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in Depth] '디지털 금융' 전도사 위성호 신한은행장
2013년 간편결제 등장에 모바일 카드결제 내놔… 위기를 기회로 바꿔 그때부터 디지털 경영

위성호(59·사진) 신한은행장은 보수적인 국내 금융계에서 보기 드문 'IT 친화형(型) CEO'로 정평이 나 있다. 신한카드 사장 시절부터 IT에 밝았다. 2013년에 공인인증서 없이 비밀번호 등으로 간편하게 결제하는 간편결제 서비스가 네이버·카카오 등 IT 업체를 중심으로 등장, 기존 카드사를 집어삼킬 것이라는 공포가 최고조에 이르자, 그는 모바일 카드 결제 서비스를 내놓으며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다. 이 서비스는 현재 고객 수 700만명, 취급액 5조6000억원(2016년 기준)에 이르는 '신한FAN(판)'이란 모바일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결제 서비스를 통틀어 국내에서 최대 규모이다.
그는 빅데이터(big data)에도 일찌감치 주목했다. 신한카드 사장 취임 5개월 만인 2013년 12월 업계 최초로 고객 2200만명의 카드 사용 내용을 분석하는 빅데이터 센터를 만든 것이다. 고객의 성별·연령·소득·지역·소비 패턴 등의 빅데이터를 분석해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코드나인(Code9) 카드'는 출시 2년 만에 500만개가 판매돼 단일 시리즈로 업계 최단(最短) 기록을 세웠다.
신한은행이 국내 은행 최초로 선보인 모바일 자산관리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 서비스 엠폴리오(M-Folio)는 올해 7월 말 현재 회원수 3만4100명, 납입 금액 252억6000만원에 달한다. 엠폴리오 도입 후 신한은행의 모바일 펀드 판매액은 전년 동기 대비 46% 증가했다.
한국 금융계에서 '디지털 경영' 전도사이자 실행자로 뛰고 있는 위성호 행장을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태평로 신한은행 본사 6층 집무실에서 만났다.

―디지털 경영에 올인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고객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고객은 일상생활 속에서 디지털로 인한 편리함을 향유하고 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디지털 그 자체, 기술이 아니라 이러한 디지털을 통한 시공간적 제약이 없는 편리함이다. 쇼핑, 동영상, 교통, 커뮤니케이션, 배달 등 고객이 일상생활 속에서 소비하는 대부분의 콘텐츠가 디지털화돼 제공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금융은 그동안 규제 등 제약으로 늦은 감이 있다. 고객에게 디지털을 통한 가장 편리한 금융, 뱅킹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은행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절박함을 기반으로 디지털 경영을 추진해가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은행들과 비교해 국내 은행권의 디지털화는 어느 수준인가.
"은행권만 따져보면 인터넷 뱅킹, 모바일 뱅킹 등 국내 은행권의 디지털화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 일본, 유럽 등을 통틀어봐도 모바일뱅킹 이용고객 비율, 모바일 뱅킹에서의 상품 및 서비스 커버리지에서 국내 은행들이 우위에 있다. 예를 들어 디지털화를 가장 잘하고 있다는 스페인의 BBVA만해도 최근 모바일 고객 수가 300만명을 넘긴 수준이다. 하지만 핀테크 등 혁신기업에 대한 지분투자, 핀테크업체 인수합병(M&A)이나 합작벤처 설립 등 다양한 방법으로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하는 측면에서는 미국, 유럽은행 등이 조금 앞서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금융권의 디지털화는 필연적인가.
"그렇다. 불가역(irreversible)한 흐름이다. 이에 맞춰 금융권의 변화도 불가피하다. 구체적으로 지금까지 금융 서비스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공급자 중심의 대량생산 체계였다면 앞으로는 고객마다 정확한 니즈(needs)를 즉각 반영하는 온 디맨드(on demand) 형태가 될 것이다."
―금융 종사자들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온 디맨드 서비스를 구현하려면 은행은 모바일 기기와 소셜미디어, 사물인터넷(IoT), 위치 기반 정보, 빅데이터 등을 통해 고객의 삶과 연결돼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시대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위 행장은 "IT에 익숙하지 않은 40~50대 금융인들도 변화가 필요하다"며 "스마트 기기 앞에서 작아지는 40~60대가 있다면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용기를 내보길 바란다"고 했다.

―디지털 경영에 뛰어든 것은 위기의식 때문이었나.
"그런 측면이 강하다. 2013년 초 간편결제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카드사들의 영역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당시 '간편결제가 보편화되면 카드사들이 모두 망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차례 들었다. 앞으로 카드사의 비전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고 그 해결책이 디지털 경영이었다."
―디지털 경영의 요체는 무엇인가.
"'속도(speed)'와 '연결(connect)'이 핵심이다. 실행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빨리 방향을 트는 것이 디지털 경영에 필수적이다. 올해 하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 '리디파인3·3·3(Redefine 3·3·3) 룰'을 제시했다. 3일간 아이디어를 집중 고민하고, 3주간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3개월간 강력히 실행한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깜짝 아이디어'가 중요했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아이디어가 곳곳에 널려 있다. 아이디어를 연결해 실행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그는 인터뷰 도중 집무실 책상 위에 있던 연필꽂이와 화분을 차례로 가리켰다. 그러면서 "화분과 연필꽂이는 절대 연결되지 않을 것 같지만, 연결하면 완전히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며 "금융업도 완전 해체해 분석하고 다른 업종과 연결해야 새로운 산업이 탄생한다"고 했다.
―올 7월 조직 개편을 단행했는데.
"디지털 경영을 본격화하기 위해서였다. 디지털 그룹 안에 연구조직인 랩(Lab) 7개를 신설했다. 랩은 업무와 프로젝트에 따라 인력이 구성되는 TF(태스크포스) 성격을 갖고 있는데 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 디지털 제휴, 로보어드바이저 등으로 구성했다. 랩장(長)은 연공서열과 상관없이 해당 분야에 가장 뛰어난 직원이 맡는다. 채용도 랩장이 전권을 갖고 필요한 인재를 직접 뽑도록 했다."
그는 "부서에서 필요한 인재는 해당 부서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만큼 내부 직원은 물론 외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잡 포스팅(job posting)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잡 포스팅은 직원이 희망하는 부서에 지원하거나 부서가 직접 외부 인력을 채용하는 제도이다.

―K뱅크, 카카오뱅크 같은 인터넷 은행이 국내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카카오뱅크 출시 첫날 직원들과 함께 직접 이용해 봤다. 낮은 수수료나 높은 수신 금리 등은 시장에 파급력이 분명 있다. 카카오뱅크는 카카오라는 강력한 플랫폼과 사용자 인터페이스·경험(UI·UX) 개발 능력이 강점이다. 고객 중심의 프로세스 및 UI·UX 측면의 혁신은 우리도 배울 것이 많다고 판단한다."
―행원에서 국내 1위 은행의 최고 수장까지 오른 비결을 꼽는다면.
"집중과 끈기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일례로 어떤 문제가 있으면 해결될 때까지 끝까지 집중해 고민하는 습관이 있다. 그리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문제점을 고민하고 실행하면서 방향을 전환하거나 문제점을 수정한다."
―CEO로서 경영 철학은.
"CEO의 가장 큰 사명(使命)은 비전 제시와 자원 배분이라고 본다. 임직원들에게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는 한편 통찰력을 바탕으로 자원을 효과적으로 분배해야 한다. 인력과 자본이라는 조직 자원을 제대로 배분하려면 과감한 결단성도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