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준식 '한국화 경영' 통했다…독일 BMW 본사도 매료

입력 2017.06.24 08:00

수입차 업계 최장수 경영자, BMW코리아 김효준 사장

고객·파트너·직원과 진정으로 소통하면 모두가 잘되게 돼 있어
17년전 年 1650대 팔던 車 작년 4만8000대 팔아치워
벌어들인 돈은 재투자… 지속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 만들어

김효준(60) BMW코리아 사장은 한국 수입 자동차 업계에서 최장수(最長壽) CEO이다. 그것도 원칙과 까탈스러움으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독일 명차(名車) 기업에서다. 그가 BMW그룹 내 외국인으로서는 최초이자 최연소 해외 법인장에 발탁된 2000년 당시 BMW의 국내 판매 대수는 1650대, 고용 인원은 30여 명(딜러 포함)이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4만8000대, 5000명으로 각각 늘었다.

역설적이지만 그의 차별화 포인트는 '나와 내 회사만 잘되면 된다'는 '이기주의(利己主義)'를 버렸다는 데 있다. "끊임없는 소통으로 한국 사회와 고객, 독일 본사 3자가 '윈윈(win-win)'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최우선순위를 뒀다"는 게 김 사장의 얘기다. 국내에서 벌어들인 걸 다시 재투자해 고용 창출과 대규모 투자·기부 등으로 한국 사회에 공헌하는 '김효준식(式) 현지화 경영'이 성공 열쇠인 셈이다. BMW의 한국에 대한 투자(4000억원)와 부품 조달 규모(10조6000억원)는 누적 계약 기준 11조원을 넘었는데, 이는 주한 외국 기업 전체를 통틀어 최상위 수준이다.

2013년부터 아시아인 최초로 독일 본사 수석부사장을 맡고 있는 김 사장을 WEEKLY BIZ가 이달 14일 서울 중구 스테이트타워 남산 집무실에서 만났다.

"나를 넘어 상대방 입장을 이해"

―성공 비결은 무엇인가.

"그런 평가를 받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지속적인 가치 창출이 기업의 선(善)이라는 믿음을 갖고 늘 고객, 파트너, 직원 등 사람을 중심에 두고 소통해 온 작은 성과일 뿐이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BMW의 혁신적인 기업 문화와도 궁합이 맞았다. 굳이 비결을 꼽는다면 소통은 기술이 아닌 진정성이며, 상대에 대한 신뢰에 기반한다는 믿음을 실천한 게 아닐까 싶다."

―본인의 경영 철학은.

"'B(Brand·브랜드), M(Man·사람), W(Work· 일) 등 세 가지에 입각한 'BMW 가치경영'이다. 브랜드 가치는 고객에게 최고의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객 만족 경영 실천을 뜻한다. 사람 가치는 직원들과 소통을 통해 책임감을 갖고 미래 비전을 달성하는 것이며, 일의 가치는 사회와 시장에 책임 있는 기업으로서 기여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BMW 가치경영의 핵심은 서로 상대방 입장에서 이해하고 한발 더 다가서는 '수평적 소통'"이라고 강조했다.

―원활한 소통을 위한 원칙이 있다면.

"사람은 누구나 일종의 '안전지대(safety zone)'라는 둘레를 쳐놓고 있다. 진정한 소통이란 사람들이 이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교감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 직원을 리더로 키운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영업직은 관리직으로, 관리직은 마케팅이나 전략 부서로 부서 간 인사(人事)를 자주 내는 것은 이런 목적에서다. 이렇게 하면 서로 업무를 잘 이해하고 소통도 잘된다."

같은 맥락에서 BMW코리아는 2008년부터 부장, 차장, 과장, 대리 같은 직급을 모두 없애고 임원을 제외한 모든 사원의 직급을 '매니저'로 일원화했다. 현재 BMW코리아 본사 직원 190명 가운데 89%(170명)가 매니저다. 김 사장은 "직원 각자가 리더라는 주인 정신을 갖게 됐고 사장만 권한을 독점하던 수직적 의사 결정 구조가 사라졌다"고 했다.


BMW코리아는 2011년 수입차 회사로는 처음으로 사회 공헌 공익재단 ‘BMW코리아 미래재단’을 설립했다. 김효준 사장은 “미래재단 설립은 한국 시장에 대한 BMW의 지속적인 투자 의지의 일환이며 미래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아래는 2014년에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 문을 연 인천 영종도 BMW 드라이빙센터.
BMW코리아는 2011년 수입차 회사로는 처음으로 사회 공헌 공익재단 ‘BMW코리아 미래재단’을 설립했다. 김효준 사장은 “미래재단 설립은 한국 시장에 대한 BMW의 지속적인 투자 의지의 일환이며 미래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아래는 2014년에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 문을 연 인천 영종도 BMW 드라이빙센터. / 조인원 기자·BMW코리아
독일 본사 2년 반 설득해 한국 유치

―아시아 최초로 BMW 드라이빙센터를 2014년 국내에 유치한 이유가 궁금하다.

"BMW가 추구하는 '드라이빙 경험'을 한국 고객이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한국 시장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봤다. 또 한국 내 드라이빙센터가 아시아 전역에 BMW 브랜드를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할 걸로 확신했다. 그러나 본사에서는 한국 시장은 협소한 만큼 자동차 복합문화공간 드라이빙센터가 불필요하다고 고집해 설득에 2년 반 정도 걸렸다. 인천 영종도에 들어선 드라이빙센터(면적 24만㎡)는 중국인 관광객들도 즐겨 찾는 관광 명소가 됐다."

―한국과 독일 간 이해가 충돌하거나 입장 차이가 생겼을 때 어떻게 대응하나.

"평소 수많은 소통으로 신뢰를 쌓아놓는 게 중요하다. 본사를 설득할 때는 당장 포기해야 할 어려운 결정을 먼저 제시하는 편이다. 2000년대 후반 5시리즈 가격을 1900만원 인하해 중형 수입차 시장을 크게 활성화한 게 대표적이다. 본사와는 몇 분간의 짧은 통화라도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이끌어내 결론을 도출하려고 노력한다."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1998년 IMF 외환 위기 당시 수입차 회사들이 잇따라 철수할 때였다. BMW도 한국 시장 철수를 고려하고 있었다. 나는 본사를 집요하게 설득해 오히려 2000만달러의 자금을 5% 금리로 지원받는 데 성공했다. 당시 국내 금리가 20%에 육박할 때였다. 딜러사에 5% 금리로 돈을 빌려줬더니 기존 고객에 대한 지속적인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이때 맺은 딜러사와 고객 간 '신뢰'가 BMW코리아의 급성장 원동력이 됐다."

―한국 기업의 해외 현지화에 대해 조언한다면.

"과거에는 본사가 수직적 지시를 하고 경험을 확산하는 방식 위주였다. 이제 경험은 본사가 아니라 각 해외 현지에서 만들어진다. 본사 시스템을 강요하거나 전파하기보다는 현지 상황과 의견을 충분히 수용하고 반영할 필요가 있다. 또 각 나라 사정과 특수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을 현지 사장으로 발탁하는 게 중요하다."

큰 보석보다 한 치의 짧은 시간을 더 소중히

김 사장은 BMW그룹 본사 임원 사이에서 '아이디어 뱅크'로 불린다. BMW코리아에서 처음 창안한 제도와 업무 방식을 BMW그룹에 역수출해 독일과 해외 각국에서 적용하는 사례가 여럿이기 때문이다. 딜러 관리 시스템과 차량 보증수리 방식, 견적서 실명제(2016년) 등…. BMW코리아가 차세대 리더 양성을 위해 2011년 세운 '미래재단'의 경우 하랄드 크루거 BMW그룹 회장이 2년 전 취임하자마자 같은 방식의 재단을 모든 해외 지사에 설립하라고 지시했다.

―독서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개인적인 독서법은.

"감명 깊거나 영감(靈感)을 준 책을 여러 번 반복해 읽는 걸 즐긴다. 피터 드러커의 마지막 저서인 '마지막 통찰'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가짐과 혁신의 중요성, 삶을 어우르는 경영자의 역할에 깊이 공감했다. 직원들에게 간결한 메시지를 줄 때 도움이 되는 시(詩)도 많이 읽으려 한다. 주로 이동하는 승용차 안이나 비행기, 취침 전 꾸준히 책을 펴 한 달에 평균 3권 정도 읽는 것 같다."

―좌우명이 있는가.

"'척벽비보 촌음시경(尺璧非寶 寸陰是競·큰 보석보다 한 치의 짧은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을 좌우명으로 마음속에 늘 새기고 경영자로서 자세를 바로잡는다. 은퇴 후에는 글로벌 리더를 꿈꾸는 한국 젊은이들을 더 많이 발굴·육성해서 그들이 더 큰 그림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돕는 게 꿈이다."

김 사장은 덕수상고 졸업 후 BMW 임원 근무 중 한국방송통신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석사(경영대학원), 한양대 박사(경영학)를 따는 등 평생 학습을 실천해왔다.

"BMW코리아에선 CEO 승계 프로그램이 이미 가동돼 몇 명의 후보군이 검증을 받고 있습니다. 후보 중 한 명이 조만간 COO(최고운영책임자) 과정을 거치면서 저보다 더 훌륭한 역할을 할 CEO가 배출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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