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로 철강 제국 만들고 파산 직전엔 수익성 낮은 공장 매각

    • 오화석 소장

입력 2017.09.15 16:26

'철강왕' 락시미 미탈의 위기 탈출법

사막 가시덤불 숲에 살던 가난한 소년… 철강사 차린 부친 덕에 철강왕 꿈 키워
업계 그 누구도 M&A 시도 못 한 1970년대부터 해외 기업 차례로 인수

락시미 미탈 회장은 기업 간 글로벌 인수·합병(M&A) 바람이 불기 훨씬 전인 1970년대부터 해외 철강기업을 차례로 인수하며 경쟁력을 갖춰나갔다. 당시 중소 철강기업을 소유한 인도 경영자로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그가 택한 최선의 위기극복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 전략이 영원히 유효한 것은 아니다. 시대에 맞춰 전략도 바뀌어야 한다. 작년 초 나온 '액션 2020 플랜'은 그가 현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내놓은 최선의 방책이다.

미탈 회장은 1950년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주 사둘푸르에서 태어났다. 다섯 아이 중 맏이였던 그는 어릴 적 매우 가난했다. 거주한 곳은 타르사막 가시덤불 숲에 지어진 작은 콘크리트 집이었다. 이 집에서 친척 20여 명과 함께 살았다. 장판도 없는 콘크리트 바닥에서 생활했고 밧줄로 엮은 침대에서 잤다. 그가 떠날 때까지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았다.

미탈 가족은 이후 돈을 벌기 위해 당시 인도 수도였던 동부 캘커타(현 콜카타)로 이주한다. 미탈이 6세 때였다. 캘커타에 이주해서도 가족은 가난했다. 그의 집은 전차길 바로 옆 낡은 2층 아파트였다. 창문을 열면 얽히고설킨 전차 전깃줄이 시야를 가렸다. 새벽마다 시끄러운 전동차 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아버지는 이후 이스팟 인더스트리즈라는 철강회사를 차려 운영했다. 어린 미탈은 학교가 파하면 아버지 회사로 달려가 우편물 처리 등 잔심부름을 하며 일손을 도왔다. 그는 뜨거운 용광로와 빨갛게 달궈진 철강봉, 쉬지 않고 돌아가는 고무벨트 등 철강에 대한 많은 것을 그곳에서 보고 배웠다. 아버지 회사에서의 경험은 어린 미탈이 철강왕의 꿈을 키우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대학 졸업 직후인 1976년, 스물여섯에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철강사업을 시작했다. 자카르타에서 700㎞ 떨어진 수라바야라는 도시에 '이스팟 인도'라는 제철 회사를 세웠다. 미탈이 철강 사업을 시작한 첫해 3만t에 불과했던 연간 생산량은 14년 후 33만t으로 11배가 됐다. 그러나 '세계 철강왕'의 꿈을 이루기 위해선 무언가 다른 게임 방식이 필요했다.

블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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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 위주 철강업계에 글로벌 M&A 실현

해답은 글로벌 진출이었다. 미탈 회장은 경영난에 빠진 외국 국영 철강사를 싸게 사들여 빨리 우수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전략으로 성공을 거머쥐었다. 그는 세계화와 M&A를 주된 경영전략으로 채택했다. 당시로써는 혁명적이었다. 그가 이 방식을 도입한 1970년대만 해도 철강업계에서 M&A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철강업은 국가 기간산업으로 본질적으로 내수산업이란 인식이 팽배해 있을 때였다.

미탈 회장은 멕시코, 트리니다드토바고, 카자흐스탄, 캐나다, 독일, 미국, 아일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제철업체를 계속 사들여 몸집을 급속도로 불려나갔다. 10년간 인수한 기업만 30여 개에 달했다. 그 결과 그의 회사는 1995년 철강생산 능력 총 560만t에서 10년 후인 2005년에는 6300만t의 세계 최대 철강회사로 급부상했다. 그런 상황에서 2006년 세계 1위 미탈이 2위 아르셀로까지 인수·합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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