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6.06.18 03:05
'부자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 심각
교육수준 낮은 사람들 기회 평등 가치 현실서 작동 안 해
국제 원조는 로빈 후드 정신을 토대로 한다. 부자들의 돈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자는 얘기다. 로빈 후드 정신을 바탕으로 전 세계적으로 연간 1350억달러가 고소득 국가에서 저소득 국가로 흘러들어 간다. 로빈 후드 정신을 좀 더 학문적 단어로 말하면 '범세계적 약자 우선주의(cosmopolitan prioritarianism)'다. 전 세계 모든 사람의 가치를 평등하게 다뤄야 한다는 발상에서 시작해 도움이 가장 필요한 곳에 우선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는 이론이다. 덜 가진 사람이 더 가진 사람보다 '도움을 먼저 받을' 우선권이 있다. 범세계적 약자 우선주의는 각국과 기관이 수립하는 국제 원조, 인도적 지원 정책의 밑바탕이 되어 왔다.
범세계적 약자 우선주의는 표면적으론 그럴듯해 보인다. 나도 수년간 불평등과 가난을 연구하며 범세계적 약자 우선주의라는 가이드라인이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요즘 들어선 회의가 든다.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빈곤 문제를 퇴치하는 데 원조보다 경제성장과 세계화(글로벌라이제이션)라는 도구를 많이 써왔다. 지난 40년간 세계 빈곤층은 20억명에서 10억명 수준으로 줄었으니 대단한 성과다. 하지만 그만큼 치러야 할 대가도 있었다. 세계화는 저소득 국가의 빈곤층을 가난에서 탈출하도록 하는 데 기여했지만, 오히려 고소득 국가의 사람들에게 해를 끼쳤다. 선진국의 공장과 일자리가 값싼 노동력을 찾아 저소득 국가로 옮겨가자 피해를 본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일각에선 도덕적으로 당연히 감수해야 할 대가라고 말한다. 고소득 국가에서 일자리를 잃어 피해를 본 사람들의 건강이나 부(富)를 절대적으로 비교하면, 저소득 국가 빈곤층에 비해 훨씬 나은 수준이기 때문이란 논리가 깔려 있다.
고소득 국가의 약자들이 불편과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가 지금까지도 보편적으로 쓰이는 까닭은 나 같은 사람이 그런 논리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해 학계나 산업계에 있는 수많은 사람은 약자들이 겪는 피해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입장에 있지 않다. 반대로 나는 세계화의 수혜자다. 나의 서비스와 노동력을 더 넓은 글로벌 시장에서 팔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부모 세대에선 상상치도 못했던 것인데 세계화 덕분에 가능해졌으니 나는 덕을 봤다.
그러나 고소득 국가의 약자 입장은 다르다. 그들은 세계화에 따른 혜택이 아닌 타격을 입었다. 예를 들어 소득과 교육 수준이 낮은 미국인들은 지난 40여년간 세계화에 따른 경제적 이득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미국의 '빈곤층'은 정말 어느 정도로 심각한 가난에 빠져 있을까. 미국의 빈곤층은 아시아 저소득 국가의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살고 있을까.
수백만 미국인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고 있다. 이것은 세계은행(WB)이 공식적으로 정의하는 '극빈층'에 해당한다. 아프리카나 인도의 극빈층과 비슷한 수준이다. 미국에서 2달러 미만으로 몸을 뉠 쉼터를 마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인도나 아프리카에서 2달러 미만으로 하루를 사는 것보다 미국에서 2달러 미만으로 사는 것이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미국이 자부심을 가져왔던 '기회 평등'이란 가치도 실제론 효용이 떨어지고 있다. 세계화로 공장이나 일자리가 빠져나간 소도시들은 세원(稅源)을 잃어 교육제도에 충분히 투자할 돈이 없는 상태다. 교육이야말로 자녀들에게 빈곤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한 방도라지만, 이마저도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엘리트 학교들은 수세기간 자행되어온 차별을 바로잡기 위해 마이너리티(소수인종)들과 학비를 낼 수 있는 부유층 학생들을 모집한다. 그러나 이런 구조는 마이너리티에 해당하지 않는 백인이면서 소득이 낮은 근로자들에게 패배감과 분노감만 일으킨다.
앤 케이스(Case) 프린스턴대 교수와 함께 연구한 결과 미국 내 비(非)소수인종 사이에서 자살, 알코올중독, 약물중독 등 치명적인 문제로 인한 사망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삶의 질이 나빠지면 물가상승률, 공교육 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사망률은 왜 올랐는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지구 반대편에 있다'고 단정해선 안 되는 것 같다.
기득권층이 바로 길 건너에 있는 빈곤층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빈곤층에 더 가치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사람들 사이에서 분열이 심해진다. 뒤처진 사람들은 분노할 것이고 국가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범세계적 약자 우선주의는 표면적으론 그럴듯해 보인다. 나도 수년간 불평등과 가난을 연구하며 범세계적 약자 우선주의라는 가이드라인이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요즘 들어선 회의가 든다.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빈곤 문제를 퇴치하는 데 원조보다 경제성장과 세계화(글로벌라이제이션)라는 도구를 많이 써왔다. 지난 40년간 세계 빈곤층은 20억명에서 10억명 수준으로 줄었으니 대단한 성과다. 하지만 그만큼 치러야 할 대가도 있었다. 세계화는 저소득 국가의 빈곤층을 가난에서 탈출하도록 하는 데 기여했지만, 오히려 고소득 국가의 사람들에게 해를 끼쳤다. 선진국의 공장과 일자리가 값싼 노동력을 찾아 저소득 국가로 옮겨가자 피해를 본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일각에선 도덕적으로 당연히 감수해야 할 대가라고 말한다. 고소득 국가에서 일자리를 잃어 피해를 본 사람들의 건강이나 부(富)를 절대적으로 비교하면, 저소득 국가 빈곤층에 비해 훨씬 나은 수준이기 때문이란 논리가 깔려 있다.
고소득 국가의 약자들이 불편과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가 지금까지도 보편적으로 쓰이는 까닭은 나 같은 사람이 그런 논리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해 학계나 산업계에 있는 수많은 사람은 약자들이 겪는 피해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입장에 있지 않다. 반대로 나는 세계화의 수혜자다. 나의 서비스와 노동력을 더 넓은 글로벌 시장에서 팔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부모 세대에선 상상치도 못했던 것인데 세계화 덕분에 가능해졌으니 나는 덕을 봤다.
그러나 고소득 국가의 약자 입장은 다르다. 그들은 세계화에 따른 혜택이 아닌 타격을 입었다. 예를 들어 소득과 교육 수준이 낮은 미국인들은 지난 40여년간 세계화에 따른 경제적 이득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미국의 '빈곤층'은 정말 어느 정도로 심각한 가난에 빠져 있을까. 미국의 빈곤층은 아시아 저소득 국가의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살고 있을까.
수백만 미국인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고 있다. 이것은 세계은행(WB)이 공식적으로 정의하는 '극빈층'에 해당한다. 아프리카나 인도의 극빈층과 비슷한 수준이다. 미국에서 2달러 미만으로 몸을 뉠 쉼터를 마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인도나 아프리카에서 2달러 미만으로 하루를 사는 것보다 미국에서 2달러 미만으로 사는 것이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미국이 자부심을 가져왔던 '기회 평등'이란 가치도 실제론 효용이 떨어지고 있다. 세계화로 공장이나 일자리가 빠져나간 소도시들은 세원(稅源)을 잃어 교육제도에 충분히 투자할 돈이 없는 상태다. 교육이야말로 자녀들에게 빈곤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한 방도라지만, 이마저도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엘리트 학교들은 수세기간 자행되어온 차별을 바로잡기 위해 마이너리티(소수인종)들과 학비를 낼 수 있는 부유층 학생들을 모집한다. 그러나 이런 구조는 마이너리티에 해당하지 않는 백인이면서 소득이 낮은 근로자들에게 패배감과 분노감만 일으킨다.
앤 케이스(Case) 프린스턴대 교수와 함께 연구한 결과 미국 내 비(非)소수인종 사이에서 자살, 알코올중독, 약물중독 등 치명적인 문제로 인한 사망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삶의 질이 나빠지면 물가상승률, 공교육 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사망률은 왜 올랐는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지구 반대편에 있다'고 단정해선 안 되는 것 같다.
기득권층이 바로 길 건너에 있는 빈곤층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빈곤층에 더 가치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사람들 사이에서 분열이 심해진다. 뒤처진 사람들은 분노할 것이고 국가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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