있는 제품을 만든다. 그게 샤넬의 철학이다. 고객층을 확대하기 위해 저가 제품을 내놓는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래픽] 샤넬
      4. 어제 느낌으로 내일의 새것 창조

      ―소비자 요구는 끊임없이 바뀐다. 크리에이터의 창의성만 강조하면 시장 흐름과 동떨어질 우려가 있지 않은가.

      파블로브스키=“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게 크리에이터의 역할이다. 코코 샤넬은 1920년대 자유 여성의 표상이었다. 샤넬 브랜드 역시 여성의 자유를 상징한다. 내가 누구인지, 내일의 나는 어떠한 존재여야 하는지, 여성이 자신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게 코코 샤넬의 정신이다. 칼 라거펠트가 코코 샤넬의 정신을 이어받아 샤넬 브랜드의 뿌리와 DNA를 재창조했다. 디자이너들도 우리의 뿌리와 DNA에 기반을 두고 내일을 만들어간다. 샤넬 넘버5 향수가 1921년에 나왔는데도 지금까지 베스트셀러인 이유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다구세=“향수 시장은 신제품이 하루가 멀다 하고 출시되는 치열한 시장이다. 그럼에도 샤넬의 세계 향수 시장 점유율은 16%로 업계 1위다. 간판 제품인 샤넬 넘버5가 여전히 인기이기 때문이다. 대개 신제품을 출시하면 기존 제품을 단종시키지만 샤넬은 다르다. 우선 신제품을 남발하지 않는다. 이달에 선보인 향수 ‘가브리엘’은 15년 만의 신제품이다. 제품 하나하나의 품질과 이야기에 각별히 공을 들이기 때문에 신제품을 출시해도 기존 제품을 잠식하지 않는다. 고객이 보기에는 샤넬의 개별 향수는 대체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제품인 것이다.”

      ―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맞추나.

      파블로스키=“어제의 느낌으로 내일의 새것을 창조한다. 일관성은 샤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디자인 요소다. 디자인은 새롭고 현대적이면서도 과거를 연상시켜야 한다. 샤넬 패션쇼마다 상징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검은색 재킷과 2.55 핸드백이 등장한다. 디자인이 매번 다르면서도 언뜻 보면 느낌이 여느 패션쇼와 비슷하다. 클래식하면서도 최신 유행에 부합한다. 모순된 가치가 하나의 제품에 디자인으로 함축돼 표현되기는 참 어렵다. 미래를 건설하면서도 과거를 잇는 일관성을 강조하는 게 샤넬이다.”

      다구세=“‘가브리엘’만 봐도 향수병 모양이 기존 샤넬 향수병과 다르면서도 비슷하다는 인상을 준다. 이런 느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디자인이 오히려 혁신적인 것이다.”

      최근 샤넬도 명품의 주요 소비자층으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디지털 역량 강화에 나섰다. 파블로브스키 사장은 “지난 30년간 주요 고객의 딸을 공략하는 전략을 추진해왔다”면서 “오늘날 주요 고객의 딸들과 소통하려면 디지털은 필수”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디지털 플랫폼을 더욱 활성화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VVIP 고객만 접할 수 있었던 패션 앱(샤넬 매장과 신제품 소식을 고객에게 제공하는 앱)을 조만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샤넬의 향수·화장품은 온라인 판매를 개시한 반면, 패션·보석은 여전히 매장에서만 구매가 가능하다. 그랑지에 사장은 “보석·시계 같은 고가 제품은 고객과의 소통과 구매 경험이 여전히 중요하다”면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고객에게 제품 정보를 제공하더라도, 매장에서 소비자가 직원과 직접 대면하는 ‘1대1 경험’은 필수라고 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