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 들인 기술 개발만 혁신? 내부 문제 고치는 말단 직원들의 '작은 혁신'이 진정한 혁신

입력 2016.05.07 03:05

'식스시그마의 힘' 저자… 수비르 초두리 ASI 회장
불만족한 손님 1명 안나오게… 혁신은 말단 직원이 시작

수비르 초두리(Chowdhury·48) ASI(American Supplier Institute) 회장
"식스시그마가 한물간 경영 이론이라고요?"

수비르 초두리(Chowdhury·48·사진 왼쪽) ASI(American Supplier Institute) 회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식스시그마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모토롤라, 제너럴일렉트릭(GE) 등 세계적 기업이 앞다퉈 도입했던 경영 기법이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문제점을 찾아내고 개선해 제품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요즘의 산업 흐름과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나비 라드주(Radjou·46) 영국 케임브리지대 저지경영대학원 교수는 최근 위클리비즈 인터뷰에서 "식스시그마는 단순히 제품을 대량생산할 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창의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초두리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전 세계적으로 100만부 이상 팔리고, 20개 언어로 번역된 세계적 베스트셀러 '식스시그마의 힘(The Power of Six Sigma)'의 저자인 그는 "많은 이가 기업이 성장하려면 대단한 기술을 개발하거나 훌륭한 인재를 데려오거나 다른 회사를 인수·합병(M&A)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좋은 기업은 동시에 실수를 줄이고 결점을 개선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강조했다. 스스로를 '품질 전도사'라고 말하는 방글라데시 출신 초두리 회장은 경영학계의 오스카상이라는 '싱커스(Thinkers) 50'에 세 차례(2011·2013·2015년)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그는 "식스시그마의 핵심 정신은 말단 직원도 할 수 있는 작은 혁신을 찾아내는 것"이라며 "최소한의 투자로 제품과 서비스의 전체적 품질을 높이는 식스시그마 정신은 저성장 시대에 여전히 유효하다"고 덧붙였다.

①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최고의 투자

―식스시그마는 첨단 기술이 기업의 경쟁력이 되는 요즘과는 잘 맞지 않는 이론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많은 돈을 투자해 첨단 기술을 개발해야만 혁신일까요. 투자한 만큼 앞으로 성과가 난다고 확신할 수 있나요. 저는 적은 비용으로 이룰 수 있는 '작은 혁신'에 집중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결점을 개선해 전체적 품질 향상을 목표로 하는 식스시그마는 작은 혁신을 위한 매우 유용한 도구입니다. 식스시그마 도입 이전에는 대다수 기업이 문제 발생 원인을 통째 제거했습니다. 하지만 식스시그마의 방법론을 적용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품질 향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지난 2007년 크레파스로 유명한 미국 기업 크레욜라(Crayola)의 부사장이었던 피트 루지에로는 해외 출장 중 문구점에서 자사 제품을 구입했다가, 크레파스를 꺼낼 때 크레파스의 라벨이 자주 잘려 나간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크레욜라가 생산 라인을 다시 만들었을까요. 아닙니다. 크레욜라는 크레용 생산 과정을 면밀히 분석한 후, 라벨이 건조되는 과정에서 접착제가 고르게 발리지 않는 문제점을 발견했고, 이를 수정했습니다. 그 결과 크레욜라는 2008년에만 150만달러를 절감했습니다."
거액 들인 기술 개발만 혁신? 내부 문제 고치는 말단 직원들의 '작은 혁신'이 진정한 혁신
②칭찬보다 불만을 관리하라

―데이터를 분석해 문제점을 찾아내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프로젝트 초기에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보다 데이터를 정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데이터가 구축되면, 문제점을 찾기가 더 수월해집니다. 비용도 더 줄일 수 있습니다. 다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특정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지지하는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의도적으로 찾아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가 의미하는 것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야 정확히 문제를 진단할 수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많은 기업이 내부 문제 찾기에 소홀합니다. 반면 연구·개발(R&D)이나 마케팅에는 돈을 많이 투자하죠. 여기에 집중적으로 돈을 쓰는 것은 불합리한 일입니다. 제품이나 서비스에 만족한 고객 1명은 3명에게 소문을 내지만, 불만족한 고객 1명은 20명에게 불만을 말합니다. 가게에 손님이 들어오게 하는 데에도 신경을 써야 하지만, 가게에 들어온 사람을 관리하는 일 역시 중요합니다."

③작은 혁신은 기업 성장의 보완재

―첨단 기술이나 공격적 M&A가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더 좋은 방법 아닌가요.

"첨단 기술의 중요성과 M&A의 전략적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식스시그마도 이들과 충분히 함께 갈 수 있는 경영 기법이라는 점입니다. M&A만 갖고 기업이 성장할 수 있을까요. 화려한 성장 전략 뒤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작은 혁신들이 항상 존재합니다. 세계 최대 맥주 회사 'AB인베브'는 M&A를 통해 성장한 기업입니다. 버드와이저, 코로나, 스텔라 아르투아 등 전 세계 25개국에 200개에 달하는 브랜드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공장에서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생산하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한 종류 맥주를 생산하다 다른 맥주를 생산하려면 기계가 잠시 멈춰야 하는데, 이 대기 시간을 줄이는 것이 AB인베브의 과제였습니다. AB인베브는 생산 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사소한 행위까지도 일일이 시간을 재서 체크했습니다. 장갑을 끼는 동작까지 말이죠. 자동화가 가능한 부분은 자동화했습니다. 그리고 기계 휴식 시간에 점검할 요소를 30쪽짜리 서류가 아닌 한 장짜리 페이퍼에 정리했습니다. 공장 바닥에는 LED(발광 다이오드) 타이머를 설치해, 각 과정에서 필요한 시간을 초과하지 않도록 노동자들에게 끊임없이 주지시켰습니다. 그 결과 기계 전환에 필요한 시간이 34% 감소했습니다."
1 크레욜라의 작은 혁신… “라벨이 자꾸 잘려 나가네” 건조과정의 작은 문제점 개선, 150만달러 비용 절감 2 리버뷰 병원의 작은 혁신… 환자 조사 항목 그루핑 했더니 “퇴원 안내가 문제” 발견, 만족도 개선목표 초과 달성
④시스템과 사람의 조합이 최고 솔루션

―그래도 식스시그마는 제조업에 적합한 경영 기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비스 산업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습니다. 미국 위스콘신 래피드에 있는 리버뷰 병원 사례를 살펴볼까요. 이 병원은 미국 의료 당국에서 더 많은 인센티브를 받고자 고객 만족도 개선에 착수합니다. 리버뷰 병원의 목표는 서비스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하는 고객 비율을 85%에서 91%로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과거에는 대다수 병원이 서비스 만족도를 높이려고 직원들을 단체로 교육하거나 뭔가 큰 규모의 투자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리버뷰 병원은 만족도 조사 항목을 분류했습니다. 그 결과 퇴원 안내와 관련한 만족도가 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리버뷰 병원은 퇴원한 환자들에게 제공되는 안내서의 어려운 용어를 쉽게 고치고, 그들이 지속적으로 통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집중 관리했습니다. 그 결과 목표를 초과 달성했습니다. 다만 제조업에서 쓰는 식스시그마와 서비스업에서 적용하는 식스시그마는 차이가 있습니다. 제조업에 적용할 수 있는 식스시그마 비중을 100%로 잡으면, 서비스업은 25% 정도입니다. 서비스업은 시스템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가이드라인이 아무리 좋아도 직원이 제대로 실행하지 않으면, 결국 서비스 품질이 좋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

⑤직원의 전문성을 키워라

―결국 직원 개개인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뜻이군요.

"물론입니다. 기업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직원들을 여러 부서에 근무시키고, 다양한 업무에 적응할 수 있도록 여러 종류의 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개인마다 특성이 다르고, 역량이 제각각인데 이 방법이 과연 효율적일까요. 게다가 소비자는 빠른 정보 공유를 무기 삼아 더 좋은 서비스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세계적 금융 기업 에드워드 존스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이 기업은 연금, 보험 등을 통해 개인 투자자들의 퇴직 후 인생 설계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재밌는 점은 기관투자자가 아닌 개인 투자자만 상대하는데, 이메일 대신 전화로 고객 불만을 듣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 고객이 크게 늘어나면서, 서비스 품질을 어떻게 유지하나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분석해보니, 직원에게 맞는 장점을 살려주고 직원 특성을 고려해 업무를 주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고객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에드워드 존스는 직원 훈련 단계부터 직원의 특기를 집중적으로 키워주는 방향으로 전략을 짰습니다. 그리고 고객의 요구 사항을 더 세분해 관련 업무에 능숙한 직원에게 연결해주는 시스템을 만듭니다. 그 결과 개별 직원이 처리하는 전화 상담 수가 10% 늘었고, 고객과 통화 후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줄었습니다. 고객의 까다로운 요구에 응할 수 있는 직원의 전문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시스템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 AB인베브의 작은 혁신… 다품종 맥주 생산 효율 떨어지자 기계 전환 때 점검요소 체계화, 대기시간 34% 감소시켜 2 에드워드 존스의 작은 혁신… 직원 특기 집중적으로 키워 세분화한 고객 요구 따라 적재적소에 연결
 ⑥중간 관리자에게 권한을 줘라

―기업들이 문제 해결 과정에서 저지르는 실수는 무엇입니까.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기업이 원하는 것을 고객도 원한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제품과 서비스 품질 수준은 기업 내부 기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객이 결정하는 것이죠. 특정 제품과 서비스는 고객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조직의 리더나 임원들이 특정 문제를 해결할 책임자가 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고객 목소리를 듣는 직원들과 가장 가깝게 있는 중간 관리자에게 권한을 주고 책임을 지도록 해주세요. 혁신은 말단 직원들이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과 거리가 가까운 관리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중간 관리자의 역할은 직원에게 세부 임무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적십자팀이 구조 활동을 할 때를 떠올려 보세요. 구조팀 책임자는 어떤 사람에게는 담요를 가져오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전화로 현장 상황을 알리라고 지시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두 다 그냥 현장에 서 있기만 합니다. 그리고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진행 상황이 어떤지 모든 조직원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책임감이 생깁니다."

⑦리더의 역할은 영감을 주는 것

―마지막으로 이 과정에서 리더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직원들에게 영감을 줘야 합니다. 직원들의 마음가짐(mindset)을 바꾸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죠. 20년 전에 삼성전자는 '소니를 따라잡겠다'는 목표 아래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습니다. 현대차는 '타도 도요타'를 외쳤죠. 직원들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도록 만들 수 있는 비전을 설정하는 것이 리더의 일입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시간을 주세요. 마음가짐은 조직의 모든 구성원에게 영향을 주는 일종의 비전입니다. 절대로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빠른 시일 안에 성과를 내겠다는 고객을 대상으로 절대로 컨설팅하지 않습니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