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6.11.19 03:05
[Insight]
1928년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2028년이 되면 기술 발전으로 하루 세 시간만 일해도 되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여가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케인스의 예측이 무색할 정도로 직장인의 90%는 작년보다 올해 더 많은 일을 했다고 느낀다. 기계가 인간의 업무를 상당 부분 대신하고 있지만, 막상 현대인의 여가는 사라지고 있다.
하버드 매거진 편집장 출신인 크레이그 램버트(Lambert·68)는 최근 한국에 번역·출간된 '그림자 노동의 역습(원제 Shadow Work)'을 통해 현대인의 삶을 분주하게 하는 주범으로 '그림자 노동'을 꼽았다.
우리말로 하면 '잡일'로 해석할 수 있는 그림자 노동은 이를테면 출퇴근길 버스에서 보내는 시간이나 일정 주기마다 변경해야 하는 비밀번호, 반찬을 가져다 먹는 식당, 직접 주유해야 하는 셀프 주유소, 최저가 비행기표 검색 등 대가 없이 개인에게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부여된 일상적인 노동이다.
그림자 노동은 오스트리아 철학자 이반 일리치가 1981년 처음 발표한 개념이다. 일리치는 집안일처럼 돈을 받지 않는 모든 일을 정의하기 위해 이 말을 고안했다.
램버트는 전화 인터뷰에서 "분명히 기술은 발전하고 업무는 간소화되어 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것을 습득하면서 발생하는 그림자 노동은 늘어나고, 일과 여가의 구분마저 지워버리고 있다"며 현대인이 '중산층 노예(middle-class serfdom)'로 전락했다는 다소 과격한 표현을 쏟아냈다.
"기계의 자동화는 사람에게 더 많은 여가를 허락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 반대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조용히 조수(潮水)가 해안을 침식하듯, 새로운 '잡일'들이 우리의 시간에 침투해 여가를 조금씩 빼앗아 가고 있다. 바로 그림자 노동이라고 불리는 '시간과 에너지 도둑'이다."
램버트는 하버드대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첫 저서 '마인드 오버 워터(Mind Over Water)'로 퓰리처상 후보에 올랐다. 미국 잡지 뉴요커는 그의 저서 '그림자 노동의 역습'에 대해 "시간뿐 아니라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꾸어 놓을 책"이라고 평가했다.
하버드 매거진 편집장 출신인 크레이그 램버트(Lambert·68)는 최근 한국에 번역·출간된 '그림자 노동의 역습(원제 Shadow Work)'을 통해 현대인의 삶을 분주하게 하는 주범으로 '그림자 노동'을 꼽았다.
우리말로 하면 '잡일'로 해석할 수 있는 그림자 노동은 이를테면 출퇴근길 버스에서 보내는 시간이나 일정 주기마다 변경해야 하는 비밀번호, 반찬을 가져다 먹는 식당, 직접 주유해야 하는 셀프 주유소, 최저가 비행기표 검색 등 대가 없이 개인에게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부여된 일상적인 노동이다.
그림자 노동은 오스트리아 철학자 이반 일리치가 1981년 처음 발표한 개념이다. 일리치는 집안일처럼 돈을 받지 않는 모든 일을 정의하기 위해 이 말을 고안했다.
램버트는 전화 인터뷰에서 "분명히 기술은 발전하고 업무는 간소화되어 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것을 습득하면서 발생하는 그림자 노동은 늘어나고, 일과 여가의 구분마저 지워버리고 있다"며 현대인이 '중산층 노예(middle-class serfdom)'로 전락했다는 다소 과격한 표현을 쏟아냈다.
"기계의 자동화는 사람에게 더 많은 여가를 허락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 반대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조용히 조수(潮水)가 해안을 침식하듯, 새로운 '잡일'들이 우리의 시간에 침투해 여가를 조금씩 빼앗아 가고 있다. 바로 그림자 노동이라고 불리는 '시간과 에너지 도둑'이다."
램버트는 하버드대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첫 저서 '마인드 오버 워터(Mind Over Water)'로 퓰리처상 후보에 올랐다. 미국 잡지 뉴요커는 그의 저서 '그림자 노동의 역습'에 대해 "시간뿐 아니라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꾸어 놓을 책"이라고 평가했다.
―그림자 노동이 정확히 뭔가.
"사람들이 돈을 받지 않고 하는 모든 일을 말한다. 자동차에 기름을 넣고, 장 본 물건을 쇼핑백에 담고, 직접 온라인으로 주식을 사고팔고, 가구를 손수 조립하고, 스타벅스에서 줄을 서서 커피를 사서 마신 뒤, 자리를 치우고 가야 하는 등의 행위다."
―하지만 직접 가구를 조립하고, 항공권을 예매하는 것이 더 저렴하므로 소비자에게 이득 아닌가.
"물론 당장 혜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과거 다른 누군가가 했던 일을 무급으로 내가 하는 것이다. 그림자 노동은 해야 할 일로 하루가 이미 꽉 차 있는 사람들에게 추가로 해야 할 일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점점 시간을 빼앗겨 자기 인생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하게 되는 자기모순적인 21세기를 살고 있다."
―직장인의 출퇴근 시간도 그림자 노동이라고 했는데.
"맞다. 통근은 고용주에게 이익이 되는 무급의 노동이다. 미국의 일반적인 통근자는 출퇴근을 위해 매일 25.7㎞를 이동한다. 기름 값으로 계산해보면 하루 17.6달러, 일주일 88달러, 1년에 4400달러의 비용을 노동자 스스로 부담하는 것이다. 시간으로 따지면 매일 출퇴근하는 데 평균 52분, 1년으로 치면 길 위에서 217시간을 보낸다. 다시 말해 주당 40시간씩 5주 넘게 무급으로 '이동하는 업무'를 하는 셈이다. 이런 비용을 고려해 보면, 일주일에 적어도 하루나 이틀 정도는 재택근무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혼잡 시간대를 피해 연료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도록 출퇴근 시간에 융통성을 두는 것도 좋다. 통근이라는 그림자 노동만 줄여도 노동자의 삶의 질을 상당히 개선할 수 있다."
―출퇴근은 납득이 가는데, 내가 마신 커피잔도 직접 치우지 말라는 건 과도한 개입 아닌가.
"현대인이 '그림자 노동'에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이처럼 '일을 찬양하는 태도' 때문이다. 노동과 미국 근로자의 관계는 포도주와 프랑스인의 관계와 같다(웃음). 쾌락보다 노동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한 탓에 게으름, 꾸물거림, 남에게 일을 미루는 행위, 심지어 휴식조차도 부끄러운 행위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커피잔을 대신 치우는 등 점원이 할 일을 대신해 주면서 '뿌듯함'을 느끼는 것이다."
―남의 일을 대신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부정적으로 볼 수 없지 않나.
"그런 심리를 파고든 기업이 바로 스웨덴 가구 회사 이케아(IKEA)다. 이케아는 전 세계 43개국 매장에서 'DIY(Do It Yourself)'를 앞세운 판매 전략으로 가구 공장 노동자들이 월급을 받고 하던 일을 손님들이 직접 하게 만들었다. 그림자 노동이 생산 단계까지 침투한 것이다. 이케아 가구를 조립해본 부부들은 스웨덴에서 이케아가 '말다툼'을 뜻한다는 냉소적인 농담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자 노동은 왜 늘어나고 있나.
"인건비를 줄이려는 기업의 정책 때문이다. 인원 감축, 자동화와 함께 과거에는 기업이 고객에게 제공하던 서비스를 일정 부분 고객 스스로 처리하도록 한 것이다. 이제 고객들은 자연스럽게 샐러드 바에서 직접 음식을 담아 오고, 공항에서 무인 단말기로 직접 탑승 수속을 밟고, 제품 사용 설명서를 찾기 위해 기업 홈페이지 질문 목록을 뒤져야 한다. 이런 일을 스스로 못하고 도움을 요청하면 몰상식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분위기도 문제다."
―기술이 덜 발달했던 과거는 어땠나.
"일할 때는 일하고 놀 때는 놀았다. 최소한 이 두 가지가 섞이진 않았다. 과거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샐러드를 만들고, 캔과 병을 버리고, 은행 업무를 처리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태워다 주는 일은 '내'가 아닌 주유소 점원과 웨이터, 환경 미화원, 은행 직원, 버스 기사들이 처리했다. 오늘날에는 바로 당신이 이 일들을 물려받은 것이다."
―그림자 노동의 가장 큰 피해는.
"일을 대신하는 '착한' 소비자 때문에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는 점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점원, 비서, 주유원, 여행사 직원, 계산원 등이 멸종 위기 직업이 됐다. 기술의 발달은 더 많은 그림자 노동을 만들 것이고, 더 많은 젊은이가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만약 호텔 로비에 체크인 기기가 새로 설치되었다면, 프런트 직원이 한 사람 줄어든 것일 수 있다. 이처럼 그림자 노동은 대체하기 쉽다고 여겨지는 초보적인 일자리, 저임금 미숙련 일자리가 사라지는 원인이 된다."
―현대인은 그림자 노동에 어떻게 맞서야 하나.
"본업이 아닌 일을 할 경우, 이 일이 그림자 노동인지 아닌지 가늠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당장 할인 혜택보다 그 시간에 무엇을 할 경우 나에게 더 도움이 될지 고민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여가 없이 끊임없이 바쁘기만 한 삶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정된 시간의 기회비용을 따져보고, 내 삶에서 중요한 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한국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일, 돈, 시간 세 가지라고 한다면 그중에 제일은 시간이다.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처럼, 많은 사람의 시간을 잡아먹는 그림자 노동의 개념을 통해 일상을 한번 돌이켜보길 바란다."
"사람들이 돈을 받지 않고 하는 모든 일을 말한다. 자동차에 기름을 넣고, 장 본 물건을 쇼핑백에 담고, 직접 온라인으로 주식을 사고팔고, 가구를 손수 조립하고, 스타벅스에서 줄을 서서 커피를 사서 마신 뒤, 자리를 치우고 가야 하는 등의 행위다."
―하지만 직접 가구를 조립하고, 항공권을 예매하는 것이 더 저렴하므로 소비자에게 이득 아닌가.
"물론 당장 혜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과거 다른 누군가가 했던 일을 무급으로 내가 하는 것이다. 그림자 노동은 해야 할 일로 하루가 이미 꽉 차 있는 사람들에게 추가로 해야 할 일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점점 시간을 빼앗겨 자기 인생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하게 되는 자기모순적인 21세기를 살고 있다."
―직장인의 출퇴근 시간도 그림자 노동이라고 했는데.
"맞다. 통근은 고용주에게 이익이 되는 무급의 노동이다. 미국의 일반적인 통근자는 출퇴근을 위해 매일 25.7㎞를 이동한다. 기름 값으로 계산해보면 하루 17.6달러, 일주일 88달러, 1년에 4400달러의 비용을 노동자 스스로 부담하는 것이다. 시간으로 따지면 매일 출퇴근하는 데 평균 52분, 1년으로 치면 길 위에서 217시간을 보낸다. 다시 말해 주당 40시간씩 5주 넘게 무급으로 '이동하는 업무'를 하는 셈이다. 이런 비용을 고려해 보면, 일주일에 적어도 하루나 이틀 정도는 재택근무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혼잡 시간대를 피해 연료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도록 출퇴근 시간에 융통성을 두는 것도 좋다. 통근이라는 그림자 노동만 줄여도 노동자의 삶의 질을 상당히 개선할 수 있다."
―출퇴근은 납득이 가는데, 내가 마신 커피잔도 직접 치우지 말라는 건 과도한 개입 아닌가.
"현대인이 '그림자 노동'에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이처럼 '일을 찬양하는 태도' 때문이다. 노동과 미국 근로자의 관계는 포도주와 프랑스인의 관계와 같다(웃음). 쾌락보다 노동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한 탓에 게으름, 꾸물거림, 남에게 일을 미루는 행위, 심지어 휴식조차도 부끄러운 행위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커피잔을 대신 치우는 등 점원이 할 일을 대신해 주면서 '뿌듯함'을 느끼는 것이다."
―남의 일을 대신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부정적으로 볼 수 없지 않나.
"그런 심리를 파고든 기업이 바로 스웨덴 가구 회사 이케아(IKEA)다. 이케아는 전 세계 43개국 매장에서 'DIY(Do It Yourself)'를 앞세운 판매 전략으로 가구 공장 노동자들이 월급을 받고 하던 일을 손님들이 직접 하게 만들었다. 그림자 노동이 생산 단계까지 침투한 것이다. 이케아 가구를 조립해본 부부들은 스웨덴에서 이케아가 '말다툼'을 뜻한다는 냉소적인 농담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자 노동은 왜 늘어나고 있나.
"인건비를 줄이려는 기업의 정책 때문이다. 인원 감축, 자동화와 함께 과거에는 기업이 고객에게 제공하던 서비스를 일정 부분 고객 스스로 처리하도록 한 것이다. 이제 고객들은 자연스럽게 샐러드 바에서 직접 음식을 담아 오고, 공항에서 무인 단말기로 직접 탑승 수속을 밟고, 제품 사용 설명서를 찾기 위해 기업 홈페이지 질문 목록을 뒤져야 한다. 이런 일을 스스로 못하고 도움을 요청하면 몰상식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분위기도 문제다."
―기술이 덜 발달했던 과거는 어땠나.
"일할 때는 일하고 놀 때는 놀았다. 최소한 이 두 가지가 섞이진 않았다. 과거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샐러드를 만들고, 캔과 병을 버리고, 은행 업무를 처리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태워다 주는 일은 '내'가 아닌 주유소 점원과 웨이터, 환경 미화원, 은행 직원, 버스 기사들이 처리했다. 오늘날에는 바로 당신이 이 일들을 물려받은 것이다."
―그림자 노동의 가장 큰 피해는.
"일을 대신하는 '착한' 소비자 때문에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는 점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점원, 비서, 주유원, 여행사 직원, 계산원 등이 멸종 위기 직업이 됐다. 기술의 발달은 더 많은 그림자 노동을 만들 것이고, 더 많은 젊은이가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만약 호텔 로비에 체크인 기기가 새로 설치되었다면, 프런트 직원이 한 사람 줄어든 것일 수 있다. 이처럼 그림자 노동은 대체하기 쉽다고 여겨지는 초보적인 일자리, 저임금 미숙련 일자리가 사라지는 원인이 된다."
―현대인은 그림자 노동에 어떻게 맞서야 하나.
"본업이 아닌 일을 할 경우, 이 일이 그림자 노동인지 아닌지 가늠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당장 할인 혜택보다 그 시간에 무엇을 할 경우 나에게 더 도움이 될지 고민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여가 없이 끊임없이 바쁘기만 한 삶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정된 시간의 기회비용을 따져보고, 내 삶에서 중요한 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한국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일, 돈, 시간 세 가지라고 한다면 그중에 제일은 시간이다.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처럼, 많은 사람의 시간을 잡아먹는 그림자 노동의 개념을 통해 일상을 한번 돌이켜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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