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그토록 많았던 부(富)가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었을까. 부의 가치에는 개인 또는 기업이 미래에 얼마를 벌 수 있을지가 반영된다. 주식시장에서 미래 예상 소득이 현재 기업 가치(주가)에 반영되는 것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지난해부터 테라노스의 혈액 검사 기술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고, 올해 들어서는 기술력이 과장됐다는 증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테라노스의 기업 가치는 급격하게 떨어졌다. 재산 대부분이 회사 주식으로 구성됐던 홈스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홈스와 같이 많은 억만장자가 소유한 부는 현금과 같은 재산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억만장자들은 많은 경우 재산의 상당 부분이 자신이 경영하거나 투자한 회사의 가치로 구성돼 있다. 테라노스를 비롯해 차량 공유 서비스 회사인 우버, SNS 업체 스냅챗 등의 창업자들이 그들의 부를 현금화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지분을 다른 기업이나 사모펀드에 매각해야 한다. 매각 작업은 힘들면서도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카리스마 있는 창업자들의 지분 매각은 기업 가치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게다가 지분율이 높을수록 자산 유동화는 쉽지 않다. 당신이 전 세계 모든 금을 소유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금이 정말 필요한 사람은 높은 프리미엄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금 가격은 매우 높게 책정될 것이다. 자, 당신 거실에는 10억온스의 금이 쌓여 있다. 당신이 1온스당 1만달러에 팔기로 했다면 당신의 서류상 재산 가치는 10조달러가 된다. 하지만 당신이 급히 금을 모두 현금으로 바꾸고 싶다면 그 가격은 점점 더 내려간다. 모든 금을 매각하고 나면 10조달러보다 훨씬 적은 돈을 손에 쥐게 될 것이다.
지분을 팔 수 있는 만큼 큰 시장이 서지 않는다면 이들이 보유한 지분 가치 역시 환상에 불과할 수 있다. 비유동적인 자산은 종종 실제 가격보다 희망 사항을 반영하는 서류상 가치로 평가받는다. 뮤추얼 펀드인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는 유니콘들의 가치 평가액을 인하하더니 한 달 뒤에는 그중 일부의 평가액을 다시 올려잡기도 했다. 그러나 지분 평가 가치 변동은 실제 시장에서 거래를 통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멀리 생각할 필요도 없다.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대형 은행들은 모기지 관련 자산을 장부상 가치보다 낮은 가격에 매각해야 했다.
유동화가 어렵다는 것은 지분을 아예 매각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테라노스의 가치가 하락하긴 했지만 여전히 8억달러 정도 가치가 있다고 추정된다. 하지만 벤처 투자자들과 다른 외부 투자자들로부터 받은 자금에는 유동성 위기 발생 시 홈스가 가장 마지막으로 돈을 받는다는 특약이 포함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홈스의 지분(50%)은 회사의 추정 가치가 90억달러에 달하던 시기에는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불경기에는 회사의 실제 가치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여기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중산층은 예금이나 연금, 주식 계좌, 주택 등의 형태로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에서 재산의 상당 부분은 주택으로 구성돼 있는데, 주택은 유동성이 부족하다. 주택은 파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모되며,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경우 대출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많은 중산층 주택 소유자의 재산이 주거용 부동산에 묶여 다각화되지 못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당신의 집이 홈스가 보유한 테라노스의 지분 가치와 어떤 면에서 조금은 비슷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서류상으로는 많은 가치가 있을지 모르지만, 지역 주택 시장이 무너진다면 주택의 가치는 더 낮게 평가받게 된다. 집을 구입할 때 더 많은 사람이 이 점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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