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신용평가 시스템은 실패한 모델… 계속 의존 땐 또 다른 금융위기"

입력 2016.08.27 03:05

설립 22년 차 중국 민간 신용평가사… '다궁' 관젠중 회장

올해 3월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중국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두 곳 모두 중국 정부와 기업의 부채가 빠르게 늘어난 것을 전망 조정 이유로 들었다. 신용평가사가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낮추면 다음 번 신용등급 평가 때 등급이 강등될 가능성이 50%에 달한다. 중국 정부는 발끈했다. 러우지웨이(樓繼偉) 중국 재정부장(재무장관)은 "서구 신용평가사들이 중국에 편견을 갖고 있으며 중국 경제의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무디스와 S&P는 피치와 함께 세계 3대 신용평가사로 꼽힌다. 모두 미국계인 이 '빅3(big3)'가 전 세계 신용평가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오늘날 세계에는 두 수퍼파워가 있는데, 하나는 미국, 다른 하나는 무디스"라고 했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빅3는 2008년 금융 위기가 터지자 주범으로 몰렸다. 이들이 부도 가능성이 큰 비우량 주택담보대출(subprime mortgage) 채권에 높은 신용등급을 매겨 부실을 감추고 위험을 키운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빅3가 신용을 잃고 주춤하는 사이 중국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자국 신용평가사들의 입지 강화에 나섰다.

2010년 7월 중국 민간 신용평가사 다궁(大公)은 50국의 신용을 평가한 국가 신용등급 보고서를 처음 발표하면서 서구 신용평가사들에 도전장을 냈다. 당시 다궁은 중국의 신용등급을 미국보다 높게 매겼다. 다궁이 국제 금융시장과 언론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1년 8월 미국 정치권의 부채 한도 증액 협상 난항을 이유로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했을 때다. 다궁의 이런 조치는 처음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사흘 후 S&P가 미국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로 한 단계 떨어뜨려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자 그보다 앞서 비슷한 결정을 내린 다궁이란 낯선 이름에 관심이 쏠렸다.

다궁이 해외에 알려진 것은 몇 년밖에 안 됐지만, 중국 내에서는 설립 22년 차의 1세대 신용평가 회사다. 중국 본토에서 발행되는 위안화 표시 채권의 30% 이상이 다궁에서 신용평가를 받았다. 최근 베이징 본사에서 만난 관젠중(關建中·62·사진) 다궁 창업자 겸 회장은 "2008년 금융 위기는 신용평가를 더 이상 빅3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줬다"며 "빅3의 신용평가 시스템은 실패했다"고 했다.
그래픽
/블룸버그, 그래픽=박상훈 기자
―서구 신용평가 시스템이 실패했다고 보는 이유는.

"신용평가 시스템은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미국의 시각과 가치를 잣대로 다른 나라의 국가 신용등급과 기업 신용등급을 평가한다. 2008년 발생한 미국발 금융 위기는 미국 신용평가 시스템이 실패했다는 증거다. 미국 신용평가사들은 정치적 이해관계 등 객관적이지 않은 요인을 등급 산정에 반영했다. 이들은 채무자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가능성을 가장 중요한 평가 요인으로 삼는다. S&P는 디폴트 확률이 얼마나 높은지, 무디스는 디폴트가 얼마나 오래갈 것인지에 치중한다. 다궁이 자체 개발한 신용평가 모델은 디폴트 가능성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한 나라나 기업의 신용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를 창출해내는 능력이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도 서구 신용평가 기관들은 자신들의 시스템이 실패한 원인을 알아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이것이 세계 경제 상황이 여전히 좋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빅3가 지배하는 기존 신용평가 시스템 의존도를 줄이지 않으면 새로운 금융 위기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궁이 미국보다 중국의 신용등급을 더 높게 매긴 근거는.

"미국 경제는 성장 동력이 부족하다. 미국은 세계 최대 채무국이다. 국가 채무가 정부 세입을 초과한다. 부채를 상환할 자원이 충분하지 않다. 미국은 달러를 더 찍어내는 방식으로 버티고 있는데, 이는 채권자에게 손실을 안기고 위험을 전가하는 최악의 행동이다. 더 많은 채권과 달러를 발행해 소비력을 높이고 경제를 성장시키려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다. 중국 경제는 생산 능력을 키워 수년간 고속 성장해왔다. 그에 비해 아직 소비력은 충분히 성장하지 않았다. 중국이 생산 과잉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공급 측면(기업)의 개혁을 이어가면서 소비 중심으로 경제 구조를 전환한다면 앞으로 더 성장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중국 경제는 경착륙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 신용평가사로서 다궁의 경쟁력은 뭔가.

"중국 자본 시장이 자유화하고 개방될수록 신용평가 수요가 늘어난다. 중국 기업들이 발행하는 채권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한 외국 투자자들은 빅3와는 다른 방법론을 적용해 신용을 평가하는 현지 신용평가사의 데이터를 원한다. 중국 상황을 잘 아는 곳의 얘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것이다. 다궁은 누구보다 중국을 잘 알고 중국 기업에 대한 광범위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서구 신용평가사들이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는 아시아 신흥국에 대한 이해도 깊다. 아직은 다궁이 빅3에 버금가는 수준에 올라섰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몇 년 후에는 격차가 줄어들 것이다."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가 다궁의 신용평가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사실이 아니다. 회사의 관점과 신용평가 결정은 중국 정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다궁이 반(反)서구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일부 주장도 맞지 않는다. 모든 신용평가 결정에는 외부 개입이 없다. 다궁은 100% 민간 회사다. 정부가 가진 지분은 없다. 주주가 2명 있는데, 내 지분이 가장 많다. 나머지 한 명은 밝힐 수 없다."

―중국 신용평가사들이 중국 기업에 지나치게 높은 등급을 줘 투자 위험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신용평가사들 사이에서 경쟁이 심해지면서 기업에 적정 수준보다 더 높은 등급을 주는 현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기업은 신용등급이 높을수록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으므로 여러 신용평가사를 돌며 '등급 쇼핑'을 다닌다. 2005년 다궁의 국내 기업 신용평가 시장점유율은 50%였으나 지금은 20% 정도다. 기업들이 정확한 근거 없이 더 높은 등급을 주는 군소 신용평가사로 옮겨간 결과다.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 신용평가 업계가 가진 문제 중 하나는 정부 승인을 받은 신용평가사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정부가 설립 승인을 했다는 것은 평가 능력을 갖췄다는 것 아닌가.

"정부 허가를 받았다고 해서 모두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하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들은 어느 곳이 신뢰할 만한 곳인지 알기 어렵다. 경제 상황이 빠르게 변하고 있고 그에 따라 기업들의 부채 상환 능력도 바뀌고 있다. 이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투자자에게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신용평가사의 역할이다. 전문성과 도덕성이 신용평가사가 지녀야 할 핵심 가치다. 다궁은 100개 이상 산업군별로 특화된 평가 방법을 적용한다. 채권을 발행하는 기업과 신용평가사 사이에 존재하는 정보 불균형도 문제다. 신용평가사가 기업으로부터 완벽히 정확한 정보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보 불균형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신용평가와 관련한 리스크는 늘 있기 마련이다. 이는 신용평가 기술이나 방법과 관련된 것이 아니므로 신용평가사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규제가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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