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년 기업… 외부 출신 CEO와 창업자 가문의 '시너지 경영'

입력 2016.11.19 03:05 | 수정 2016.11.20 09:28

[Cover Story] 의약·화학 기업 머크 창업자의 11세손… 프랑크 슈탕겐베르크-하버캄프
우린 수익을 분기별이 아니라 세대별로 따진다

프랑크 슈탕겐베르크-하버캄프E. 머크 KG(머크 모기업) 최고 경영위원회 회장
프랑크 슈탕겐베르크-하버캄프E. 머크 KG(머크 모기업) 최고 경영위원회 회장

CEO는 외부서… 최고경영委 회장은 家門서

1668년 독일 남서부 헤센주(州)에 있는 다름슈타트. 당시 인구 2100명에 불과한 이 작은 마을은 30년 종교 전쟁(독일에서 발생한 신교와 구교의 전쟁)이 끝나고 피폐한 상황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언제 어디서 군인들이 또다시 들이닥칠지 몰라 공포에 떨었다. 식량이 부족해 하루에도 10~20명씩 굶어 죽었다.

슈바인푸르트 출신의 약사였던 프리드리히 야코프 머크(Merck·1621~1678)는 인구 장려책에 따라 다름슈타트로 이주해 이곳에 있던 '천사 약국(Engel-Apotheke)'을 매입했다. 당시만 해도 금, 은 등의 진귀한 물질을 몸에 지니고 있거나, 뱀 껍질, 도마뱀 등 희귀한 것들을 달여 먹는 것이 치료 효과가 있다고 믿던 시기다.

그러나 프리드리히는 근거 없는 미신이 아닌 화학, 물리학, 광물학 등의 지식을 바탕으로 약을 조제해 처방했다. 독일 시골 마을의 이 작은 약국이 현재 전 세계 66개국 5만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의약·화학 기업 머크의 시작이었다.

348년째 머크 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이 기업의 지배 구조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가족 기업이면서 상장 기업이다. 주식회사면서도 합자(合資·기업을 경영하기 위해 두 사람 이상이 자본을 모음) 회사다. 외부 인사인 머크그룹의 최고경영자(CEO)와 별도로 모(母)기업인 'E. 머크'의 최고경영위원회 회장이 있다. 여기에 머크가(家)로 구성된 '패밀리위원회', 가문의 사람들과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파트너위원회'도 있다.

위클리비즈는 2011년 2월 머크 그룹의 카를 루트비히 클레이 CEO를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당시 클레이 CEO는 "지배 구조가 복잡해 보이지만 회사의 주요 결정 사항은 파트너위원회에서 승인하면 바로 집행할 수 있다"며 "회사 경영을 총괄하면서 상대해야 할 머크가 사람들은 5명뿐이고, 그 외 사람들은 경영에 관여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위클리비즈가 올해 3월 덴마크 레고그룹의 예르겐 비그 크누스토르프 CEO를 인터뷰했을 때, 가장 많이 나온 반응은 "그에게 CEO 자리를 맡긴 창업자의 손자 셸드 시르크 크리스티안센의 생각이 더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어떤 신념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에 선대(先代)가 물려준 기업을 선뜻 남의 손에 맡길 수 있을까.

이번에 위클리비즈가 머크 창업자의 11세손인 프랑크 슈탕겐베르크-하버캄프(Stangenberg-Haverkamp·68) E. 머크 KG 최고경영위원회 회장을 만난 건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는 독일의 폴크스바겐그룹으로 비유하면 페르디난트 피에히 전 감독이사회 의장, 삼성그룹에서는 이건희 회장 같은 인물이다. 그는 2014년 1월 머크에서 가장 높은 최고경영위원회 회장에 선임됐다.

가족이 입사하려면 외부서 능력 입증해야

지난달 인천 송도에 문을 연 머크 연구소를 둘러보기 위해 방한한 그를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한 호텔에서 만났다. 인터뷰 끝나고 곧바로 출국해야 한다는 그는 짐을 직접 들고 올 정도로 소탈했다. 울산 출신의 한국 며느리를 둔 덕에 한국이 친근하다고 했다. 성격 좋은 옆집 할아버지 같은 인상의 그는 예정된 인터뷰 시간을 훌쩍 넘겨가며 준비된 질문에 답해줬다. 머크 직원은 "평소에도 명품을 즐겨하지 않으며, 이코노미석을 타고 전 세계로 출장을 다닌다"고 귀뜸했다.

―300년 넘게 머크가 지속 가능한 비결은 무엇인가.

"겸손이다. 머크의 기업 가치는 기업 경영 시스템을 처음 도입한 하인리히 에마누엘 머크(창업자 6세손·1794~1855)가 세운 것이다. 그는 항상 기업을 가족보다 우선시하라고 말했다. 회삿돈은 (개인적으로) 꺼내 쓰지 말고 회사 경영에만 쓰고, 평범한 삶, 겸손한 삶을 살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치가 우리 가문이 지금까지도 경영을 할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비결은 우리 가문이 이미 1920년부터 외부에서 경영진을 데려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가족이 아닌 사람을 이사진으로 임명하고, 그들에게 경영하는 데 필요한 권한을 부여한다. 아무리 똑똑한 가문이라 해도 머크처럼 복잡한 기업을 경영하는 데 필요한 리더들을 충분히 배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겸손한 마음으로 가족이 아닌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그들에게 가족과 동등한 권한을 부여해야 하는 것이다."

―가족 중 직접 경영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도 있지 않을까.

"가족 구성원들에게도 경영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진다. 다만 최고위층에 한해서 기회가 주어지고, 외부에서 자신들의 실력을 입증한 후 회사에 들어와야 한다. 예를 들어, 젊은 가족 구성원 중에 바스프(BASF·세계 최대 화학회사)에서 약사로 일하는 여자 조카가 있는데 실력이 매우 좋다. 내 막내아들도 일본 다케다약품(아시아 1위 제약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머크에 들어오려면 우선 그 회사에서 자신의 힘으로 임원 이상 자리로 올라가야 한다. 이후 가족들로 구성된 패밀리위원회와 외부 인사도 포함된 파트너위원회의 평가를 거쳐야 한다. 어찌 보면 외부 인사보다도 조건이 까다롭다. 이들이 머크에 입사한 이후에도 엄격한 평가는 계속된다. 나와 같이 패밀리위원회에서 일했던 사촌은 입사 후 활동이 좋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그런 사람이 계속 경영진에 있으면 머크의 다른 직원들은 '내가 저 사람보다 실력은 좋은데, 저 사람은 머크 가문이어서 승진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머크 가문 사람이 경영진에 참여하는 경우 더욱 엄격하게 관리하고 평가한다."

머크에 기업 경영 시스템을 처음 도입한 하인리히 에마누엘 머크(창업자의 6세손).
머크에 기업 경영 시스템을 처음 도입한 하인리히 에마누엘 머크(창업자의 6세손). / 머크 제공

1882년부터 딸들에게도 균등 상속

―회장께선 성(姓)이 머크가 아니다.

"할아버지 성이 머크다. 수백년 동안 여러 번의 전쟁으로 많은 남자가 죽어 실제로 머크라는 성을 가진 사람은 4~5명밖에 없다. 나머지 240여명은 머크 가문 출신이지만 다른 성을 갖고 있다. 머크가 장자 상속의 원칙을 깨고 딸들에게도 균등 상속을 시작한 건 1882년이다(참고로 독일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된 것이 1919년임). 장자 상속이 공정하지 않고, 민주적이지 않다고 생각한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딸들도 균등 상속을 하는 것이 기업을 경영하는 데 필요했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아들을 많이 잃으면서 경영진 인재풀을 유지하기 위해 딸에게도 균등 상속을 했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으로 가문 자녀들이 많이 사망하며 외부 인력을 유입하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 머크의 복잡한 지배 구조는 머크에서 기업가는 사라지고 그 자리가 관리자로 대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가문 사람들이 고민한 결과다. 그런 유연함과 상황에 따른 지배 구조의 진화가 350여년을 이끈 머크의 원동력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Was der Mensch thun kann).’

2002년 출간된 머크 사사(社史)의 제목이다. 1842년 하인리히 에마누엘 머크가 한 말이기도 하다. 뛰어난 화학자로 모르핀의 원료인 순수한 알칼로이드 추출에 성공한 그는 머크사(社)를 하나의 기업인 동시에, 연구소로 만들기를 원했다. 이런 머크의 ‘과학자 정신’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머크는 매년 17억유로(약 2조1336억원)를 연구 개발비로 투자한다.

분기가 아닌 세대 단위로 생각하라

―연구·개발을 시작할 때 결과물이 나오는 기간을 몇 년으로 보는가.

“한 세대다. 우리는 머크를 ‘과학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수익을 낼 수 없더라도 과학적인 호기심을 끈다면 투자한다. 우리는 미국 기업들과 달리 수익을 분기별이 아닌 세대별로 따진다. 단기 이익보다는 장기적으로 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액정 산업이다. 1893년 독일의 한 교수가 액정을 발견한 후, 머크는 1903년부터 개발·생산하기 시작했다. 1903년부터 1960년대까지 우리는 액정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몰랐다. 단지 과학적인 차원에서 연구를 계속 진행했다. 그러다 갑자기 액정이 시계, 계산기, 텔레비전 등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개발 초기에는 ‘당장 상업화할 수도 없는데 왜 이렇게 많은 돈을 투자하느냐’는 비판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꾸준히 연구하다 보면 또 다른 무언가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기본적으로 머크가(家) 사람들은 미국 등의 기업 사람들과 다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과학 기업’이라는 자부심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이것이 머크의 기업가 정신이다.”

―현재 머크 가문은 창업자의 13세손까지 태어났다. 주식을 갖고 있는 사람도 250명이 넘는다. 그들 모두가 머크가의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래서 우리는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한다. 머크가에는 특별한 자녀 교육 시스템이 있다. 먼저 머크가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전 세계에 있는 지사에서 견습, 인턴 생활을 한다. 가문 사업에 익숙해지는 기간이다. 내 막내아들은 대학교 때 멕시코 지사에서 견습 생활을 했다. 1년에 두 번 정도 단체로 견학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15~23세, 24~35세 이렇게 두 그룹으로 나뉘어 자회사를 방문한다. 예를 들어, 주말에 30명 정도씩 모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공장을 방문하는 것이다. 공장 관리자는 머크가 아이들에게 제품이 어떻게 개발되고 생산되는지를 가르쳐준다. 그리고 가족 관리 구조, 회사의 재정 등에 대해서도 강의한다. 대학을 졸업한 자녀들에게는 ‘머크 가족 대학’이라고 부르는 교육에 들어간다. 2년에 걸쳐 리더십, 법, 경제 등을 배우는 것이다. 그런 후에 외부 기업에서 실력을 쌓고, 인정을 받고 나서, 다시 패밀리위원회에 참가할 기회를 갖게 된다. 패밀리위원회에 참석할 가족 구성원들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과정이다.”

머크가문역사

물려받은 주식은 내 것 아닌 신탁하는 것

―주식 상속 과정에서 일부 자녀가 현금화하는 등의 일탈 행동을 할 수도 있지 않나.

“난 머크가 딸인 어머니께서 3년 전 돌아가시면서 주신 주식을 받지 않고 곧바로 손자들에게 물려줬다. 세금 문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그 주식의 소유자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13대까지 내려오면서 한 명의 머크 가족이 갖고 있는 주식은 한 자릿수밖에 안 된다. 모두 모여 70%가 되는 것이다. 머크가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 주식의 주인이 아닌 신탁 관리자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문의 허락 없이 제3자에게 매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도 내 손자들에게 주식을 물려줄 때 ‘이건 너희 증조할머니께서 주신 주식이고, 너희도 나중에 너희 자식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자식이 없으면 조카 등 가족 내 다른 사람들에게 물려주라고 말한다. 물론 제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파산하는 가족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자주는 아니고 10~15년에 한 명씩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 구성원이 파산하는 등의 위기 상황에 대비해 예비 자금을 가문 이름으로 마련해둔다.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가문 이름으로 대출도 받아 준다.”

―주식 상속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

“본인이 가진 주식을 자녀들에게 똑같이 배분하는 것이다. 내 경우 아이들이 7명인데, 자식이 많은 딸이나, 한 명도 없는 장남이나 똑같은 지분의 주식을 받는다.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같은 세대라 하더라도 1인당 가진 주식 지분은 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이 가장 공정하고 간단하다고 본다.”

―현재 머크의 주식 중 30%만 상장했는데, 추가 상장 계획은 없나.

“이미 가문 사람들끼리 좀 더 큰 인수합병을 위해서라면 가족 보유 지분을 70%에서 50%까지 줄이고 20%를 추가 상장하는 부분에 대해 동의한 상황이다. 하지만 당장 그런 계획은 없다.”

무한책임 체제… 회사가 망하면 가문도 망한다

―머크는 ‘무한책임’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무한책임이란, 개인(소유주)이 기업의 채무에 대해 지분만큼이 아닌 모든 채무에 대해 무한히 책임을 지는 것이다. 머크 같은 경우에는 가문이 소유한 주식은 70%지만, 100%에 달하는 책임을 지는 것이다. 유한책임회사는 회사는 망해도 그 가문은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반면, 무한책임은 회사가 망하면 가문도 같이 망한다. 현재 머크뿐 아니라 헨켈도 무한책임 체제다. 독일 기업 중 끝자리가 ‘KGaA’로 끝나면, 대부분 무한책임회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2012년 독일 최대 드러그스토어(약국과 잡화점이 결합한 형태) 체인인 슈렉커가 파산했을 때, 오너인 안톤 슈렉커가 자동차 키와 롤렉스 시계까지 다 검찰에 빼앗긴 것도 무한책임회사였기 때문이다. 무한책임이란 개념은 영미권에는 없기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설명할 때 늘 애를 먹는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이야말로 독일 산업계를 지탱하는 힘이다. 회사가 망하면 우리 가문도 망한다는 생각을 갖고 경영하기 때문에 더욱 책임감 있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리먼브러더스 같은 기업을 생각해봐라. 난 리먼이 무한책임 체제였다면 절대 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100% 확신한다.”

―기업들이 무한책임 경영을 하도록 독일 정부에서 세제 혜택 등으로 지원하는 부분이 있나.

“없다. 스스로 기업을 창업하고 경영할 때 그 정도 각오로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물론 무한책임 경영 체제를 갖고 있다 보면, 은행에서 대출받을 때 좀 더 쉬운 건 있다. 가족들의 전 재산이 걸려 있는 회사라고 보기 때문에 은행에서 기업가를 좀 더 믿는 것이다. 기업 경영을 할 때도 도움이 된다. 현재 최고경영위원회에는 머크 가문에서 나와 내 친척 한 명이 참여하고 있는데, 우리에겐 전 재산이 걸린 회사이기 때문에, 가문 지분이 70%라도 그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무한책임 시스템 내에서는 가문 지분이 20%까지 내려가도 영향력이 줄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려운 점도 있다. 외부 경영진을 영입할 때다. 우리는 가문 사람처럼 회사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질 각오가 돼 있는 임원을 찾는다. 이 때문에 머크는 외부에서 영입된 경영진을 ‘입양 가족’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무한책임 연한은 은퇴 후 5년까지다.”

독일 남서부 헤센주 다름슈타트에 있는 머크 본사의 이노베이션 센터.
독일 남서부 헤센주 다름슈타트에 있는 머크 본사의 이노베이션 센터. 머크는 당장 수익이 나지 않아도 연구개발을 하는 ‘과학 기업’의 정신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 머크

상호 신뢰가 빠른 의사 결정 시스템 만들어

―최근 폴크스바겐 그룹처럼 가문 경영진과 외부 경영진 사이의 갈등은 없는가.

“내가 1984년부터 파트너위원회(가문 인사 5명과 외부 인사 4명으로 구성)에서 활동했는데, 갈등은 단 한 번밖에 없었다. 당시 위원회에서 추진하던 인수합병 건을 CEO가 반대한 적이 있었는데, 결국 우리는 그 CEO에게 회사를 떠나라고 말했다. 대규모 인수합병 건은 가문의 돈과 기업의 존속성이 달린 일이기 때문에 가문 사람들의 의견이 강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그 외에는 갈등이 전혀 없었다. 패밀리위원회에서 다루는 사안은 가족 파티 같은 것들이다. 언뜻 보면 복잡할 수 있지만, 우리는 수시로 의견을 나누기 때문에 의견 합의가 빠르다. 2014년 시그마알드리치 인수 건도 30분 만에 결정됐다. 나와 내 사촌, 현 CEO 이렇게 3명은 매주 만나 대화를 나눈다. 나머지 위원회 사람들과도 수시·정기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가 회사 내 모든 사정을 파악하고 있고, 250명의 머크가 사람들, 회사 내 모든 경영진 간의 신뢰가 두텁게 형성돼 있기 때문에 의사 결정이 빠르다.”

―어떻게 가문의 대표가 됐나.

“난 원래 머크에서 일하기 싫었다. 내 삼촌이 40년 넘게 머크를 경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커다란 참나무 그늘 아래서는 어린 나무들이 자랄 수 없다. 그래서 난 독일 코메르츠방크와 런던 베어링브러더스 등에서 25년 넘게 일하며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같이 최고경영위원회에 있는 사촌도 큰 건설회사를 다녔고, 퇴사 후 창업해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그렇게 외부에서 활동하던 우리를 가문 사람들이 불러들인 것이다. 외부에서 일을 잘했다면, 머크 일도 잘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너의 강점에 집중하라

―독일 산업계에서 나오는 자조적 농담 중 하나가 ‘독일은 좋은 재료로 좋은 물건을 만드는 것은 잘하지만, 프랑스나 이탈리아 사람처럼 싼 물건을 멋지게 만들어 비싸게 파는 건 못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럭셔리 기업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이다(웃음). 이탈리아 사람들은 같은 재료를 갖고도 좀 더 매력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놓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처럼 좋은 재료를 좋은 기술로 만들어도 돈을 벌 수 있다. (유럽의) 분업 시스템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우리가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지 않나. 독일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너의 강점에 집중하라’다. 우린 우리의 강점으로 거대한 수출 국가를 구축할 수 있었다. 한국도 독일처럼 기술 중심 아닌가.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좀 더 디자인 중심, 명품 산업 중심이지만, 이들은 지금 빚에 허덕이고 있지 않나. 어떤 분야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면, 다른 분야는 잘하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내가 잘하는 분야에 집중해 더 실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

“어떻게 기업을 혁신하느냐이다. 머크가 생산하는 제품들은 모두 첨단 기술이 적용돼 이윤이 높다. 1900년대 초반부터 액정을 개발한 것처럼, 또 한 세대가 먹고살려면 지금부터 무언가를 시작해야 한다. 한 가지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15년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현 세대 사람들은 매 순간 혁신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혁신적인 제품을 쉬지 않고 개발 생산해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제일 크다.”

머크 매출액

변화에 선 한국 기업… 좀 더 효율적인 방법 고민해야

―한국 산업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은 투자하기에 안전한 나라다. 튼튼한 법적·재정적 구조를 갖추었다는 점에서 경쟁 우위를 갖고 있다. 5년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나라에 투자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한국에는 실력 있는 사람도 많다. 독일과 비슷한 직업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한국인들은 독일인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직장에서 온종일 일을 하는 것이 체계화돼 있다. 한국인들은 무엇을 배우면 습득이 빠르고, 경쟁심이 강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자동차 산업이다. 10~15년 전만 해도 독일에서 기아차는 볼 수 없었지만, 지금은 어딜 가든 볼 수 있다. 굉장히 모던하고 좋은 차다.”

―한국의 오너 대기업 경영 체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오너 경영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오너 경영진이 ‘이로운 독재자(beneficial dictator)’라면 회사는 더욱 잘 돌아갈 것이다. 기업을 경영하는 데 절대적으로 옳은 방법은 없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이 점점 더 세계화해나갈수록, 변화를 어떻게 이뤄낼지가 과제인 것은 맞다. 한국 기업은 변화를 더 잘 관리할 수 있는 형태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너 가족의 영향력은 유지하면서, 최고의 인재들이 좀 더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형태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액정에 대해 전문가만큼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경영의 세부적인 상황에 깊게 관여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이 알아서 일을 잘 처리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가족이란 이유만으로 ‘이건 이렇게 해’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는 성장하는 기업에서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이런 변화의 과정은 독일 기업이 80년 전부터 직면했던 것이다. 끊임없이 좀 더 좋은 방법을 고민해보라. 한국인들은 이런 변화를 이뤄내기에 충분히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프랑크 슈탕겐베르크-하버캄프E. 머크 KG(머크 모기업) 최고 경영위원회 회장

1948년 독일 도르스텐 출생
고교 졸업 후 독일 공군 입대, 중위 예편
프라이부르크 대학 경제학 졸업, 경제사(史) 박사 학위 취득
독일 코메르츠방크, 영국 베어링은행, 함브로스에서 근무
1984년 E 머크 KG의 파트너위원회 가족 대표로 선정
2014년 1월 E 머크 KG의 최고경영위원회 회장, 패밀리위원회 회장에 선임(머크 최고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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