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 머니'는 정부의 재정 건전성 부담을 중앙은행에 떠넘기는 것

    • 제임스 맥코맥(피치 채권그룹 글로벌 총괄)

입력 2016.05.07 03:05

정부, 중앙銀 통해 '공짜' 맛 들이고 중앙은행 건전성 해칠 우려도

제임스 맥코맥(피치 채권그룹 글로벌 총괄)
제임스 맥코맥(피치 채권그룹 글로벌 총괄)
많은 이가 '통화정책이 한계에 다다른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의 효과는 대부분 예상할 수 있었던 것들이다. 은행에 자금이 넘쳐나고, 자금 조달 비용(대출금리)이 줄어들고, 몇몇 국가의 정부는 마이너스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경제활동 촉진과 물가 상승 등 '통화정책의 2차 효과'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유럽중앙은행과 일본은행이 공격적인 양적 완화 정책과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시행했지만, 유로존과 일본의 물가상승률은 정책 목표치를 크게 밑돌고 있다. 올 들어서는 미 달러화 대비 유로화와 엔화 가치가 절상되기까지 했다. 물가 상승률에 낮은 상품 가격이 반영됐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추가 부양책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게 다수의 의견이다.

이런 논의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논쟁의 초점이 '통화정책의 효과' 자체에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강력한 통화정책의 핵심은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통화정책에 대한 신뢰다. 그러나 현재 대다수가 자산 건전성 관리보다 확장적인 통화정책을 주문하며 중앙은행들을 미지의 영역으로 밀어 넣고 있다.

물론 통화정책은 현재로서 가장 실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경기 부양책이다. 구조 개혁은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근본적인 방법이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개혁에 뒤따를 경제적 혼란 때문에 정치권이 주저하게 된다. 재정 지출을 확대하는 방법은 사상 최고치 수준인 정부 부채 때문에 쉽지 않다. 은행 시스템에 부작용이 닥칠 가능성을 고려하면 이미 마이너스 영역에 진입한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추가 인하하기도 어렵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1969년에 제안했던 '헬리콥터 머니'라는 오래된 아이디어가 다시 등장한 것도 선택지의 한계 탓이다. 프리드먼은 '하늘에서 1000달러짜리 지폐를 뿌리듯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시중에 돈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헬리콥터 머니를 가계에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국민의 계좌에 직접 현금을 넣어주는 방식으로 경제 수요를 늘리고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고 본다. 일각에서는 정부에 제공하는 편이 낫다고 말한다. 가계가 양적 완화로 풀린 돈을 모두 소비하지 않고 일부 저축한다면 정책 효과가 기대한 만큼 나타나지 않을 것이란 분석에서다. 이 논리대로라면 정부가 사회 기반 시설 건설 등 경제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사업에 투자해 경기를 부양할 수 있다. 중앙은행이 정부의 무이자 영구채를 매입하거나 국채를 다른 채권 자산으로 교환해주면 된다는 제안도 헬리콥터 머니와 비슷한 맥락이다.

'정부를 상대로 한 헬리콥터 머니'를 지지하는 이들은 두 가지를 내세운다. 첫째, 통화 완화를 통해 경제 상황이 개선되면 추가로 부양책을 펼 필요가 없어져 통화 당국은 언제든 양적 완화를 중단할 수 있다. 둘째, 중앙은행이 자산 건전성을 유지하는 것도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중앙은행은 통화를 무제한으로 발행할 수 있는 독점권을 갖고 있고, 대출을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게다가 통화 발행과 대출에는 비용도 들지 않는다.

헬리콥터 머니론(論)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중앙은행이 재정 적자를 메우거나 국채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정부에 직접 자금을 공급해준다면 재정정책까지 통화정책화될 수 있다. 경제 전망이 나아지지 않으면 재정정책의 효과까지 갉아먹을 가능성도 있고, 정책 당국이 별다른 비용 없이 중앙은행을 활용해 정부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공짜 점심'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통화를 발행해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산을 매입한 중앙은행의 자산 건전성도 해칠 것이다.

부채가 늘어나면 재정적인 여력이 줄어드는 정부와 달리 발권력으로 부채에 대한 부담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는 중앙은행을 직접 동원하는 방식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는 있다. 헬리콥터 머니의 위험성을 사전에 완전히 파악하기도 어렵다.

금태환제가 폐지된 이후 그 누구도 통화정책의 한계에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중앙은행의 자산 건전성 역시 중요한 사안이다. 헬리콥터 머니 정책을 시행했을 때 중앙은행이 충분한 시뇨리지(화폐의 실질 가치에서 발행 비용을 뺀 것으로 중앙은행의 화폐 주조 차익을 뜻함)를 얻을 것이라고도 확신할 수 없는 데다 무이자 대출 자산을 많이 보유한 경우에는 장기적인 수익원도 부족하다. 경제적인 역효과나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도 하락 등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 헬리콥터 머니는 정부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부담을 중앙은행에 떠넘기고 정책과 기관 간 경계와 독립성을 무너뜨리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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