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에 法的 책임만 묻는다면 분식회계 줄어들까

    •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입력 2016.07.09 03:05

대우조선 사태, 왜
공사진행기준 따르는 조선업 특수 회계처리법
설계도면·회계장부 보고 불법 적발 어려웠을 것

회계 부정 막기 위해선
감사 시간 충분히 주고 사외이사 자리에 회계 전문가 앉혀야… 감사인 지정 확대도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지난해 7월 대우조선해양은 2015년 2분기 매출이 1조6564억원, 영업손실은 3조399억원이라고 발표했다. 전 분기만 해도 4조4860억원의 매출과 430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했던 대우조선해양의 실적이 급격하게 악화되자 주가는 반 토막이 났고, 분식회계에 대한 의혹과 비난이 빗발쳤다.

재감사를 맡은 안진회계법인은 2013년과 2014년에 걸쳐 대대적인 분식회계가 이뤄졌다고 최근 발표했다.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는 등 이 사태는 1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를 보며 제기되는 의문은 두 가지다. '어떻게 갑자기 엄청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지'와 '담당 회계법인이나 대주주인 산업은행, 그리고 회계 감독을 수행하는 금융감독원은 왜 그동안 회계 부정을 발견하지 못했는지'다.

Getty Images 이매진스
Getty Images 이매진스
여기에 답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수주산업이라고 불리는 조선업과 건설업에서 사용하는 '공사진행기준'이라는 특수한 회계처리법을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120억달러에 수주한 해양플랜트 건설사업의 총공사 예정 원가가 100억달러라고 가정해보자. 작업을 시작한 1차 연도에 공사 원가 30억달러를 썼다면 공사 진행률은 30%이다. 이 경우 매출액은 총수주 금액의 30%인 36억달러다. 공사진행기준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총공사 예정 원가를 정확하게 추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작 기술 문제 등으로 실제 공사 비용이 예상보다 많이 들면 공사 진행률이 하락하고, 그 결과 매출은 감소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보도된 내용을 보면, 대우조선해양은 2015년 1분기 총공사 예정 원가를 실제보다 낮게 잡아 공사 진행률을 높게 기록하는 방법으로 매출을 부풀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5년 2분기에 최고 경영진이 교체되면서 실질적인 총공사 예정 원가를 반영해 재무제표를 작성했고, 그 결과 매출이 급감하고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측한다.

그렇다면 왜 그동안 이런 회계 부정을 찾아내지 못했을까. 사후적으로 볼 때 분식회계의 징후는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해양플랜트 사업을 수주한 현대중공업은 공사 비용이 예상보다 늘어나 적자를 볼 가능성이 크다며 재무제표에 3조2000억원 영업손실을 반영했고, 같은 해 삼성중공업의 영업이익은 1700억원으로 대폭 줄었다. 반면 대우조선해양의 영업이익은 4700억원으로, 두 경쟁 업체보다 실적이 좋은 것처럼 보였다. 다른 두 회사와 달리 대우조선해양이 2014년 총공사 예정 원가를 낮게 잡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 쪽에서 작정하고 회계장부를 조작했다면, 해양플랜트 건설 관련 기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회계사들이나 산업은행 관계자들이 설계도면이나 회계장부를 보고 총공사 예정 원가가 실제보다 낮게 추산돼 있다는 점을 찾아내기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회계 부정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세간의 비난을 받은 금융감독원은 사전적으로 기업의 분식회계를 적발하는 기관이 아니라, 사후에 분식회계 여부를 조사하는 역할을 맡고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인력이 부족해 한 기업을 10년에 한 번 조사하기도 벅찬 처지다.

그렇다면 회계 부정을 막기 위한 대책은 무엇일까. 우선 기업과 회계법인이 달라져야 한다.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회사 내 감사위원회가 감독 기능을 엄격하게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국내 기업의 사외이사들은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다. 수년 동안 대우조선해양을 거쳐간 사외이사들 중 회계 전문가가 한 명도 없었고, 기업 경영에 대해 능통한 인물도 많지 않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회계 부정을 주도한 경영진뿐만 아니라 감독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사외이사들에게도 법적인 책임을 지워야 한다. 현재 이 내용이 포함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마련된 상태다. 이런 제도가 시행돼야 경영진이 감사를 대충 받으려고 할 때 사외이사들이 나서서 깐깐한 감사를 하도록 회계법인에 요청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외이사는 회사 측이 아닌 소액주주들을 대표하는 위치라는 점을 망각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그래픽] 국내 조선 3사의 영업이익(손실) 추이
회계법인도 감사를 깐깐하게 진행해야 한다. 감사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충분한 시간을 투입해야 하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회계감사 투입 시간이 전 세계에서 최하위권에 속한다. 회계감사에 대한 보수가 선진국의 20~35%에 불과하다 보니, 회계법인들이 한 회사를 감사하는 데 들이는 시간이 짧아지는 것이다. 회사에서 감사 보수를 불필요한 비용으로 간주하고 삭감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이 사건을 계기로 회계법인이 감사에 임하는 자세가 확 달라졌으면 한다.

제도적으로는 사후 감독기관인 금감원과 금융위원회의 회계 담당 인력을 확충해 기업들이 쉽게 분식회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막고, 회사의 입맛대로 감사인을 고를 수 없도록 '감사인 지정제도'를 확대해야 한다. '감사인 지정제도'란 특정 조건에 해당하는 기업의 회계법인을 금감원이 지정하는 제도다. 기업들이 감사를 맡는 회계법인을 입맛에 맞는 대로 교체하지 못하게끔 고안된 제도다. 현재 이 제도를 적용받는 기업은 상장 예정이거나 분식회계 이력이 있는 경우, 부실 징후가 있는 경우로 한정돼 있다. 이 기준을 '분식회계의 조짐이 있는 기업'으로 확대한다면 회계 부정을 더 많이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선행 조건들이 해결돼야 한국 기업들의 회계 투명성이 개선되고, 분식회계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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