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인 시스템 안 바꾸면 대우조선의 비극은 또 일어날 수 있다

    •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

입력 2016.08.20 03:05 | 수정 2016.08.20 03:33

주인은 없고 머슴만 있는… 3중·4중 대리인 구조
4만원대 주가가 4000원대로 떨어지는 동안… 아무 조치도 없었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
한국 경제에 대한 걱정 어린 시각이 많다. 당면 현안인 일부 업종의 구조조정에서부터 미래 성장동력 발굴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추격에서부터 선진국의 보호무역 조짐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이런 위기의식이 실제로 어느 정도의 현실적인 위협인지는 자료를 기반으로 한 실증 분석이 있기 전에는 객관적인 판단이 쉽지 않다. 다만 상당수의 문제는 '대리인 이론(Agency Theory)'으로 접근하면 그 원인에 대해 비교적 용이하게 이해할 수 있다.

대리인 이론은 정보의 비대칭성과 함께 현대 경제학의 근간을 이루는 이론적 토대다. 간단히 말하면 본인-대리인 관계에서 본인에게 위임을 받은 대리인이 자신의 이익 추구를 위해 본인의 이익을 희생하는 소위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경제 전체적으로도 비효율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내 돈은 아끼고 남의 돈(또는 회삿돈)은 막 쓰는 게 대리인 문제의 핵심이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보험 관련 사례들 역시 전형적인 대리인 문제다. 굳이 보험 사기에 이르지 않더라도 휴대폰 보험 도입 초기에 멀쩡한 휴대폰을 버리고 새것으로 교환하는 현상, 실손의료보험 상품 가입자의 과잉 진료 현상 등은 잘 알려져 있다. 이런 현상들은 실제 보험회사의 손실로 이어졌고, 궁극적으로 일반 보험 가입자의 보험료 인상으로 충당된다. 대리인 문제는 스스로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이므로 이는 도덕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고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보험 상품의 경우 보험가입자의 비도덕성보다는 적극적인 마케팅을 위해 자기부담금을 너무 낮게 설정한 것을 근본적인 문제로 봐야 한다.

일반적으로 단일기업체제에서는 지배주주가 있는 기업이 없는 기업보다 대리인 문제가 덜 심각하다. 개인대주주가 50% 지분을 소유한 기업에서 손실이 나면 그 손실의 50%는 본인 손해이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경영을 하든 경영진을 고용하든 적극적인 관리·감독을 한다. 관리 감독에 따른 이익도 그중 50%는 물론 본인 이익이다. 사실 대리인 문제가 가장 적은 소유지배구조는 개인대주주가 100% 지분을 소유한 회사이지만, 이런 기업은 대규모 자금 조달이 어렵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소규모 기업에만 적용 가능하다.

'적당한 대리인 시스템 안 바꾸면 대우조선의 비극은 또 일어날 수 있다
/박상훈 기자

최근 문제가 된 대우조선해양의 사례를 살펴보자. 물론 대우조선해양에도 49.7%를 보유한 대주주가 있다. 이 대주주가 개인 주주였으면 아마도 대우조선의 시가총액이 불과 5년 만에 2조50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간에 자체 구조조정을 진행하든지 아니면 매각을 하든지 해서 본인이 어떻게 해서든 2조원의 손실을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대주주는 개인이 아니고 은행이다. 그렇다면 이 은행의 주주는 누구인가. 국내 은행법상으로는 특정 단일 주체가 은행 경영권을 행사할 만큼의 지분을 보유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어 개인 대주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부 주주들이 연합하여 단일 실체와 유사하게 의사 결정을 하는 은행은 있는데, 재일교포 주주들이 설립한 신한은행이다. 신한은행은 은행권에서 경영 실적이 양호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경영진이 재일교포 주주단에게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다. 그리고 (은행법 적용을 받지 않는) 산업은행의 최대주주는 100%를 보유한 대한민국 정부다. 즉, 대우조선해양의 본인은 산업은행이고, 대리인은 대우조선해양 경영진이다. 산업은행의 본인은 대한민국 정부고, 대리인은 산업은행 경영진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의 본인은 국민이다. 대리인은 정부조직, 좀 더 구체적으로는 실무를 맡은 각 부처 관료들이다. 국민은 분산되어 있어 대리인인 관료 집단을 효과적으로 관리, 감독할 수 없기에 국회를 통해 간접적으로 관리 감독한다는 것이 대의민주제에 대한 대리이론적 해석이다.

그런데 국회도 관료에 대해서는 본인이지만, 국민에 대해서는 대리인이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대우조선해양은 우리 국민이 지분의 49.7%를 보유한 국민 기업이지만, 대리인 이론 관점에서 볼 때 3중, 4중의 대리인 구조를 갖고 있다. 이 '대리인'들은 대우조선해양의 주가가 4만원대에서 4000원대로 떨어지는 동안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슬프지만 아마 아무런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최종 대리인인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진이 최종 본인인 국민의 이익을 위해 주가에 신경 쓰는 경영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마도 이러한 인식 자체가 없다고 보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일 것이다. 개인 대주주가 없는 기업에서 대리인으로서 경영진의 개인적인 인센티브는 명확하다. 좀 더 높은 보수와 좀 더 긴 임기다. 물론 이에 들어가는 돈은 본인인 주주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대리이론적 시각에서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진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법적인 문제는 별론으로 하고, 이러한 상황에서는 자신의 보수와 임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주어진 구조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원칙적으로는 본인-대리인 구조의 단계를 축소하고 대우조선해양의 실적과 주가에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주체가 본인으로서 소유와 경영을 담당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대우조선해양과 산업은행의 경영진 선임 과정에 중간 단계의 대리인들이 계속 개입하는 한 지금과 같은 현상은 언제든지 또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대리인들 입장에서는 버는 돈이든 쓰는 돈이든 다 남의 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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