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성과 내려면
IT·통계 전문가보다 현업 부서에서 가치 창출 아이디어 도출 가능성 훨씬 커
빅데이터라는 개념이 우리 사회에 소개된 지도 몇 년이 흘렀지만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선진 기업들의 성공 사례가 자주 들려올 뿐만 아니라 외국 유수의 연구 기관들과 컨설팅 회사들도 빅데이터가 가져올 미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쏟아내고 있다. 올해 초 개최된 다보스 포럼의 주요 주제 중 하나도 4차 산업혁명과 이로 인한 산업 및 인력 구조의 변화와 관련된 것이었다. 인공지능과 로보틱스, 사물인터넷 등 기대감과 동시에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몇몇 단어가 거론됐었는데, 빅데이터의 중요성이 다시금 확인됐음은 물론이다.
IT(정보기술) 강국인 우리나라는 비교적 초창기부터 빅데이터 활용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빅데이터 도입을 위한 지원정책을 꾸준히 펼쳤다. 이번 정부는 관계 부처를 중심으로 빅데이터를 활용한 공공 및 산업 분야의 활성화 방안과 마스터플랜을 꾸준히 수립했고, 빅데이터의 인식 제고를 위한 전담 조직을 만들었다. 또 공공 데이터 개방 정책을 통하여 활용 가능성을 확대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결과 공공 분야에서도 성공 사례 몇 가지가 도출되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빅데이터와 관련해 우리 사회가 경주한 노력과 기대에 비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주장도 많다. 다양한 산업 분야에 적극적으로 수용되고 있다고 보이지 않을뿐더러 그 속도가 매우 느리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많은 기업이 빅데이터 도입의 선결 조건으로 데이터나 정보 기술 인프라, 또한 이와 관련된 기술 전문 인력을 떠올린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기술 요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빅데이터 분석 및 활용과 관련된 현업 부서 중심의 기획 능력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빅데이터의 전략적 활용 기회, 즉 분석 및 활용 시나리오를 발굴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여기서 빅데이터 분석 및 활용 시나리오란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해' '어떻게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라는 간단한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빅데이터 분석이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이 간단한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해야 한다. 또한 다수의 의미 있는 시나리오가 발굴돼 그 적용 범위를 넓혀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빅데이터 분석을 위한 IT 플랫폼을 구축해 놓고 있는 많은 기업이나 조직들조차도 의미 있는 시나리오를 창출하는 데는 매우 서툴거나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간단해 보이는 빅데이터 분석 시나리오는 왜 도출하기가 어려운 것일까? 한 가지 이유는 우리가 말로만 주장해 오던 소위 '융합형 인재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많은 조직에서는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전문적 기술을 가진 특정 인력이 빅데이터 활용 시나리오 수립에서도 큰 역량을 발휘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시나리오의 수립은 데이터의 수집, 저장 및 분석이라는 실행 기술 이전에 존재하는 비즈니스 차원의 문제다. 조직이 당면한 문제의 인식과 해결을 위한 대안의 설정, 가치 창출에 대한 민감도는 정보기술이나 통계와는 담을 쌓고 살아왔던 현업 부서가 훨씬 높은 경우가 많다. 만일 정보기술이나 통계 등 분석 기술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있다면 해당 분야 기술 전문가보다는 현장과 가까운 현업 부서 구성원의 아이디어로 의미 있는 시나리오가 도출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빅데이터를 도입하고자 하는 기업이나 조직은 빅데이터 활용 시나리오의 수립이라는 일종의 기획 업무까지 너무나도 쉽게 특정 담당 부서나 IT 및 통계 전문가의 몫으로 돌려버린다. 현업 전문가가 보유한 경영 지식은 대용량의 데이터에서 무엇이 필요한 데이터인지를 파악하게 하고, 어떤 요인이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가능성이 높은지를 살펴보며, 도출되는 분석 결과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한다. 좋은 시나리오는 현업 전문가가 보유한 경영 지식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서만이 도출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복잡해져 가는 세상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융합적 사고에 기반을 둬야만 해결 가능한 일들이 급격히 늘어가고 있다. 빅데이터가 구호뿐 아니라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지나친 분업 체계에서 탈피하는 일이 중요하다. 최소한 빅데이터의 기획 단계, 또는 시나리오 수립 단계에서 현장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추진해야 한다. 빅데이터가 해당 조직의 담당 부서 고민이 아니라 현업의 관심사로 바뀔 때 비로소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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