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눈 닿는 모든 곳에 뉴스 뿌린다… 미디어 '멀티 플랫폼'은 필수

입력 2016.07.02 03:11

미디어 업계 '미다스의 손' 블룸버그 CEO 저스틴 스미스

1970년대 투자은행 살로먼 브러더스에서 성공을 거듭하던 마이클 블룸버그는 사내의 적(敵)에게 밀려 어느 날 갑자기 해고됐다. 컴퓨터 지식과 약간의 자금이 있었던 그는 명성을 되찾기 위해 블룸버그(Bloomberg)를 설립하고 온갖 정보를 실시간으로 쏟아내며 데이터 분석 도구를 제공하는 단말기 뉴스 서비스를 선보였다. 24시간 돌아가며 경제 데이터와 뉴스를 보내주는 단말기(터미널)에 월스트리트는 열광했고, 블룸버그는 세계적인 미디어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수년 동안 블룸버그는 '내우외환(外憂內患)'에 시달렸다. 창업자인 마이클 블룸버그가 2002년부터 2013년까지 뉴욕시장으로 일하는 사이 블룸버그는 정보의 홍수를 몰고온 인터넷과 모바일의 거센 도전을 받았다. 이 와중에 블룸버그 기자가 고객 접속 정보에 무단 접근한 것이 발각되면서 블룸버그의 위상은 크게 흔들렸다.

새로운 라이벌들도 속속 등장했다. 연간 사용료로 약 2만달러를 지불하는 블룸버그 단말기를 겨냥해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이 도전장을 던졌다.

마이클 블룸버그와 블룸버그 경영진은 2013년 결국 구원투수를 데려오는데, 그가 바로 저스틴 스미스(Smith·47) 블룸버그 미디어그룹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적자였던 미국 지역 언론 애틀랜틱 미디어그룹 내 잡지를 흑자로 돌려놓고 다수 디지털 미디어를 성공적으로 출범시키며 미디어 업계에서 이름을 알렸다.

지난달 2일 미국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위치한 블룸버그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별도의 사무실 없이 블룸버그 단말기가 놓인 커다란 책상을 하나 차지하고 있었다. 스미스 CEO는 "내 맞은편 책상이 바로 마이클 블룸버그의 책상"이라며 웃었다.

1시간이 넘는 인터뷰 동안 그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플랫폼'이었다. 스미스 CEO는 "과거 블룸버그의 라이벌이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 이코노미스트 같은 경제 전문 매체였다면 지금은 페이스북, 링크트인, 구글 같은 플랫폼 업체가 진짜 라이벌"이라고 강조했다.

저스틴 스미스 블룸버그 CEO는 “과거 경쟁자였던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 이코노미스트는 인쇄물 비중이 컸던 탓에 점점 영향력이 줄고 있다”며 “전통적인 라이벌들과 다르게 블룸버그는 다양한 플랫폼을 확보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저스틴 스미스 블룸버그 CEO는 “과거 경쟁자였던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 이코노미스트는 인쇄물 비중이 컸던 탓에 점점 영향력이 줄고 있다”며 “전통적인 라이벌들과 다르게 블룸버그는 다양한 플랫폼을 확보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뉴욕=온혜선 조선비즈기자

많은 플랫폼을 확보하라

―각종 정보가 범람하면서 차별된 콘텐츠와 데이터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해온 블룸버그의 위기라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위기의식은 늘 갖고 있습니다만, 위기라기보다는 디지털 시대에 맞춰 변화하는 와중에 겪는 진통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한 미디어가 하나의 플랫폼에서 특정 콘텐츠를 가지고 경쟁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블룸버그는 단말기가 있지만 TV도 있습니다. 라디오도 있고, 웹사이트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간지와 럭셔리 잡지도 따로 발간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고객이 좋아할 만한 제품을 모두 제공하는 것입니다. 단말기 사업으로만 블룸버그의 브랜드 영향력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 블룸버그 단말기는 세계에서 약 30만명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TV는 3억명이 시청하고 있고, 웹사이트는 매달 4000만~5000만명이 방문합니다.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셈입니다.

멀티 플랫폼 전략은 회사 수익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만약 특정 회사의 CEO가 블룸버그와 독점 인터뷰를 한다고 합시다. 해당 CEO의 인터뷰는 단말기는 물론 TV, 인터넷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제공됩니다. 블룸버그가 갖고 있는 플랫폼을 통해 수천만명에게 한꺼번에 접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광고주에게 매우 매력적인 모델입니다."

―블룸버그는 경제 콘텐츠 부문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지만, 최근에는 다른 분야 콘텐츠를 만드는 데에도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블룸버그의 고객 중에서도 가장 충성스러운 고객들, 바로 단말기를 사용하는 고객들이 원해서 경제·금융 이외의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1년에 2만달러 이상 돈을 내고 단말기를 사용하는 고객들은 대부분 금융업계 고연봉자입니다. 돈을 버는 정보 말고도 돈을 쓸 수 있는 정보를 편리하게 제공받기를 원했습니다. 어디서 휴가를 보내고, 어떤 여가 생활을 할지를 알고 싶어 했는데, 이 같은 종류의 콘텐츠를 단말기에 넣어 공급하니까 정체 사업이라고 생각했던 단말기 사업이 신흥 시장에서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제 블룸버그 단말기 가운데 미국 밖에서 사용되는 비중이 60% 정도인데 이 중 절반이 아시아에서 나옵니다. 이 지역에서 앞서 언급한 종류의 콘텐츠들의 열독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콘텐츠를 단말기라는 플랫폼으로 공급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블룸버그는 갖고 있는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블룸버그의 목표는 고객들이 온종일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도 블룸버그와 관련된 모든 플랫폼을 통해 원하는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브랜드 파워와 수익성을 함께 키우는 일종의 투 트랙 전략입니다."

블룸버그 단말기 뉴스 서비스의 플랫폼인 터미널.
블룸버그 단말기 뉴스 서비스의 플랫폼인 터미널.

외부 자원 활용하라

―블룸버그 단말기의 정보력과 데이터 가공력은 그동안 블룸버그를 지탱해온 핵심 경쟁력이었습니다. 다양한 플랫폼과 콘텐츠에 치중하면 블룸버그의 핵심 경쟁력이 훼손되는 것은 아닌가요.

"저희가 가장 경계하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단말기는 블룸버그의 브랜드 가치를 지키는 핵심 요소 중 하나입니다. 블룸버그가 단말기 사업을 포기하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다만 지금 갖고 있는 내부 자원을 쥐어짜 양적으로 질적으로 만족스러운 콘텐츠를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콘텐츠 제작에서 외부와의 파트너십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자면 블룸버그 고객들은 예술에 매우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블룸버그가 예술 관련 인력을 따로 채용하고, 이와 관련된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은 비용도 많이 듭니다. 그래서 최근 현대자동차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전 세계 저명한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브릴리언트 아이디어즈'라는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었습니다. 점심시간에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가볍게 시청하는 콘셉트였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습니다. 현대차는 제작 비용을 지원하는 대신 블룸버그의 다양한 플랫폼에 노출되면서 예술을 후원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블룸버그 개요
페이스북·링크트인 주목

―블룸버그의 가장 큰 라이벌은 누구인가요

"콘텐츠와 광고 측면에서 나눠서 봐야 합니다. 페이스북은 스스로를 소프트웨어 회사라고 하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 회사입니다. 뉴스를 보세요. 페이스북이 뉴스를 만들어내고 있고, 동영상도 페이스북을 통해서 유통됩니다. 페이스북은 모든 미디어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입니다. 특히 모바일에 특화되어 있는 것은 페이스북의 장점입니다. 미국인의 70%가 페이스북을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만 페이스북의 아쉬운 점은 너무 많은 정보가 돌아다닌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페이스북은 미디어의 주 수익원인 광고 분야에서는 아직 강력한 경쟁력을 갖지 못합니다. 광고 분야에서 가장 큰 경쟁자는 링크트인입니다. 링크트인의 기업간 거래(B2B) 매출이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의 광고 매출을 합친 것보다 더 크다고 들었습니다. 광고만 놓고 보면 구글도 경쟁자입니다. 명성도 높은 고객들이 계속 드나드는 플랫폼이고, 광고를 노출시키는 것도 쉽습니다."

―앞으로 올드 미디어의 생존 전략은 무엇이 될까요. 워싱턴포스트(WP)처럼 올드 미디어가 완전히 변신을 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회사는 WP인데, 새로운 종류의 콘텐츠를 모든 플랫폼에서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WP는 콘텐츠의 양에 비해 질이 별로'라고 합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는 이미 뉴욕타임스를 트래픽에서 앞섰습니다. WP의 모델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블룸버그도, 워싱턴포스트도 소수 독자로부터 많은 돈을 벌던 미디어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양한 플랫폼으로 끌어들인 많은 고객에게서 조금씩 돈을 벌어 판을 키우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다만 WP는 무료 배포에 큰 기회가 있다고 보고 있고, 블룸버그는 단말기를 계속 유지해서 브랜드 파워는 지켜나간다는 전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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