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웨이 오른 모델 보면서 스마트폰으로 옷 주문하는 세상

입력 2016.05.21 03:06

명품의 '빠른 패션 전략'
패션쇼 동시에 온라인 판매하고, 이니셜 새기는 맞춤형 서비스도

지금 보고, 바로 산다(see now, buy now).

현재 패션업계의 키워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얼마나 빠르게 소비자들의 취향을 읽고, 최신 유행을 반영한 디자인을 내놓고, 실제로 소비자의 품에 안겨줄 수 있는지가 곧 경쟁력인 '패스트 패션' 시대이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의 이름값을 앞세워 '유행 선도자' 역할을 해온 명품 패션업체들도 콧대를 낮추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명품업계는 봄 패션쇼에서 그해 가을·겨울 의상을, 가을 패션쇼에서 이듬해 봄·여름 제품을 내놓았다. 하지만 패션쇼와 상품 판매 사이의 시차가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까지 걸리는 이전의 방식으로는 시시각각 입맛이 달라지는 소비자들을 붙들기 어려워졌다. 신상품이 실제로 매장에 진열되기 전에 디자인이 유출돼 저렴한 '카피캣' 상품들이 범람하는 것도 고민거리다.

올 초 영국 명품업체 버버리는 해마다 4번에 걸쳐 진행하던 패션쇼 횟수를 연 2회로 줄이고, 하반기부터 패션쇼가 끝나자마자 매장과 온라인 사이트에서 신상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공급 체계를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버버리는 공식 사이트를 통해 영문 이니셜을 직접 디자인해 스카프를 주문할 수 있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한국에서는 신세계그룹의 온라인 사이트인 SSG닷컴에 입점해 제품을 판매할 정도로 디지털화와 속도 경영에 적극적이다.

이탈리아 명품업체 베르사체와 모스키노도 일부 상품을 패션쇼와 동시에 판매하며 새로운 전략을 실험하고 있다. 베르사체는 컴퓨터와 휴대전화로 온라인 사이트에 접속해 다양한 제품을 구경하고 즉시 주문할 수 있도록 온라인 판매망도 강화하는 중이다.

패션 전문가들은 ▲온라인 쇼핑의 발달 ▲소셜미디어의 영향력 확대 ▲자가상표 부착제 유통방식(SPA) 브랜드의 약진을 변화의 원인으로 분석한다. 온라인 쇼핑몰들은 소비자의 구매 방식과 주문 내역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유행하는 스타일의 상품들을 적시에 제공한다. 블로그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사진을 공유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진 것도 패션업계의 속도 경쟁을 부채질하고 있다. 소비자가 유명 연예인이나 패션 전문가들이 착용한 제품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비슷한 상품을 찾기 때문이다.

패스트 패션 시대의 신흥 강자는 SPA 브랜드들이다. 상품 디자인부터 생산, 유통까지 직접 하기 때문에 신상품을 2~3주 안에 추가로 내놓을 정도로 유행을 신속하게 반영한다. 지역별, 매장별로 많이 팔리는 제품의 스타일을 분석해 그에 맞는 제품을 제작하는 만큼,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하는 수준도 높다. 스웨덴 브랜드 H&M, 스페인 자라, 일본 유니클로, 미국 포에버21 등이 해마다 두 자릿수 성장률을 자랑하는 것도 이런 빠른 대응 덕분이다.

송지혜 베인앤드컴퍼니 패션·유통 담당 파트너는 "그동안 명품업체들은 카리스마 있는 디자이너의 인지도를 바탕으로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년 전에 제품을 선보이며 유행을 선도했지만, 이제는 유통 시장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전략을 도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소비자의 취향과 유행을 빠르게 포착해 신제품에 반영하고, 공급망을 관리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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