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기업 때리기' 히틀러 시대 연상"

입력 2017.01.14 03:00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5명 참석
全美경제학회 토론회 현장 중계

"트럼프의 4년이 경제를 얼마나 망칠까요."

지난 6일(현지 시각)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전미(全美)경제학회. 노벨상을 받은 5명의 경제학자가 발표를 끝내자마자 한 참석자가 마이크를 넘겨 받기도 전에 질문을 쏟아냈다. 한 시간이 넘는 긴 강연 끝에도 궁금증을 풀지 못했던 것이다.

全美경제학회 토론회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5명의 석학들이 6일(현지 시각)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에드먼드 펠프스 컬럼비아대 교수,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도미니크 살바토레(사회자) 포드햄대 교수, 로저 마이어슨 시카고대 교수,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 / 시카고=남민우 기자
"트럼프를 히틀러에 비유했는데도 설명이 부족하신가요."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마이크를 잡은 에드먼드 펠프스 컬럼비아대 교수의 답변에 방청석에서는 폭소와 탄식이 동시에 쏟아졌다. 토론에 참석한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 로저 마이어슨 시카고대 교수 모두 그의 답변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올해 전미경제학회에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이례적으로 한자리에 모은 특별 토론 세션이 큰 관심을 모았다. 트럼프 당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불확실성이 커지는 세계경제의 과제와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600여명의 자리가 마련된 대강당엔 경제학자와 대학원생뿐 아니라 간호사, 엔지니어, 변호사 등 각계각층의 참석자가 몰려 출입구까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5명의 노벨상 석학이 이날 공통적으로 강조한 주제는 양극화, 트럼프 그리고 기술 혁명이었다. 5명의 학자 모두 트럼프의 경제정책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올해 전미경제학회 회장을 맡은 앨빈 로스 스탠퍼드대 교수는 위클리비즈 인터뷰에서 "학계에서 트럼프 지지자를 찾으려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적당한 학자를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트럼프가 강조하는 것은 미국 국내외 기업들을 어떻게든 미국으로 끌어들여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경제를 부활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가 기업의 해외 이전 계획을 막는 과정에서 기업의 의사결정 자율성을 침해해 혁신을 가로막을 것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지금 미국에서는 혁신보다 고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전미경제학회의 강연과 토론의 핵심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全美경제학회 토론회
논점 1

트럼프 집권의 경제적 파장은

펠프스: "트럼프의 '기업 때리기(bullying)'는 1930년대 독일·이탈리아 경제를 연상시킨다. 아돌프 히틀러가 기업을 통제한 결과 1930년대 후반 독일의 노동생산성이 지지부진했다는 것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최근 포드 등 주요 기업 경영에 간섭하는 트럼프의 행보는 혁신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마이어슨: "트럼프 당선자도 레이건이나 오바마 정부와 마찬가지로 적자 재정을 감수하고 경기 부양에 나설 뜻을 밝혔다. 그러나 적자 재정을 꾸리려면 다른 나라와 끈끈한 신뢰 관계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들이 미국 국채를 사줘야 막대한 적자 재정을 감당할 수 있다. 트럼프가 이런 신뢰 관계를 깨버리면 경기 부양책은 무의미하다."

스티글리츠: "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 동안 미국은 세계경제의 모범이었다. 세계경제 질서를 세우고 국제 협약 체결을 이끌었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자는 이런 흐름을 깨려 하고 있다. 최근 국제 경제 협약의 근간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보호주의 정책은 세계경제에 큰 부담이다."

실러: "트럼프는 4년 후면 사라질 사람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낙관적인 관점을 갖고 있어 그의 정책이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디턴: "경제학자들은 종종 정치와 정부의 역할을 과장한다. 물론 정책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세계경제의 가장 큰 위협은 지정학 리스크다. 특히 중국 경제의 위기는 세계경제 위기로 번질 것이고, 결과는 엄청난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다."

논점 2

양극화 현상, 어떻게 해결하나


디턴: "최근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양극화 현상의 근본적 원인은 기득권의 '지대 추구(rent-seeking)'라고 생각한다. 제약업계가 환자들의 건강보다는 특허권을 방패 삼아 독점 이윤을 창출하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일반적으로 정부나 전문가들은 지대 추구 행위를 금지하려고만 한다. 그러나 정말로 양극화 현상을 줄이려면 지대 추구 행위를 금지하기보다는 높은 세금을 매기는 것이 해법이다. 반대로 혁신가에겐 낮은 세금을 매겨야 한다. 생산적인 경제활동과 비생산적인 경제활동에 각각 다른 세율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러: "1980년부터 2014년 사이 미국의 소득 하위 50%의 세전 소득은 1% 오르는 데 그쳤다. 반면 같은 기간 상위 1%의 세전 소득은 205% 올랐다. 불행히도 세제 시스템은 이런 격차를 줄이는 데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나는 재무적 관점에서 해법을 제시한다. 임금 격차를 줄이려면 지니계수 등을 활용해 '임금 보험(wage insurance)'을 만들어야 한다. 노동 시장의 변화에 따라 일반인도 세대별로, 계층별로 임금 감소 위험을 헤징(회피)할 수 있어야 한다."

스티글리츠
: "양극화를 줄이려면 특허권에 대한 독점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 또한 지금보다 더 효과적인 공정거래법이 필요하다. 공공 부문의 교육 투자도 확대돼야 한다. 저소득층의 유아 교육을 확실히 보장하고 공립학교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펠프스: "미국 러스트벨트(미 중서부의 쇠락한 제조업 지대)의 저소득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어가면서 미국 국민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미국은 수십년간 마법의 성장 카펫을 걸었지만, 저성장 시대에 다다랐고 투자와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규제 완화뿐 아니라 모든 경쟁의 문을 열어야 하지만 트럼프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논점 3

반(反)세계화 물결


스티글리츠: "트럼프의 당선과 브렉시트 등 각종 선거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온 것은 세계화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정부의 약속과 달리 노동자의 소득은 답보 상태였고, 각종 공공 서비스는 축소됐다. 물론 세계화 자체가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었지만, 시장이 불완전한 탓에 자본·무역 자유화는 불균형을 낳았다."

디턴: "세계화는 전 세계 빈곤율을 줄이는 원동력이었다. 특히 중국·인도의 빈곤율을 낮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부 학자들은 세계화 물결을 상위 1%의 부를 축적시키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음모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주장대로라면 그 음모는 완벽하게 실패했다."

마이어슨: "글로벌 노동력의 공급이 엄청나게 증가하면서 비숙련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미국 제품을 수입하던 국가들이 스스로 생산해낼 수 있게 되면서 미국 근로자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전(全) 지구적 관점에서 기하급수적인 경제성장은 불가능한 모델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논점 4

기술 혁신은 경제에 어떤 영향 미칠까


스티글리츠: "기술 혁신은 소득 격차를 앞으로도 더 벌릴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국가와 추격자의 격차도 더 벌어질 것이다. 경제가 발전하고 생산량은 늘어도 제조업 일자리는 계속 줄어든다. 이는 동아시아의 수출 주도형 경제성장 모델이 수명을 다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러: "무인차, 온라인 강의 등 새로운 기술의 출현은 승자 독식 구조를 고착화하고 많은 일자리를 없앨 것이다. 기술 발전의 긍정적인 측면뿐 아니라 부정적인 결과를 줄일 방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디턴: "기술 혁신과 창조적 파괴는 막대한 부(富)를 창출하면서도 소득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나 이에 따른 양극화 현상을 반대할 수만은 없다. 이는 곧 산업혁명과 정보화혁명에 반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히려 대중이 서둘러 혁신가의 뒤를 쫓아 올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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