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녀린 공주가 보이는가 강인한 혁명가가 보이는가

    • 박종호 풍월당 대표·문화평론가

입력 2017.06.17 08:00

[CEO Opera] (2) 모차르트 '마술 피리·Die Zauberfl?te'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의 '마술 피리'는 무더운 여름마다 우리나라 극장이 앞다퉈 무대에 올리는 작품이다. 왕자와 공주, 요술을 부리는 악기와 새잡이가 등장하는 화려한 오페라이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관람하는 부모들로 객석이 꽉 차 극장은 '방학 특수'를 노릴 수 있다. 다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오페라는 원래 어른을 위한 장르라는 점. 둘째, '마술피리' 역시 어린이를 위한 오페라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오페라는 세상에 대한 고발, 비판, 혁명 정신이 모두 담긴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작품이다.

로베르트 카슨이 연출한 ‘마술 피리’ 중 한 장면
국내에서 어린이와 함께 보기 좋은 오페라로 인기 있는 모차르트의 ‘마술 피리’는 사실 공화제를 꿈꾸던 모차르트의 혁명 정신을 담은 작품이다. 로베르트 카슨이 연출한 ‘마술 피리’ 중 한 장면./베를린필하모닉
비판과 혁명 정신 가득한 '마술 피리'

줄거리부터 살펴보자. 왕자 타미노는 사냥을 갔다가 뱀에게 쫓긴다. 그러자 밤의 여왕을 모시는 세 시녀가 나타나 왕자를 살려주고, 그에게 여왕의 딸 파미나가 납치되었으니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하여 타미노는 새잡이 파파게노와 함께 길을 떠난다. 시녀들은 두 청년에게 마법의 힘을 가진 악기를 하나씩 준다. 타미노는 마술 피리를, 파파게노는 마술 종을 받는다. 길을 떠난 두 사람은 자라스트로의 궁전에 도달해 파미나를 만난다. 이제 그녀를 데리고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그런데 이야기는 그리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 반전이다. 파미나는 어머니인 밤의 여왕에게 돌아가기를 거부한다. 악당인 줄 알았던 자라스트로는 파미나를 보호하던 중이었고, 통제된 양육으로 딸을 가뒀던 밤의 여왕이 진짜 악당이었다. 타미노와 파파게노도 흔한 동화처럼 그들을 무찌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에게 감화되고, 그 무리에 합류하고자 세 가지 시련을 통과하는 입회 의식을 치른다. 마침내 주인공은 시련을 모두 이겨내고 사랑을 이룬다. 타미노는 파미나와 결혼하고 파파게노도 파파게나를 찾는다.

얼핏 보면 행복한 결말처럼 생각되지만, 처음 시작과는 완전히 다르다. 타미노와 파미나는 결합하지만 여왕의 나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들은 자라스트로의 나라에서 진정한 국가의 진리인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보았고, 그에 동조하여 새로운 국가 건설에 합류하는 것이다.

'마술 피리'는 모차르트가 이전에 작곡했던 오페라와 형식도 다르고 음악도 다르다. 하지만 가장 다른 것은 사상이다. '마술 피리'를 구상하고 작사까지 한 에마누엘 쉬카네더(1751~1812)와 곡을 만든 모차르트는 황제가 통치하던 오스트리아 제국의 빈에서 살았고, 두 사람 모두 프리메이슨단(團·18세기 초 영국에 창설돼 세계로 퍼진 박애주의 단체) 회원이었다. 프리메이슨을 중심으로 한 빈의 많은 지식인은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통치 체제에 반발하고 있었다. 1780년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사망한 뒤로 새로운 나라를 향한 이들의 열망은 커져 갔다. 지식인들이 꿈꾸는 이상적 국가는 혈통 계승자가 아닌 진리를 깨달은 현자(賢者)가 다스리는 나라였다.

황제에게 맞서는 프리메이슨 이념 설파

마술 피리 속 밤의 여왕은 마리아 테레지아를, 자라스트로는 당시 빈 프리메이슨단의 지도자 이그나츠 폰 보른을 연상시킨다. 소녀 파미나는 엄마의 교육이 옳은 줄로 알고 자랐지만, 그 교육은 밤의 나라를 유지하기 위한 여왕의 주입식 교육에 불과했다. 반대로 모든 백성이 정의롭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자라스트로의 나라가 '낮의 나라'인 것이다.

'마술 피리'는 궁정 극장이 아닌 빈 변두리의 허름한 극장에서 1791년 처음 상연됐다. 형식도 전통적 오페라 형식이 아니라 연극처럼 대사가 많은 '징슈필(Singspiel)'이라는 독일 민중극 형식을 썼다. 제국의 기득권층이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보러 오게 하기 위한 모차르트와 쉬카네더의 계몽적 생각 때문이었다. 자라스트로는 누구보다도 서민을 위하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며 공감과 평등의 사상을 가진 미래의 지도자였다. 그것은 바로 공화제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오스트리아는 수백 년 전제정치를 청산하고 이제 공화국이 됐다. '마술 피리'는 동화의 탈을 쓴 무섭고 강력한 정치적 구호였다.
'마술 피리' 명반 영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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