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독일인 형제가 세운 신발공장이 아디다스의 시작… 1990년대 佛 기업인이 인수

입력 2017.06.10 15:15

93년간의 쇠락과 재기
1936년 베를린올림픽 육상스타의 육상화 年 20만 켤레 팔며 흥해

아디다스는 1924년 독일인 형제 루돌프와 아돌프(동생) 다슬러가 세운 '다슬러 형제 신발공장'에서 시작했다. 외향적인 루돌프는 영업을, 개발자 아돌프는 신발 제작을 맡았다. 다슬러 형제의 사업은 올림픽을 거치면서 번창했다. 특히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미국 육상 스타 제시 오언스가 다슬러 형제의 육상화를 신고 4관왕을 차지한 이후 주문이 쇄도했다. 매년 20만 켤레를 판매하면서 성공 가도를 달리던 다슬러 형제는 2차 대전 이후 사업 이념 차이로 갈등을 빚었다. 결국 루돌프는 1948년 신발 제조사 푸마(PUMA)를 설립해 독립했고 이듬해 아돌프는 자신의 애칭인 아디(Adi)와 성 다슬러(Dassler)의 첫 세 글자를 붙인 아디다스(adidas)로 사명을 바꿨다. 아디다스는 이후 독일 축구팀의 공식 납품 업체로 선정되는 등 세계 1위 스포츠용품 업체가 됐다.

올림픽 덕에 성장… 제품 개발 소홀해 쇠락

아디다스는 1978년 아돌프가 사망하면서 쇠락하기 시작했다. 사업을 물려받은 아들 호르스트는 아버지와 달리 제품 개발을 소홀히 하고 스포츠 스폰서십에만 몰두했다. 당시 후발 주자였던 나이키는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을 광고 모델로 앞세워 농구화 '에어조던'을 성공시키면서 1989년 스포츠용품 업계 1위로 올라섰다. 나이키는 지금까지 1위를 지키고 있다.

호르스트가 1987년 세상을 떠난 후 여동생들 간 분쟁이 일어나면서 아디다스는 혼란에 빠졌다. 최고경영자(CEO) 없이 4년간 표류하던 아디다스는 1992년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다. 파산 직전의 아디다스 경영권을 인수한 프랑스 기업인 로베르 루이드레퓌스는 과감한 비용 절감으로 재임 기간(1994~2001년) 아디다스 매출을 4배 이상 키웠다. 아디다스는 1995년 독일 증시에 상장됐으며 현재 지분의 90% 가까이를 기관투자자들이 나눠 보유하고 있다.

이후 아디다스는 단종된 인기 운동화를 재출시하는 '오리지널스' 제품군,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Impossible is nothing)' 슬로건을 내세운 광고 등을 선보여 브랜드 가치를 올릴 수 있었다. 마크 킹 아디다스 북미 지역 사장은 최근 아디다스가 재기(再起)에 성공한 비결로 "성능은 물론 스타일에도 중점을 둔 브랜드 전략 덕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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