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4~5년간 '뉴 뉴트럴' 시대… 低성장 低금리 高부채 일상화

입력 2016.10.01 03:06

'뉴 노멀' 용어 만든 투자회사 핌코… 댄 아이버슨 CIO

'저(低)성장, 저금리, 그리고 고(高)부채.'

세계 최대 채권투자회사 핌코(PIMCO)는 지난 2009년 높은 실업률과 낮은 성장률이 지속되는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정상)'이 찾아왔다고 주장했다. 핌코의 모하메드 엘 에리언 공동창업자(현 알리안츠 고문)는 당시 2008년 금융위기 이전 시기를 '올드 노멀'로 부르며, 글로벌 경제가 올드 노멀로 회귀하지 못하고 뉴 노멀에 정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7~9%대 성장률을 보이던 고성장 시대는 가고, 제로에서 가까운 저성장이 새 기준이 된다는 뜻이었다. 뉴 노멀은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을 일컫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발레 이미지
Getty Images Bank
1조5100억달러(1650조원)를 굴리는 투자회사 핌코는 뉴 노멀에 이어, 기준금리가 제로 수준을 맴도는 '뉴 뉴트럴(New Neutral·새로운 중립)' 시대가 온다고 보고 있다. 댄 아이버슨(Ivascyn·47) 핌코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뉴 뉴트럴 시대엔 전 세계 금리가 금융위기 이전 수준까지 다시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가상승률과 투자 수익률 역시 낮아지면서 예전처럼 금리 인상에서 파생되는 이익을 취하는 것도 어려워질 것으로 내다봤다.

아이버슨 CIO는 핌코의 투자 상품을 총괄하는 펀드 매니저다. 그는 핌코 창업자이자 '채권왕'으로 불린 빌 그로스 회장이 지난 2014년 9월 회사를 떠난 후, 그로스 회장이 그동안 맡아오던 투자 총괄직을 이어받았다. 지난 2013년 기준으로 아이버슨 CIO가 운용하던 '핌코 인컴 펀드'는 연 4.8%의 수익률을 기록해 동종 유형 펀드 랭킹 상위 1%에 올랐다. 같은 해 투자 리서치기관 모닝스타는 아이버슨을 '올해의 채권펀드 매니저'로 꼽았다.

지난 8월 말, 캘리포니아주(州)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차로 약 1시간 떨어진 뉴포트비치에 있는 핌코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아이버슨 CIO는 출근 직후부터 퇴근 직전까지 1분 단위로 스케줄을 정해놓고 바쁘게 돌아다니며 매일 전 세계 금융시장 동향을 보고받고 분석한다고 했다.

댄 아이버슨 핌코 최고투자책임자(CIO).
댄 아이버슨 핌코 최고투자책임자(CIO). / 핌코 제공
―저성장 시대를 뜻하는 뉴 노멀에 이어, 금리가 제로에 가까운 수준에 머무는 뉴 뉴트럴 시대가 온다고 전망했다. 어떤 맥락인가.

"뉴 뉴트럴은 핌코가 2009년부터 소개한 뉴 노멀 시나리오를 진화시켜 만든 개념이다. 금융위기 때 각국 경제 상황을 살펴보면 성장 속도가 양분화돼 있었다. 선진국은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반면, 중국 등 일부 신흥국은 견고한 성장세를 보였다. 뉴 뉴트럴 시나리오는 양분화가 아니라, 저성장으로 수렴한다고 본다. 앞으로 금리가 역대 최저 수준에 계속 머물고, 각국 경제 성장률이 올드 노멀 때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다. 또 각국 정부는 부채는 부채대로 갖고 가게 되는데 이는 금리가 낮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다시 말하면 핌코는 앞으로 4~5년 동안 대부분 국가의 기준금리가 제로에 가까운 수준에 맴돌고 성장률과 물가상승률 역시 아주 낮은 뉴 뉴트럴 시대를 겪을 것이라고 본다."

부채 규모는 역대 최대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각국 부채도 많이 늘어난 상태다. 저성장·저소비·저금리 시대가 과연 지속 가능한 것일까.

"명목 성장률이 매우 낮고 부채는 매우 높고, 구조적 개혁은 거의 이뤄지지 못하는 시기가 계속될수록, 경제적·정치적 위험은 더 커진다. 유럽처럼 말이다. 정치인들은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가 상승 유도 정책을 쓴다. 아마 몇 년 동안은 저성장·저금리·고부채 시대에 머무를 수 있지만 그동안 경제의 취약점은 커질 것이다. 우리는 1~2년 전에 비해 투자 전략을 더 보수적으로 짜고 있다. 왜냐하면 여러 국가가 구조적인 취약점을 개선하고 부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고, 수년 전에 비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약발도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금리·고부채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꾸준히 밝혀왔다. 곧 2017년이 다가오는데 부채 규모가 역대 최대다."

―투자자들은 뉴 뉴트럴 금리 시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글로벌 투자자들은 예상보다 더 오랫동안 저금리 기조가 이어질 것이란 점, 그리고 투자 수익률 역시 상당히 낮아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만일 예상과 달리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게 된다면 위험 요소로 보고 주의해야 한다. 일부 국가에선 마이너스 금리도 도입했다. 저금리, 마이너스 금리가 계속되면 주식·채권시장에 투자하기가 상당히 어렵고 투자자들은 불안해진다. 중앙은행의 정책에 따라 영향을 받는 투자 상품보다,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이 튼튼해지면서 성과가 좋아지는 투자 상품을 찾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핌코는 에너지 시장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에너지에 관련된 투자 상품에 우르르 몰려가란 얘긴 아니다. 오일을 포함한 상품 시장이 점점 안정을 되찾으면서 투자 기회가 서서히 생겨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는 9월 2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11월, 12월 두 차례 FOMC가 남아 있는데 11월 FOMC (1~2일)는 미국 대선(8일) 직전이라 동결 가능성이 크다. 시장에선 12월 금리 인상을 점치고 있다. 9월 FOMC가 열리기 약 3주 전에 만난 아이버슨 CIO는 "9월 인상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답했다. 금리 동결이 결정된 직후 추가로 진행된 이메일 인터뷰에서도 아이버슨 CIO는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작년 12월 연준이 금리를 올렸을 당시엔 '2016년 2~3차례 금리 인상' 전망이 우세했으나 올 들어 아직까지 한 차례도 올리지 않았다. 연말에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보나.

"미국 대선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는 점은 우리의 전망과 일치하지만, 12월에 반드시 금리 인상을 할 것이라고 단정 짓긴 어렵다.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나빠진다면 불확실성은 커질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금리 인상이 올해 후반에 이뤄지든 내년에 이뤄지든 간에 연준이 아주 천천히 신중하게 결정할 것이란 점이다. 최근 몇 개월간 경제 지표가 긍정적이었다고 해도 연준은 크게 흔들리지 않고 아주 차분하게 결정할 것으로 본다."

통화가치 절하정책은 혼란만

―작년 말엔 전 세계 금융시장이 탠트럼(선진국의 돈줄 조이기 등으로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현상)에 빠졌다. 탠트럼 위험은 어떻게 평가하나.

"올해 말에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다고 해도 세계 경제나 금융시장에 큰 타격을 주지 않을 것이다. 금융시장은 현재 추가적인 금리 인상에 대한 여파를 큰 문제 없이 흡수할 수 있는 상황이다. 2015년 말 연준이 금리 인상을 할 때와는 다르게 최근 몇 달 동안 달러가 약세를 보였다. 연준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세계 경제의 기초체력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몇 개월간 재닛 옐런 연준 총재의 FOMC 발언만 잘 살펴봐도 연준은 글로벌 시장이 추가 금리 인상에 대비할 수 있게 신호를 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같은 신흥국은 자본 유출을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각국이 경제 회복 단계가 다르고 중앙은행이 처한 상황도 다르다. 경제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통화가치를 절하하는 정책은 금융시장에 위험과 혼란만 준다. 올 초에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공격적으로 절하하자, 시장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커지는 등 글로벌 금융시장 타격이 컸다. 통화정책 수립자들은 공조와 조율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단기적으론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주요 국가들은 중국 경제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으로 본다. 중국이 내수 중심 성장 모델로 전환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투자 비중을 늘리고 있는 투자처는 어디인가.

"핌코는 앞으로 10년간 아시아 주요국들이 불확실성을 견디고 지금의 선진국들보다 훨씬 더 견고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본다. 인도·브라질·멕시코와 같은 신흥국에 대해선 매우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멕시코 경제는 미국과 매우 밀접한데 올해 조금 저평가된 부분이 있고 브라질은 최근 투자 성과가 좋았다."

―중국 시장은 여전히 매력적인가.

"우선 핌코는 중국 경제 성장률이 중국 정부의 목표보다 낮을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은 수출 중심에서 내수 중심으로 경제 성장의 원천이 옮겨가는, 균형 잡힌 성장 구조로 전환하는 과도기에 있다. 과도기에 있는 국가는 당연히 변동성이 클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인 불안정성과 높은 부채율인데,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진다면 중국 경제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중국 정부는 최근 들어 금융시장을 재정비하고 내수시장을 개방하는 데 힘쓰고 있다. 산업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자유경쟁시장을 장려하는 정책들이 자리 잡고, 퇴출되어야 하는 일부 기업을 쳐내기만 한다면 중국은 투자처로서 더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앞서 지적한 부채 위험이 해결되고 구조적 개혁이 단행되면, 뉴 노멀 이전의 고성장·고금리 시대, 즉 올드 노멀로 회귀할 수 있을까.

"그때로 돌아가는 건 어렵다고 본다. 지금은 생산성도 매우 낮은 상태인데다 주요 선진국의 인구 고령화가 심해지고 있다. 미국에선 금융위기가 터지기 몇 년 전부터 무리하게 부채를 키우면서 실제보다 더 높은 성장률을 냈다. 이는 과도하게 빚을 내서 이뤄낸 것이기 때문에 지속 가능하지 않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