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된 바스키아 그림이 1250억원? 경제학자도 울고 갈 '미술 경제학'

    • 이규현 이앤아트 대표,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100〉 저자

입력 2017.07.01 08:00

[이규현의 Art Market] <2> 천정부지 그림값의 비결

미술사적 상품성에 딜러의 마케팅 중요… 수요 파악은 세일즈의 기본

[Weekly Talk] 유시 필카넨 | 크리스티 CEO

[Weekly Talk] 유시 필카넨 | 크리스티 CEO

"미술품 시장은 공급자 중심 시장이다. 작품을 사고 싶은 사람들은 힘든 경쟁을 거쳐야 한다." 1월 6일

지난달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미국 현대 미술 작가 장-미셸 바스키아(Basquiat, 1960~1988)가 1982년에 그린 유화 '무제(Untitled)'가 1억1050만달러(약 1250억원)에 낙찰됐다. 1980년대 이후 그려진 미술 작품으로 최고가(最高價) 기록이다. 피카소, 모네, 반 고흐, 앤디 워홀 등의 작품도 1000억원을 넘기는 쉽지 않은데 제작한 지 35년밖에 안 된 그림이 세운 기록이다. 바스키아는 이 그림을 21세에 그려 1만9000달러에 팔았다.

지금 미국의 경제 회복세는 미술 시장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고, 유럽과 중국의 거부들도 여전히 미술 시장의 큰손이다. 아무리 경기를 탄다지만 제작한 지 몇 십년밖에 안 된 작품이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에 팔려나가는 건 신기하다. 미술 작품 값을 끌어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5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억1050만달러에 낙찰된 장 미셸 바스키아의 ‘무제’ 경매 현장. 이 작품을 산 일본인 사업가는 바스키아 작품을 집중 매입하면서 바스키아의 ‘가격 결정자’로 떠올랐다. / 소더비
지난 5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억1050만달러에 낙찰된 장 미셸 바스키아의 ‘무제’ 경매 현장. 이 작품을 산 일본인 사업가는 바스키아 작품을 집중 매입하면서 바스키아의 ‘가격 결정자’로 떠올랐다. / 소더비
1. 미술사적으로 중요해야: 피카소

유명하고 비싼 작가라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이 역사적 중요성이다. 르네상스 이후 400년 동안 당연하게 생각해온 그림의 문법을 깬 선구자 피카소,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의 경계를 부순 앤디 워홀은 이후의 미술 경향을 완전히 바꿨다는 역사적 중요성 때문에 비싸다. 바스키아는 1980년대 뉴욕 맨해튼의 저소득층 거주지인 이스트빌리지에서 기존 미술에 반기를 들고 길거리에 벽화를 그리며 반항아적 기질을 표출했던 '이스트 빌리지 예술'의 대표적인 작가다. 이 흐름은 1981~1987년 짧고 굵게 뉴욕 예술계를 뒤흔들었고, 이후 전 세계 현대 미술에 끼친 영향이 매우 크다. 바스키아는 28세에 죽었지만 그는 현대 미술사의 중심에 자리매김했다.

2. 마케팅 뒷받침돼야: 박서보

역사적인 중요성이 있어도 마케팅이 받쳐주지 않고서는 비싼 작가가 되기 어렵다. 그 작가의 가치를 설명할 수 있는 딜러, 작가를 적극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소속 국가의 힘, 유명한 컬렉션에 들어가 있다는 프리미엄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미술사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작가의 의미를 부여하는 평론가 역할도 마케팅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박서보·이우환·정상화·윤형근 등 우리나라 작가들은 예술성에 비해 마케팅의 도움을 못 받았다. 이런 점을 인식한 국내 미술계에서 우리나라의 단색화 화가들을 무리 짓고 재조명하는 전시를 해외로 내보내 이들의 작품 세계를 세계 미술사에 새로 자리매김하도록 한 것은 마케팅의 좋은 예다.

2016년 경매 낙찰가 상위 미술작품 / 그래픽
3. 소장 기록 분명해야: 클림트

컬렉터가 소장한 그림을 팔려고 경매 회사나 갤러리에 연락하면 딜러들은 제일 먼저 '소장 기록(provenance)'을 물을 것이다. 어디에서 어떤 경로를 통해 내 손까지 오게 됐는가 하는 기록이다. 소장 기록이 분명해야 작품 진위(眞僞) 시비도 없고 가격도 올라간다.

'특별한 소장 기록'이 있다면 당연히 프리미엄이 붙는다. 2006년에 공개된 미술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1억달러가 넘는 가격(1억3500만달러)에 팔려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델르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I'은 특별한 소장 기록의 좋은 예다. 유대인 소장자가 가지고 있던 것을 나치가 빼앗았다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오스트리아 정부에 돌려줘 빈 국립미술관에 반세기 동안 걸려 있던 그림을 원래 소장자의 조카딸이 소송을 통해 받아낸 것이다.

4. 선호 층이 뚜렷해야: 바스키아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야 하는 것이 세일즈의 기본이다. 어떤 물건을 팔든 내놓기 전에 우선 수요가 있는지부터 파악하는 것은 미술 시장 딜러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바스키아의 '무제'처럼 고가의 그림을 시장에 내놓을 때 딜러들은 우선 '살 사람이 있는지'부터 파악한다. 인기 작가의 수작이면서 선호하는 사람이 확실하게 있을 경우 미술품 가격은 매우 비탄력적이 되어 값이 천정부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 바스키아의 '무제'를 산 사람은 일본에서 패션 쇼핑몰을 운영하는 마에자와 유사쿠라는 사업가이다. 1975년생인 그는 최근 현대 미술, 특히 미국 현대 미술 작품을 사들이는 것으로 이름났다. 특히 작년 5월에 바스키아의 또 다른 '무제'를 5730만달러에 샀는데, 당시로서는 그게 바스키아의 최고가 기록이었다. 이제 바스키아의 대표작이 시장에 나오면 딜러들은 유사쿠를 떠올리고 그에게 집중 세일즈 활동을 할 것이다. 미술 시장에서 초고가 기록 달성은 우연히 되는 게 아니라 딜러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예측되고 계획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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