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EU 탈퇴 땐 엄청난 비용 부담"

    • 필리프 리그랭(전 유럽위원회 고문)

입력 2016.05.21 03:06 | 수정 2016.05.21 03:39

EU와 교역 감소 비용 GDP 9.5%까지 치솟고 해외 투자 감소 비용 GDP 3.4%
EU 시장 이전처럼 접근 힘들어… EU와 다른 국가간 50개 이상 협정 재협상 시작해야 할 상황

필리프 리그랭(전 유럽위원회 고문)
필리프 리그랭(전 유럽위원회 고문)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브렉시트 덕분에 영국이 더 자유로워지고, 부유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EU 회원국으로 지불해야 할 비용은 없어지고, 대신 자유 교역에 따른 모든 혜택을 가져갈 수 있도록 EU와 '맞춤 협상'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다른 국가들과 더 나은 교역 조건으로 협상을 타결할 수도 있고, EU의 규제에서 벗어나 엄청난 이득을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브렉시트로 영국은 엄청난 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이다. 회원국 탈퇴라는 '이혼(離婚)' 과정의 불확실성과 지루한 불협화음 등으로 투자와 성장에 악영향이 미칠 것이다. EU로부터 영국이 영원히 분리되면 영국의 교역 규모와 해외 투자, 이민은 줄어들 것이다. 경쟁력, 생산성 그리고 삶의 기준 역시 낮아질 것이다.

런던정경대 경제성과센터는 영국과 EU와의 교역 감소로 인한 비용은 국내총생산(GDP)의 9.5%까지 치솟고 해외 투자 감소로 인한 비용은 GDP의 3.4%를 차지할 수 있다고 계산했다. 이 비용만으로도 브렉시트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다 날아간다. EU 예산에 대한 영국의 기여는 작년 기준으로 GDP의 0.35%에 불과했다. 영국의 노동 및 상품 시장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자유롭기 때문에 EU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득은 제한적일 것이다.

탈퇴 과정에 따른 불확실성도 장기화될 것이다. 약 2년 정도 소요된다고 하지만, 더 오래 걸릴 확률이 높다. 1980년대 그린란드(인구 5만명)의 탈퇴 협상은 논란이 되는 이슈가 어업밖에 없었음에도 3년 정도 걸렸다. EU 내 두 번째 경제 대국인 영국(인구 6400만명)이 탈퇴하는 것은 더욱 복잡하다. 브렉시트 후 영국이 나머지 EU 국가들과 경제협정을 해로 맺으려면 27개국으로부터 만장일치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 영국은 EU가 다른 국가들과 체결한 50개가 넘는 무역 협정들에 대한 재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송윤혜 기자
이 기간에 영국의 무역 규정과 내부 규칙은 공중에 붕 뜰 것이다. 투자와 고용 결정도 연기되거나 취소될 것이다. 파운드 가치는 급락할 것이다. 영국에 투자한 외국인 투자자들도 자산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위험을 느끼고 자금 회수에 나설 수 있다. 영국은 지난해 4분기에도 GDP 대비 7%의 재정 적자를 기록했다. 경제 성장을 약화시키는 이 모든 것은 정부의 재정 운용 계획을 위태롭게 한다.

일단 브렉시트가 결정되면 영국은 EU와 나머지 시장 모두에 이전처럼 접근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경제적으로 가장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은 노르웨이·아이슬란드·리히텐슈타인 등처럼 유럽경제지역(EEA)에 가입하는 것이다. EEA에 가입하면 유럽의 농수산 관련 정책에서 제외되지는 않으면서도 원산지 규정 같은 무역 장벽과 관세 부담은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영국의 EEA 가입은 정치적으로 불공평한 처사다. 영국은 제정 과정에 전혀 관여할 수 없는 소비자 보호, 환경 문제와 사회정책 등 유럽의 규제와 법률을 따라야 한다. 심지어 EU로부터 받는 어떤 혜택도 없이 재원을 보태야 한다. 또 영국은 EU 회원국 국민들이 영국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게 해야할 지도 모른다. 이것은 브렉시트 지지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약해진 국가 주권을 회복하는 것이 브렉시트의 핵심 동기인 만큼, 영국에 자금을 요구하고 (EU의) 규칙을 따르라는 일방적인 조건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만일 미국이나 중국처럼 세계무역기구(WTO) 기준에 따라 EU 국가들과 교역을 한다면, 정치적인 제약을 가장 덜 받을 수 있다. 영국이 EU 이민자들로부터 자유로워질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경우엔 EU 국가들 역시 영국인들의 이민을 통제하면서 반격할 수 있다.

영국산 제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는 무역 장벽과 영국 금융기관이 이전처럼 자유롭게 EU 국가에서 영업할 수 없는 등 비관세 장벽이 세워질 수도 있다. 소비자 5억명, 1조6000억달러에 달하는 EU 시장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진다면, 영국에 대한 해외 투자도 감소할 것이다. 스위스나 캐나다가 택한 절충안을 영국이 활용할 수 있을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영국이 자체적으로 무역 협상을 체결해 영국에 유리한 조항들만 골라 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이 EU에 수출하는 규모보다 수입하는 규모가 큰 만큼, EU와의 무역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에 있다는 논리다. 미국도 대(對)EU 무역에서 적자를 보고 있지만, 아직까지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을 재협상하자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있다.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EU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3%에 달하지만, EU의 총 GDP에서 대(對)영국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3%에 불과하다.

EU에 주도권이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의심의 여지 없이 영국에 힘든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독일 제조업자부터 프랑스 농부에 이르기까지 EU에 속해 있는 경제 주체들은 영국을 방해하려고 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경제 규모가 작아 배타주의적인 일부 EU 회원국이 방해하지 않더라도, 영국의 새로운 무역 협정은 상대적으로 더 불리해질 것이다. 게다가 미국도 영국을 봐줄 상황이 아니다. 현재 미 대선에 횡행하는 보호무역주의를 보면, 미국에서는 앞으로 몇 년 동안 자유주의적인 무역 기조를 찾기 어려워 보인다. 브렉시트가 미칠 경제적 파장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다. 그러나 결론은 간단하다. 브렉시트는 영국의 경제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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