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서도 필요한 '아날로그 틈새'

    • 전창록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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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7.10.07 08:00

      [On the IT]

      전창록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전창록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며칠 전 카카오 대리운전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단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운전기사가 오는 게 화면상으로 계속 표시되고, 우리 집은 등록되어 있고, 비용도 이미 등록된 카드를 통해 자동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 대리기사를 부르면 몇 번은 얘기를 해야 했다. 기사가 언제 오는지 전화를 할 때도 있었고, 구체적인 목적지에 대해 얘기를 하기도 했다. 아니면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한 번은 말을 나눠야 했다.

      카카오 대리 같은 대부분의 플랫폼 기반 O2O(Online to Offline) 비즈니스는 자동화 알고리즘을 통해 번거로움 없는(hassle free) 거래를 표방하고 있다. 내가 원하지 않는다면 단 한 번의 상호작용과 번거로움 없이 인간관계와 거래가 디지털상에서 매끄럽게 시작되고 종료된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이런 상황을 카카오 대리의 장점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 간에 직접적인 상호작용이나 스킨십이 없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

      최근 제주도로 터전을 옮긴 지인이 제주도로 놀러 오라는 '톡'을 보내왔다. 그 톡에는 음식·올레길·낚시 등 여러 가지 즐길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을 움직인 건 마지막에 LP판 1만장이 넘는 다방에서 새벽까지 음악을 듣자는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부쩍 주변에 LP판에 대한 얘기와 독립 서점들이 눈에 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아날로그의 반격'이라고 정의하며 여러 사례를 들고 있다. 최근 1회용 필름 카메라를 표방한 '구닥'이라는 유료 앱이 인기다. 출시 후 한 달 반 만에 42만 5000명이 내려받았다. 홍콩·대만 등 8개국에서 유료 앱 1위를 차지했다. 이것은 말 그대로 구닥다리 아날로그 카메라를 복제한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이다. 필름 한 통(24장)을 다 찍으면 1시간을 기다려야 다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찍은 사진을 보려면 예전처럼 인화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그 시간이 사흘이나 걸린다. 정성스럽게 사진 찍고 사진관에 필름을 맡기며 인화를 기다리던 옛날을 연상시킨다. 초스피드 디지털 시대에 번거롭게 느껴지지만, 오히려 이런 기다림 때문에 소비자들은 한 장 한 장 더 신중하게 사진을 찍게 되고, 기다리는 설렘을 경험하게 되었다며 열광한다.

      디지털 시대…아날로그의 반격

      스티치 픽스라는 미국 의류 쇼핑몰이 있다.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이 될 유망한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스티치 픽스는 자동화된 알고리즘(AI)으로 개별 고객에게 맞는 옷을 추천한다. 하지만 AI가 일단 추천한 옷을 쭉 펼쳐놓은 후 최종 추천은 직원이 한다. 이 일을 담당하는 인간 스타일리스트가 전체 직원 4400명 중 2800명에 달한다. 인공지능에 의한 알고리즘만 운영하는 쇼핑몰에 비해 고객 만족도가 훨씬 높다고 한다. 스티치 픽스에서 옷을 산 사람들이 다시 방문해 옷을 재구매하는 비율은 70%에 이른다.

      하나의 큰 흐름 속에서 또 하나의 작은 흐름이 일어나고 있다. 나는 감히 디지털 경제의 장점과 그것이 가져오는 기하급수적 기회와 필요에 대해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디지털 경제를 강화하는 데 아날로그적인 생각과 접근이 필요하며 아날로그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하고 싶다. 매끄럽고(seamless) 편리한 디지털 세계에서 약간은 불편한 틈이 있는 아날로그 경험이 독자적 가치를 갖는다는 뜻이다. 틈이 있어야 매끄러움도 돋보이고 숨도 쉴 수가 있다. 또 그 틈으로 생각과 감성이 다가오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