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 경영'실천한 글로벌기업들…"주가 상승률, 10배 높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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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7.09.02 08:00

      '포용적 자본주의 실행 프로젝트' 좌장…세계 4대 회계법인 EY '마크 와인버거' 회장

      "자본주의가 승자에게 더 많은 특권을 주는 거품을 키우고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큰 인기를 끈 프랑스 좌파 경제학자가 분기탱천하며 남겼을 법한 말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이 말은 자본주의 본류(本流)인 영국 중앙은행 총재가 한 말이다. 마크 카니 영란은행 총재는 3년 전 '포용적 자본주의(inclusive capitalism)'를 주제로 한 회의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월스트리트의 공적(公敵)'으로 불리는 마이클 루이스의 저서 '플래시 보이스(flash boys)'를 인용하며 "주식시장이 첨단 기술로 무장한 일부 기관투자자의 배만 불리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수익 창출을 최우선 순위로 두는 영미권 금융·기업인의 행동 양식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었다.

      '마크 와인버거' 회장
      장기적 안목 결여된 기업 회계 기준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까지 영미권 주류 사회에서 이렇게 금융자본주의를 공격하는 것은 금기(禁忌) 영역이었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이나 한계점을 완곡하게 지적해도 곧장 '좌파학자'나 '사회주의자'라는 꼬리표가 달리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인해 양극화의 부작용이 선명해지자 수십 년간 자본주의 시스템을 떠받쳐온 굳건한 믿음에도 조금씩 균열이 생겨났다. 2014년 무렵부터는 주주 이익 극대화가 목표인 '금융자본주의'를 넘어서, 기업이 주주뿐 아니라 직원·지역사회·고객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보호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포용적 자본주의'라는 말이 주류 사회에서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6월 네슬레·듀폰·유니레버·펩시·JP모건 등 17개 다국적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포용적 자본주의'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모색하기 위해 '제방 프로젝트(Project Embankment)'라는 이름의 사업을 출범시켰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장기 성장할 수 있도록 구체적 기준을 만드는 게 목표다. WEEKLY BIZ는 이 프로젝트의 좌장 역할을 맡은 마크 와인버거(Weinberger) 언스트앤드영(EY) 회장을 만나 '포용적 자본주의'와 '포용 경영'에 대해 들어봤다. E&Y는 세계 4대 회계법인 중 한 곳이다.

      ―왜 지금 시점에서 '포용 경영'인가.

      "기업이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의 30%만이 기업 활동이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 많은 기업인과 전문가들이 지금의 시스템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성장의 과실 뒤에 숨어 있는 불합리·불공정·불평등·부조리 등 '4불(不)'이 주된 원인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문제인가.

      "지금의 회계 기준은 1970년대 제조기업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것이라 회사의 가치를 포괄적으로 나타내지 못한다. CEO도 단기 수익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예를 들어 회사가 공장에 100달러를 투자하면 이는 회계 장부엔 자산으로 기록된다. 자산 가치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줄어든다. 로봇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회사가 인력 교육에 100달러를 투자하면, 이는 곧바로 일회성 비용으로 처리된다. 회사의 재무 가치를 단숨에 떨어뜨리게 되는 것이다. 인력 투자에 대한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이러한 기준은 CEO의 의사 결정을 어렵게 만든다."

      ―현재의 회계 시스템에 결함이 있다고 보는 것인가.

      "현재의 회계 원칙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 목표는 주주뿐 아니라 이해관계자 모두의 번영이다. 다만 과거에 이렇게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보완하자고 제안했다면, 대다수가 무관심하거나 반대 의사를 내비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영미권 기업뿐 아니라 일본의 연기금 등 세계 곳곳에서 제방 프로젝트에 참여해 공감대를 나타내고 있다."

      [그래픽] 금융 자본주의와 포용적 자본주의
      새로운 재무제표 기준 만들어야

      고(故) 밀턴 프리드먼 시카고대 교수는 "기업의 유일한 사회적 책임은 이익을 증대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서구 사회에서 기업인의 이익 추구 활동은 성역(聖域)에 가까웠다. 월스트리트 금융인은 영화 '월스트리트'(1987) 주인공 고든 게코의 대사 "탐욕은 좋은 것(greed is good)"을 거리낌 없이 입버릇처럼 인용하곤 했지만, 아무도 이러한 문화가 잘못됐다고 지적하지 못했다. 포용적 자본주의와 포용 경영은 이렇게 뿌리 깊은 신념과 문화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촉구한다.

      ―어떤 해법이 필요한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재무제표 이외에 새로운 지표와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기업 활동을 예측하려면 산업 전반에 걸쳐 분기별 재무제표를 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모두가 단기 실적에 집착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포용적 자본주의가 제시하는 또 다른 해법은 중(中)숙련 기술자를 육성하자는 것이다. 건설·교통·교육 등 미국에서만 향후 7년간 일자리 1600만개를 만들 수 있는 분야다. 유명무실한 견습 제도의 활성화가 방법이 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표를 만들어야 하나.

      "회사의 장기적 가치를 판단하려면 기업이 장기 성장을 위해 얼마나 혁신 기술 개발과 인재 육성에 투자를 하는지 고려해야 한다. 또한 브랜드 가치나 직원의 조직 참여도, 그리고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의 행복도 참고해야 한다. 그래서 회계 장부에 적힌 데이터 이외에 더 많은 데이터를 사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인터넷상에는 수많은 비정형(非定型) 데이터가 있다. 고객이 회사의 제품을 평가한 블로그 혹은 직원들이 익명으로 남긴 회사에 대한 평가와 향후 전망 등이 대표적인 예다. 경영진부터 직원이 실적을 넘어서 '목표'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글로벌 대기업들은 회사가 장기적으로도 성장하려면 주주뿐 아니라 직원·지역 사회를 위해서도 일해야 한다는 믿음에 따라 비용을 감수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위부터 스타벅스의 온라인 대학 지원 프로그램, 존슨앤드존슨의 지역 사회 활동, 유니레버의 자원 재활용 현장.
      글로벌 대기업들은 회사가 장기적으로도 성장하려면 주주뿐 아니라 직원·지역 사회를 위해서도 일해야 한다는 믿음에 따라 비용을 감수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위부터 스타벅스의 온라인 대학 지원 프로그램, 존슨앤드존슨의 지역 사회 활동, 유니레버의 자원 재활용 현장. / 스타벅스·존슨앤드존슨·유니레버
      스타벅스·유니레버의 포용 경영

      포용 경영은 단순히 사회적 책임뿐 아니라 기업 실적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분석이 있다. EY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조직이 수익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목표로 삼으면 근속률이 3배 이상 높아지고, 제품의 질과 가격이 동일하다고 가정했을 때 고객의 구매 의사 또한 53%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 공동체 성장 등 사회적 영향을 목표로 삼은 기업의 주가 상승률(1996~2011년)은 같은 기간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500 평균 지수 상승률보다 10배 이상 높았다.

      ―배울 만한 사례가 있나.

      "유니레버는 연차 보고서에서 실적을 줄줄이 읊기보다는 장기 전략을 담는 데 많은 공을 기울이고 있다. 독일 기업 지멘스는 미국 노동부와 함께 과학기술 분야에서 견습생을 육성하고 있다. 존슨앤드존슨은 오로지 수익성이 목표가 아니라 지역사회에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어떤 기업의 리더가 가장 인상적이었나.

      "3년여 전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창업자와 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바리스타에게도 온라인 대학 학비를 전액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그에게 '바리스타에게 학비를 지원해주면 회사를 떠날 수도 있지 않으냐'고 물어봤다. 대답은 단순 명쾌했다. 더 많은 사람이 교육을 받으면 경제가 더 빨리 성장하고, 더 많은 사람이 커피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CEO가 이런 일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 쉽지 않다. 포용 경영은 당장은 보상받지 못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