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번 부수고 다시 지은 호텔… 에머슨퍼시픽은 달랐다

    • 0

    입력 2017.07.08 08:00 | 수정 2017.07.08 16:22

      에머슨퍼시픽, 리조트 업계 '나홀로 호황' 비결

      이달 1일 부산시 기장군 해안가에 문을 연 6성급 호텔 '힐튼 부산'에는 남다른 게 몇 개 있다. 보통 로비가 있는 1층에 들어가면 터널 형태의 긴 복도가 방문객을 당황하게 만든다. 복도 끝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2층으로 내려가면 음식점과 상업시설이 있을 법한 자리에 1652㎡(약 500평)의 '이터널 저니(Eternal Journey)'라는 대형 서점이 있다. 2만여 권이 비치될 이 서점은 도서 구입은 물론 독서도 가능하도록 꾸며졌다.

      고정관념을 깬 '파격'을 시도한 결과, 힐튼 부산과 같은 곳에 결합체로 지어진 아난티 펜트하우스 해운대(90채)는 한 채당 가격이 26억~45억원에 이르는 고가(高價)인데도 준공 전 분양을 마쳤다. 힐튼 부산은 개장과 동시에 예약이 거의 꽉 찼다. 이곳을 지은 에머슨퍼시픽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2013년 대비 각각 186%, 253% 늘었다. 리조트 업계 전반의 불황과 거꾸로 가는 에머슨퍼시픽의 성공 비결을 WEEKLY BIZ가 분석했다.

      ①회원제 리조트 ‘아난티 펜트하우스 해운대’ 전경, ②야외 노천탕과 연결돼 부산 앞바다를 볼 수 있는 ‘힐튼 부산’ 10층의 실내 수영장, ③숲을 조망하며 운동할 수 있는 경기 가평 ‘아난티 펜트하우스 서울’의 피트니스센터./에머슨퍼시픽
      1."남과 달리 생각하는 '청개구리 정신'"

      이 회사의 차별화 포인트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서 기회를 잡고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국내 대다수 호텔·리조트가 급증하는 중국 관광객을 겨냥한 중저가 비즈니스 호텔에 뛰어드는 와중에, 에머슨퍼시픽은 정반대로 소수 VIP에 특화한 회원제 리조트 사업에 집중한 게 대표적이다.

      작년 3월 경기도 가평에 문을 연 '아난티 펜트하우스 서울'의 경우 일본 고급 료칸을 닮은 '무라타 하우스', 수영장을 품은 '풀 하우스', 7채뿐인 단독형 펜트하우스 '더 하우스' 등 해외 고급 리조트에서나 가능한 콘셉트를 적용했다. 1채에 20억원이 넘지만 개장 전 완판(完販)됐다.

      2006년 개장한 힐튼남해 골프앤드스파 리조트는 전남 여수 공항에서 차로 1시간 넘게 걸리는 데다 원래 갯벌이어서 대다수 기업이 무관심했다. 하지만 에머슨 측은 한국 최초의 해안 골프 코스라는 새 가치를 부여했다. 2003년 착공 후 19개월간 10t 트럭 20만대 분량의 흙을 부산의 아파트 공사장에서 실어와 갯벌을 메워 지은 이곳은 '월드 트레블 어워드'를 11년 연속(2007~2017년) 받는 명소가 됐다. "회사 성장의 원동력은 남달리 생각하고 결정하는 '청개구리 정신'이다. '희소성'이라는 가치에 주목해 새 시장을 개척한 것도 돋보인다."(김근배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

      2."눈 위에서 골프… 특별 경험으로 승부"

      에머슨퍼시픽 고객들은 "에머슨의 여러 시설에 가보면 다른 데서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힐튼 부산'의 로비는 일반 호텔과 달리 지상 10층에 있다. 장 세바스티앙 클링 힐튼 부산 총지배인은 "체크인을 하려고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며 "일상에서 벗어난 설렘을 호텔 첫인상으로 남기기 위해 설계를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힐튼 부산의 모든 객실을 동급 다른 호텔의 일반 객실보다 두 배 넓은 56㎡ 이상 스위트룸으로 설계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객실마다 넓은 테라스가 있어 바다와 주변 풍광을 즐길 수 있다.

      골프장 '아난티 클럽 서울'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겨울철 '스노(snow) 골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회원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버틀러팀'이란 전담 조직도 뒀다. 1명당 회원 20~25명을 관리하는 이 팀은 골프장·리조트 회원권 분양·관리, 예약 서비스와 회원 개인의 취향에 맞춘 요구 사항을 해결한다.

      3.이익보다 디테일과 품질… 정례 회의 全無

      '힐튼 부산' 개장 한 달여를 앞둔 올 6월 초 야외 수영장 '오션 인피니티 풀'을 살피던 이만규 대표는 비뚤게 붙은 수영장(가로 18.5m, 세로 40m, 수심 1m) 타일을 보고 대로(大怒)했다. 그는 인부가 손에 들고 있던 장도리를 빼앗아 들고 타일을 모두 깨부쉈다. 현장 직원과 인부들은 아연실색했다.

      "2014년 4월 착공해 올 6월과 7월에 각각 문을 연 아난티 펜트하우스 해운대와 힐튼 부산은 3년여 동안 이런 식으로 공사 현장에서 300번 넘게 시공 디테일을 바꿨습니다." 민성진(53) SKM 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가의 증언이다. 그는 "3층에 있는 152㎡짜리 객실 목업룸에 이 대표가 시공 디테일 수정 사항을 표시한 스티커만 150장이 붙었다"고 했다.

      아난티 펜트하우스 해운대는 건물 외관과 인테리어, 조명, 설비, 리조트 전체 콘셉트를 관리하는 설계자를 각각 따로 두었다. 건축 설계는 서울 서초동 주상복합 '아크로비스타'와 아난티 펜트하우스 서울 등을 디자인한 민성진 대표가 총괄했다. 조명은 미국 마이애미 '더 세타이 호텔' 등을 맡은 네이슨 톰슨(호주), 설비는 친환경 설비 전문기업인 임텍(독일) 등…. 모두 세계적 권위자들이다.

      숲속에 UFO(미확인 비행물체)가 내려앉은 듯한 디자인 등을 갖춘 골프장 '아난티 클럽 서울'은 기존의 리츠칼튼CC를 인수한 뒤 리모델링했다. 말이 리모델링이지, 기존 시설을 거의 다 부수고 새로 지었다. 이만규 대표는 공사 때문에 불편을 겪게 된 회원들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6개월간 설득했다. 재개장한 아난티 클럽 서울이 2011년 CNN이 선정한 '서울의 15대 문화 명소', 영국 유명 잡지 모노클(Monocle)이 뽑은 '한국의 4대 골프장', 2012년 뉴욕타임스가 뽑은 '한국의 3대 골프장'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은 디테일에 대한 '고집' 덕분이다.

      아난티 펜트하우스 서울은 설계에만 5년 넘게 걸렸다. 일반 리조트 설계에 보통 6개월 정도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5배 정도 긴 시간이다. 만족스러운 디테일이 나올 때까지 수시로 설계를 바꿨기 때문이다. 재공사도 수십번 했다. 홍성태 한양대 명예교수(경영학)는 "디테일에 대한 완벽한 감동을 목표로 하는 에머슨의 전략은 현재까지 성공적이다"고 말했다.

      '현장 제일주의'를 실행하는 이 회사에는 정례 회의와 직급별 단계에 따라 보고하는 절차, 문서 보고 등 세 가지가 없다. 대표이사와 실무자가 한자리에 모여 '원스톱' 결정을 하는 게 전부다.

      4.1만7300명 충성 고객… 中도 성장성 인정

      에머슨퍼시픽 멤버십 가입자(회원)는 현재 총 1만7311명이다. 이들은 회사 고객인 동시에 사업 확장을 견인하는 핵심 자산이다. 지난해 문을 연 '아난티 클럽 청담'이 그런 경우다. 골프장과 리조트의 여성 회원만 이용할 수 있는 이곳은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2층 단독주택을 개조해 만들었다. 전문 바리스타가 만드는 커피와 차, 식사를 즐길 수 있는 프리미엄급 공간이다.

      회사 측은 올해 하반기엔 아난티 회원제 서비스를 연계한 고급 주택을 서울 강남에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서형석 리딩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아난티 플랫폼 구축으로 얻은 운영 노하우와 검증된 회원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접근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확장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에머슨퍼시픽은 작년 말 '중국판(版) JP모건'으로 불리는 중국 최대 민영 투자사인 중국민생투자유한공사의 자회사 중민국제자본주식회사(이하 중민국제)로부터 1806억원을 투자받았다. 경영권 인수와 무관한 순수 투자로 성장성과 브랜드 파워를 인정받았다는 증거로 평가된다. 랴오펑(廖鋒) 중민국제 총재는 "에머슨퍼시픽이 단순 부동산 개발 업체가 아니라 포괄적으로 고급 휴양·레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게 참신하고 인상적이어서 11개월여 만에 투자를 결정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