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개 브랜드 하나씩 인수… 25년간 정상 지킨 로레알

입력 2017.08.12 08:00

[Cover Story] 로레알그룹 장폴 아공 회장

화장품 산업은 진입 장벽이 낮아 전 세계에서 매년 수천 개 기업이 탄생한다. 무한 경쟁 속에서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기업도 부지기수다. 화장품 매출 세계 3위인 미국 P&G는 지난해 실적이 부진한 화장품 브랜드 43개를 묶어 팔아 버렸다. 한류(韓流) 열풍을 타고 아시아에서 사업을 확장해온 한국 화장품 기업들도 최근 난관에 부딪혔다.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 여파로 아모레퍼시픽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30% 줄었다.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한 탓이었다.

장폴 아공 로레알 회장은 유통 시장의 미래에 대해“온라인과 오프라인이 혼합된 형태가 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온라인이 성장세이고 오프라인이 주춤하고 있지만, 미래에는 두 채널의 시너지가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로레알
맞수 에스티로더와 두 배 차이… 독보적 세계 정상

프랑스 로레알(L'Oréal)은 세계 화장품 시장에서 25년간 정상을 지켰다. 지난해 로레알 매출은 258억유로(약 34조원)로 주요 경쟁사인 미국 에스티로더의 두 배 수준이다.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랑콤과 입생로랑부터, 올리브영 같은 드러그스토어(약국과 잡화점이 결합한 형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라로슈포제와 로레알 파리까지 전부 로레알의 브랜드 자산이다. 글로벌 브랜드만 34개인데, 로레알이 직접 만든 것은 세 개뿐이다. 1964년 랑콤 인수를 시작으로 지난 50여년간 공격적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브랜드를 하나둘 쌓아올려 사업을 키웠다. 이렇게 다양한 브랜드를 관리하면서도 세계 모든 곳에서 고른 실적을 내며 순항 중이다.

109년 전 프랑스 청년 외젠 슈엘러가 모발 염색제를 만들면서 시작한 이 기업은 어떻게 세계 화장품 시장을 석권하게 됐을까.

WEEKLY BIZ는 최근 프랑스 로레알 본사에서 장폴 아공(Agon· 61·사진) 회장을 만나 그 비결을 물었다.

로레알 본사는 파리에서 차로 30분쯤 떨어진 북부 소도시 클리시(Clichy)의 시내 한가운데 있었다. 창업자 슈엘러가 1920년대 인수한 비누 기업 공장이 있던 자리다. 본사는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건물 앞쪽의 금빛 로레알 로고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지 모를 정도였다. 출입증을 받고 들어선 중앙의 넓은 공간에는 직원 전용 카페가 마련돼 있었다.

인터뷰 예정 시간인 오전 11시에 정확히 나타난 아공 회장은 190㎝ 장신이었다. 온화한 미소를 띤 채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며 악수를 청했다. "한국은 50번도 넘게 방문했다"면서 "가장 좋아하는 시장 중 하나인데, 소비자들이 전문가 못지않게 화장품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공 회장은 로레알 109년 역사상 네 번째 최고경영자(CEO)다. 창업주 슈엘러가 세상을 떠난 1957년 이후 로레알은 전문 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는데 첫 전문 경영인이었던 프랑수아 달의 재임 기간만 27년이었다. 아공 회장의 전임자인 린지 오언 존스도 18년간 자리를 지켰다. 아공 회장은 올해로 11년째다. 그의 재임 중 로레알의 연 매출은 2006년 158억유로에서 지난해 258억유로로 64% 증가했다.

M&A와 위기 돌파력이 성장 동인

아공 회장은 파리경영대학원(HEC Paris) 졸업 후 1978년 로레알에 입사했다. 입사 3년 만에 당시 실적이 최악이었던 그리스 지사를 맡아 살려내며 위기관리 능력을 인정받았다. 아시아 금융 위기가 터진 1997년에는 아시아 총지사장을 맡아 시장을 또 살려냈다. 2001년 미국 지사장 때는 9·11 테러 이후 모든 화장품 브랜드 매출이 곤두박질한 상황에서 백화점 대신 미용실과 대중용품 시장을 공략해 성장을 이끌어내는 기지를 발휘했다.

아공 회장은 앞으로도 위기와 기회가 공존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경영 환경이 "어느 때보다 변덕스럽고(volatile) 불확실하고(uncertain) 복잡해(complex)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다(ambiguous)"고 했다. 그러면서도 두 가지 기회를 얘기했다. 소셜 미디어와 셀카 문화였다. 그는 "오늘날 소비자들은 셀카를 찍어 인스타그램·페이스북에 공유하기 위해 색조 화장에 더 신경 쓴다"면서 "로레알에는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로레알 본사 10층의 아공 회장 사무실은 한 면이 창문이었고 꽤 널찍했다. 창밖으로 에펠탑이 작게 보였다. 창가에는 비오템 남성용 스킨, 케라스타즈 샴푸, 랑콤 향수 등 로레알이 보유한 브랜드의 제품이 우승 트로피처럼 진열돼 있었다. 넓은 책상과 뒤편 책장에는 '로레알'이라고 적힌 문서와 파일, 책으로 가득했다. 책장 사이로 이탈리아 기호학자이자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의 '미의 역사(On Beauty)'가 보였다. 책상 옆은 아공 회장의 허리까지 올라오는 거대한 지구본 차지였다. 아공 회장은 인터뷰 시작 전 지구본을 한 손으로 돌려 한반도를 가리키고는 "(한국을) 항상 주시하고 있다"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로레알은 작년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전년보다 매출이 5% 늘었는데, 특히 한국·대만이 성장을 이끌었다. 프랑스의 작년 화장품 수출은 전년보다 2% 늘어 처음 120억유로(약 16조원)를 넘어섰다. 한국으로의 수출은 전년보다 18% 증가해 중국(15%)·싱가포르(13%)·일본(4%) 등을 능가했다. 화장품은 프랑스에서 항공에 이은 2위 수출 산업이다.

1. 기업 M&A(인수·합병)

로레알은 지난 50년간 공격적 기업 인수로 사업을 키웠다. 실제 로레알의 34개 주요 브랜드 중 로레알이 만든 브랜드는 '로레알 파리'와 '케라스타즈'등 세 개뿐이다. 로레알은 1964년 프랑스 고급 화장품 기업 '랑콤' 인수를 시작으로 '가르니에' '비쉬' '메이블린 뉴욕' '슈에무라' 등을 인수해 다양한 연령·가격대를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아공 회장은 "로레알의 목표는 '모두를 위한 아름다움(beauty for all)'"이라면서 "그러려면 소비자가 원하는 화장품을 잘 만드는 브랜드, 또는 관련 기술을 가진 기업을 손에 넣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로레알은 현재 140개국에서 화장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신흥 시장을 더 공략해 20억명 수준인 로레알 소비자를 2020년까지 10억명 더 늘릴 계획이다. 그는 "시장별로 소비자의 취향과 피부, 머릿결, 화장품 사용법 등이 다 다르다. 지금도 새로운 소비자층과 수요가 생기고 있는데 그때마다 필요한 브랜드를 인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인수할 기업을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시장의 모든 기회를 살피고 매년 30여개 기업을 검토한 뒤, 이 가운데 1~3개 기업을 인수한다. 기준은 세 가지다. 첫째, 지금 우리에게 없지만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브랜드인가. 둘째,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업인가. 셋째, 글로벌 브랜드로 키울 수 있는가. 글로벌화가 특히 중요하다. 우리는 글로벌 기업이다. 프랑스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에 불과하다. 일부 지역에서만 통할 것 같은 브랜드는 인수하지 않는다."

―2006년 인수한 더바디샵은 실적이 부진해 최근에 결국 매각했다.

"더바디샵 자체는 훌륭한 브랜드다. 하지만 인수 당시 로레알과 더바디샵은 기업 문화가 아주 달랐다. 더바디샵만의 가치와 제품을 존중했기 때문에 인수 후에도 로레알 조직에 편입시키지 않고 별도 운영했다. 그게 실수였다. 로레알이 인수한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는 이유는 로레알과 그 기업의 기술·사람·문화가 혼합되기 때문이다. 로레알만의 '칵테일 기술(mixology)'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폭발적 에너지가 나온다. 우리는 이를 '로레알의 화산(volcano)'이라고 부른다. 더바디샵은 로레알의 화산으로부터 격리·보호했다가 실패한 경우다."

2. 세계화+현지화

로레알은 세계화와 현지화 양쪽 모두에 능한 기업이다. 로레알은 새 시장을 공략할 때 먼저 대표 선수인 '랑콤'을 앞세워 백화점 유통망을 선점하고 인지도를 높인다. 그다음 '메이블린' '로레알 파리' 같은 중저가 브랜드로 대중성을 확보한다. 마지막으로 지역 소비자가 원하는 브랜드를 내놓거나 유망한 현지 기업을 인수해 시장을 석권한다.

―로레알은 세계화와 현지화를 동시에 노린다. 서로 충돌하지 않는가.

"그 균형을 맞추는 게 경영이다. 경영은 일종의 예술 아닌가(웃음). 복잡한 세상에선 양쪽 전략 모두 필요하다. 브랜드 정체성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동시에 시장별로 맞춤형 제품을 선보여야 한다. 일례로 한국 소비자들은 피부에 바르는 기초 화장품을 중시하는 반면, 미국 소비자는 색조 화장품을 선호한다. 로레알의 중저가 브랜드 '로레알 파리'는 모든 시장에서 '나는 소중하니까(Because I'm worth it)' 캠페인으로 구축한 브랜드 정체성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로레알 파리'가 중국·미국·러시아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조금씩 다르다. 지역별 연구소에서 제품 개발과 생산을 나눠서 하기 때문에 현지화가 가능한 것이다."

로레알은 매출의 3.3%(지난해 8억5000만유로)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한다. 투자 규모는 물론 연구원 수도 업계 최고 수준이다. 연구원 3800여명이 매년 등록하는 특허만 500여개다. 핵심은 '현지 특성을 어떻게 살리느냐'다. 로레알은 프랑스 글로벌 연구소를 포함해 미국·일본·중국·인도·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 등 7개국에 지역 연구소를 운영한다. 지역 연구소는 각국의 화장품 사용 습관, 피부 특성 등을 토대로 세부 연구를 진행한다. 일례로 '로레알 파리'는 브라질 여성들이 헤어컨디셔너를 사용한 후에 씻어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파악해 씻어내지 않아도 가벼운 머릿결을 만들어주는 제품을 개발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1위를 못하고 있다.

"두 시장은 (로레알이 진출하기 전부터) 자국 업체들이 시장을 장악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한국과 일본의 자국 업체들은 글로벌화보다 내수 시장을 지키는 데 힘을 많이 썼다. 결과적으로 내수 시장은 지켜냈지만 세계시장에서는 아직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우리는 한국·일본 기업과 목표가 다르다. 우리 목표는 '세계 정복'이다."

3. 디지털화

아공 회장이 1년 중 본사에 머무르는 시간은 합쳐서 절반이 되지 않는다. 대부분 해외 출장이다. 각국의 로레알 브랜드 매장을 찾아가 시장 흐름을 파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요즘은 인터넷에 접속해 '온라인 출장'도 다닌다. "전자상거래와 소셜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전자상거래 부문은 로레알 연간 매출의 6% 이상을 차지하며 작년에 33%나 성장했다. 광고 지출 중 디지털의 비중도 30%를 넘어섰다.

―2010년 '디지털의 해'를 선언했다. 이후 로레알은 얼마나 바뀌었나.

"솔직히 7년 전엔 디지털화가 무슨 의미인지도 잘 몰랐다. 당시 디지털업계 친구들에게 많은 얘기를 들은 뒤에야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우리 생활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화장품 산업에도 '디지털 쓰나미'가 덮칠 것이라는 위기의식에 휩싸였다. 그래서 (옛 성에서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탑의 종을 울리듯) 종을 울렸다. 로레알의 강점은 그룹 차원에서 종을 울리면, 곧바로 실행에 나선다는 것이다. 2010년 이후 4년간 디지털 전문가 1600명을 외부에서 뽑아 마케팅팀에 완전히 녹아들게 했다. 앞으로 신규 마케팅 직원은 반드시 디지털 업무 능력을 갖추도록 할 계획이다. 2013년에는 최고디지털책임자(CDO) 직함을 만들고 루보미라 로셰를 CDO로 영입했다."

로셰 CDO 임명 당시 그의 나이는 37세로 글로벌 기업 중 최연소 CDO였다. 기존 최고정보책임자(CIO)는 재무·회계·생산관리 등의 IT 분야만 다뤘지만, CDO는 모바일·빅데이터 등 여러 방면에 대한 지식·경험을 갖고 제품 개발·마케팅에 직접 관여한다.

아공 회장은 디지털 역량이 강한 브랜드로 2014년 5억달러(약 5600억원)를 주고 인수한 '닉스'를 들었다. 닉스는 재미교포 토니 고가 1999년 미국에서 창업한 색조 화장품 브랜드다. 닉스의 작년 매출은 전년보다 125% 증가했다.

"닉스의 제품 개발은 온라인이 주도한다. 블로거와 메이크업 아티스트, 소셜 미디어에서 영향력이 큰 개인들이 협력해 새 제품을 만들어낸다. 하루 종일 소셜 미디어에 접속해 있는 젊은 층의 취향을 잘 반영한다. 온라인에서 소문을 탄 덕에, 온라인뿐 아니라 실물 매장에서도 줄이 길게 늘어설 정도로 인기가 많다. 디지털의 힘이다."

―디지털화가 화장품 산업에 미친 영향은.

"엄청난 기회다. 과거에는 매장 점원이나 광고를 통해서만 소비자와 소통했지만, 오늘날에는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확산으로 소통 방법이 수천 가지다. 특히 소셜 미디어는 화장품 산업에 혁명이다. 소셜 미디어에서 보이는 아름다움, 즉 '소셜 뷰티(Social Beauty)'가 부상했다. 밀레니얼 세대(1980~1995년 출생)는 셀카를 찍어 이를 친구들과 공유하는 게 일상이다. 사진에 잘 나오려고 짙은 색조 화장을 찾는 소비자가 늘었고, 이 때문에 색조 화장 브랜드들이 고속 성장하고 있다. 로레알의 색조 화장 사업은 작년에만 15% 성장했다."

4. 끊임 없는 변신

―25년 동안 1위를 유지한 비결은 무엇인가.

"큰 틀에서 기업 문화와 비전, 경영 전략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만, 로레알은 세상의 변화에 끊임없이 적응해 왔다. 그것이 성공의 필수 조건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늘 미래를 준비해왔다. 과거나 현재에 연연하지도, 경쟁자를 신경 쓰지도 않는다. 로레알은 20년 전에도 1위였지만, 20년 전 로레알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다. 10년 후에는 또 다른 기업으로 바뀔 것이다."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로레알만의 기업 문화는.

"로레알 조직은 결정권이 본사에 몰려 있지 않고 분산된 편이다. 시판·백화점·헤어살롱·병원약국 네 개의 사업부가 있다. 각 사업부를 네 명의 사장이 이끌고 각 사업부 산하 개별 브랜드들도 자율적으로 일한다. 디지털 시대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구조다. 디지털 시대에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제안하고 시험해봐야 한다. 좋은 아이디어는 본사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다양한 경험과 문화 속에서 나온다. 로레알의 중요한 혁신이 한국이나 중국·미국·영국 지사에서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

―로레알의 최대 장점은 무엇인가.

"좋은 성분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지만 최대한 많은 고객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가격을 매긴다는 것이다. 백화점에서 파는 '랑콤'과 드러그스토어에서 파는 '메이블린'의 가격이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럭셔리 브랜드도, 중저가 브랜드도 우수한 품질에 비해 가격이 합리적이다. 우리의 목표는 언제까지나 '모두를 위한 아름다움'이다."

―5년 후 로레알은 어떤 모습일까.

"정상에 있을 것이다. 자신한다. 화장품 업계에서 로레알만큼 변화에 잘 대응하는 기업은 없다. 디지털화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의미 있는 제품을 끊임없이 선보인다. 지속 가능하고 윤리적인 경영도 강화하고 있다. 앞으로 세상에서 이런 특징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아공 회장이 CEO를 맡은 지 11년이나 됐다. 그래서 어떤 리더로 기억되길 원하는지 물었다. 그는 "5년 뒤에나 물어보라"고 말했다. 적어도 5년은 더 '로레알 제국'의 혁신을 지휘하겠다는 의미이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작별 인사를 할 때에도 그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5년 후에도 로레알은 세계 정상을 유지할 것 같았다. 세계화 행로에 비바람을 만난 한국 화장품 회사들은 5년 뒤 정상 근처에 서 있을까.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Cover Story

더보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