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츠·브랜슨·리카싱이 투자했다… 실리콘밸리 혁명 '실험실 고기'

입력 2017.09.15 16:20

동물 세포 추출·배양 2021년 시판 예정
美 최대 육류 업체 타이슨 푸즈는
식물성 고기 시판 중인 비욘드 미트 지분 5% 인수

멤피스 미츠, 비욘드 미트, 임파서블 푸즈….

이 세 회사의 공통점은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하며 동물 고기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 고기' 혁명에 뛰어든 벤처 기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 빌 게이츠가 거액을 투자한 회사들이라는 것이다.

2015년 창업한 멤피스 미츠는 동물 세포 배양을 통해 도축하지 않고도 동물 고기를 만들어낸다. 지난달 게이츠와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 킴벌 머스크(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의 동생), 잭 웰치 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 농업 회사 카길 등으로부터 170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지난해 미국 최대 육류 업체 타이슨 푸즈는 식물성 고기를 미국 수퍼에 대량 판매 중인 비욘드 미트의 지분 5%를 인수했다. 빌 게이츠, 트위터 공동 창업자인 비즈 스톤과 에번 윌리엄스, 맥도널드 전 CEO인 돈 톰프슨, 벤처캐피털 클라이너 퍼킨스, 식품 업체 제너럴 밀스 등도 비욘드 미트 투자에 참여했다.

특수 기술을 사용해 육즙이 흐르는 식물성 햄버거 패티를 개발한 임파서블 푸즈에는 올해 7월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페이스북 공동 창업자 더스틴 모스코비츠 등이 7500만달러를 투자했다. 임파서블 푸즈는 2011년 창업 후 빌 게이츠, 호라이즌 벤처스(리카싱 소유 투자사) 등으로부터 계속 투자를 유치했는데, 누적 투자 유치액은 2억6000만달러에 달한다. 2015년엔 구글로부터 3억달러(약 3400억원)에 회사를 팔라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게이츠가 미국의 3대 대안 고기 업체에 모두 투자한 것은 그의 평소 소신과 연결돼 있다. 그는 환경 파괴와 비효율적인 축산 시스템을 이유로 들며 육류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 왔다. 이 세 업체는 동물을 도축하지 않고도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한다는 점에서 게이츠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게이츠뿐 아니라 브랜슨·웰치 등 세계적인 기업인, 타이슨푸즈·제너럴밀스 같은 미국 식품 대기업까지 투자하는 것은 소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안 고기 분야가 앞으로 급성장하고 식품 산업의 혁신을 이끌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측하고 한발 먼저 나선 것이다.

대안 고기 분야의 산업적 가치가 높은 가장 큰 이유는 급증하는 육류 소비를 기존 축산업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50년엔 세계 인구가 90억명에 달하게 되며 육류 수요도 지금보다도 70% 이상 늘 것으로 전망된다. 축산업의 환경 파괴도 심각하다. 영국 비영리 국제정책연구소 채텀하우스의 2014년 말 보고서에 따르면, 가축의 되새김·배설·운송·사료 생산 등으로 생기는 온실가스가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4.5%에 달한다. 자동차·배·비행기 등 모든 운송 수단의 배출량보다 많다. 이미 세계 경작지의 30%가 가축 사료 생산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멤피스 미츠는 살아 있는 동물에게서 세포를 추출한 뒤 이를 배양해 고기를 만든다. 도축을 하지 않을 뿐 실제 동물 고기 맛과 차이가 거의 없다. 멤피스 미츠 직원이 배양육 샘플을 보여주고 있다.(사진 위)/QUARTZ·자료: 각 회사
동물 세포 배양한 '진짜 고기'

멤피스 미츠가 생산하는 고기는 식물을 이용해 고기 맛과 모양을 내는 '가짜 고기(fake meat)'가 아니라 진짜 소·닭·오리 고기다. 맛에서도 차이가 거의 없다. 다만 도축하지 않고 만들어낼 뿐이다. 우선 살아 있는 동물에서 세포를 추출해 4~6주 배양한다. 여기에 아미노산·산소·미네랄·당분 등을 첨가해 고기 형태의 근육조직으로 자라나게 한다. 이런 방식으로 작년 1월 소고기 미트볼(고기 완자)을 선보였고 올 3월엔 닭·오리 고기를 만들었다. 멤피스 미츠는 2021년부터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배양육 제품을 판매할 계획이다.

우마 발레티 멤피스 미츠 최고경영자(CEO)는 2015년 줄기세포 연구 생물학자 니콜라스 제노베세와 함께 회사를 창업했다. 그는 어렸을 적 도축 과정을 지켜본 고기가 식탁에 오른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심장 전문의가 된 그는 심장병 환자들에게 줄기세포를 이용해 심근을 재생시키는 수술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살아 있는 동물의 세포를 추출해 고기를 배양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발레티 CEO는 "소비자가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건강에도 좋은 방식으로 고기를 먹을 수 있게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붉은 육즙 흐르는 식물성 고기 곧 일반화

식물성 고기는 이미 식탁에 오르고 있는데, 일반 육류와 맛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술도 발전했다. 비욘드 미트는 올해 7월 미국 최대 식료품 체인인 크로거의 13개 주 600여 매장에서 완두콩 등 식물 단백질을 이용해 만든 버거용 고기 패티 '비욘드 버거'를 팔기 시작했다. 매장 내 육류 코너에 일반 소고기나 돼지고기와 나란히 진열돼 있다. 에선 브라운 비욘드 미트 CEO는 "소비자가 우리 제품을 특이한 상품이 아니라 육류 코너에서 파는 일반 고기와 다를 바 없는 제품으로 받아들이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비욘드 버거는 현재 크로거와 수퍼마켓 체인 세이프웨이를 포함해 미 전역의 2000여 수퍼마켓에서 판매되고 있다. 올 초까지 유기농 식료품 체인 홀푸드와 미 서부 일부 레스토랑에서만 판매됐던 것에 비하면 보급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창업자인 브라운 CEO는 청정에너지를 개발하다 식물성 고기 개발에 뛰어들었다. 축산업이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에 미치는 치명적 영향을 알게 되면서다. 그는 식물 단백질을 가열·냉각한 뒤 압력을 가해 동물 단백질 구조처럼 재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임파서블 푸즈도 식물성 고기 버거를 만들지만, 비욘드 미트와 달리 뉴욕·샌프란시스코의 고급 레스토랑과 버거 체인점에서 조리된 버거를 판매한다. 현재 우마미 버거 등 레스토랑 40여 곳에서 임파서블 푸즈의 '임파서블 버거'를 사먹을 수 있다.

임파서블 버거의 핵심 성분은 '헴'이라는 물질이다. 헴은 헤모글로빈에 들어 있는 붉은 색소 분자로 철분을 함유하고 있다. 고기가 핏기를 띠게 하고 익혔을 때 고기 특유의 맛이 나게 하는 물질이다. 임파서블 푸즈는 콩과(科) 식물 뿌리에서 헴을 추출해 복제했다. 여기에 감자 등 다른 식물에서 분리한 식물 단백질과 비타민, 코코넛 지방 등의 영양소를 결합해 식물성 고기 패티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패티는 진짜 소고기처럼 익혔을 때 붉은 육즙이 흘러나온다.

임파서블 푸즈는 이달 7일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 공장을 새로 열었다. 패트릭 브라운 임파서블 푸즈 CEO는 "이 공장에서 매달 식물성 고기 450t을 생산할 계획인데, 이렇게 되면 레스토랑 1000여 곳에 납품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밀레니얼 세대 덕에 산업 급성장할 듯

식물성 고기는 일반 육류 대비 가격 경쟁력도 갖춰 가고 있다. 버거 체인점 베어버거에서 판매되는 임파서블 버거는 13.95달러(약 1만5800원)로, 이곳에서 판매되는 다른 프리미엄 버거 제품과 값이 비슷하다. 버거용 패티 두 장이 들어간 비욘드 버거 한 팩은 수퍼마켓에서 5.99달러(약 6700원)에 판매된다. 브라운 CEO는 "앞으로 생산량을 늘리면 가격이 더 낮아질 것"이라고 했다. 반면 배양육은 일반 소비자가 사 먹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 연구·개발 단계라 생산비가 높다. 전문가들은 2020년대 초반쯤에는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초 출생자)가 소비 주력이 될수록 대안 고기 산업은 더 빨리 성장할 전망이다. 이들은 육류 소비의 증가가 환경을 파괴하거나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민감하게 여긴다. 따라서 그들의 기호를 만족시킨다면 약간 비싼 값을 주더라도 대안 고기를 구입해 줄 수요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비욘드 미트의 세스 골드만 회장은 "미국은 전 국민의 5%가 채식주의자이고 2010년부터 이미 육류 수요가 줄고 있다"면서 "미국에서 유기농이 주류가 되는 데 20년이 걸렸지만, 대안 고기는 그보다 훨씬 빨리 대중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Idea & Trend

더보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