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능가하는 거대한 기기 혁명 온다

입력 2016.05.07 03:05

[Cover Story] 안드로이드 이후를 내다보는 안드로이드 아버지 앤디 루빈
이르면 2~3년 內 표준이 될 하드웨어에 베팅… AI가 시키는 대로 실행하는 기술 나올 것

안드로이드 이후를 내다보는 안드로이드 아버지 앤디 루빈
블룸버그
지난 3월 말 미 실리콘밸리에 있는 한 사무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반겼다. 사무실 한쪽 벽면엔 오락실에서 보던 게임기들이 나란히 서 있었고, 누구든지 사무실 안에서 탈 수 있는 스케이트보드도 마련돼 있었다. 직원 한 명이 작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세계 1위 스마트폰 운영체제 안드로이드(Android)의 개발자 앤디 루빈(Rubin·53)이 작년 창업한 벤처투자사 사무실이다. 회사 이름은 '전 세계 놀이터'라는 뜻의 '플레이그라운드.글로벌(Playground.Global·이하 플레이그라운드)'. 사무실의 절반은 평범한 사무 공간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공장에 가까웠다. 공사장에서 쓰는 헬멧과 보호 안경이 널려 있고 개인 돈으론 감당할 수 없는 수천만원짜리 장비와 도구, 재료가 한데 모여 있다. 플레이그라운드가 투자하는 작은 스타트업 20여 곳이 이곳에 입주해 자유롭게 개발하고 발명하고 실험한다. 창업자와 엔지니어들을 위한 공방(工房)이자 '놀이터'인 셈이다. 문 앞에서 손님을 맞이한 개는 루빈 최고경영자(CEO)의 반려견이다. 아침에 루빈 CEO와 함께 '출근'해 직원들과 놀다가 '퇴근'한다고 했다.

"모바일 혁명을 뛰어넘는 새로운 컴퓨팅 플랫폼 혁명이 일어날 겁니다. 언제 어떤 플랫폼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모바일 혁명보다 더 큰 파동을 일으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루빈 CEO는 2004년 직원 6명과 함께 '안드로이드'를 만들었다. 스마트폰도, 태블릿PC도 없던 때다. 당시 그는 한국 삼성전자를 찾아와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새로운 디바이스(기기)를 만들어 보자고 설득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같은 해 안드로이드는 구글에 인수됐다. 이후 안드로이드는 아이폰 운영체제(iOS)와 함께 스마트폰 혁명을 주도하며, 모바일 운영체제(OS) 시장에서 1위 자리에 올랐다. 이제 전 세계 스마트폰 10대 중 8대에 안드로이드가 깔려 있다. 시장조사 기관 IDC에 따르면 2015년 스마트폰 운영체제 시장에서 안드로이드 점유율은 82%, iOS는 12%이다.

모바일 뛰어넘는 AI 디바이스 시대로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안드로이드의 아버지는 이제 안드로이드 이후 시대를 꿈꾸고 있었다. 루빈 CEO는 iOS나 안드로이드와 같은 모바일 운영체제를 뛰어넘을 차세대 컴퓨팅 플랫폼이 나올 것으로 보고 다양한 플랫폼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10~15년마다 컴퓨팅 플랫폼의 전환기가 찾아온다"며 "모바일 시대 다음엔 AI(인공지능)가 들어간 디바이스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안드로이드가 처음 개발된 것은 2004년이다. 그의 셈법에 따르면 앞으로 2~3년 안에 모바일 대혁명을 뛰어넘는 '플랫폼 혁명'이 닥치는 것이다.

―머지않아 새로운 컴퓨팅 플랫폼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안드로이드처럼 '표준 기술'이 되는 플랫폼이 나타나는 겁니까.

"컴퓨팅 플랫폼은 10~15년 주기로 교체됩니다. MS DOS, 윈도와 맥, 인터넷, 그리고 모바일까지 10~15년씩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이제 차기 플랫폼이 무엇이 될지를 두고 기술 업체들이 경쟁하고 있습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주요 모바일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수 있던 이유는 '표준화'입니다. 표준화는 두 가지 방법으로 일어납니다. 첫째, 인터넷처럼 어떤 위원회가 특정 기술을 표준화하자고 시도하는 때가 있습니다. 수많은 기술 업체가 동의해야 하기 때문에 의견 일치를 보기가 어렵지요. 둘째, 안드로이드처럼 특정 기술이 실제로 가장 많이 쓰이기 시작하면서 '사실상의 표준' '시장에서의 표준'이 되는 일이 있습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모두에게 개방해서 누구든지 충돌 없이 도입할 수 있게 했죠. 덕분에 수많은 제조사가 손쉽게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계산해보면 2018~ 2020년에 새로운 플랫폼이 나올 것으로 추측되는데요.

"정확히 언제, 어떤 식의 플랫폼이 등장할지 예측해서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예상하는 것보다 더 걸릴 수도 있겠죠. 다만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 MS DOS, 윈도, 인터넷, 모바일 순서대로 매번 일어난 혁신이 그 전 혁신보다 더 규모가 컸다는 겁니다. 저는 우리가 앞으로 목격할 플랫폼 혁명 역시 지금까지 우리가 겪었던 그 어떤 것보다 더 클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모바일 시대 다음에는 어떤 시대가 오리라 예측하십니까.

"매우 성숙한 딥러닝 능력을 갖춘 AI에 디바이스가 연결돼 우리 삶에 들어올 것으로 봅니다. 오늘날의 AI는 '수조(水槽)에 들어있는 뇌'에 불과합니다. 이 뇌에는 손과 발이 없고, 눈도 없고, 귀도 없습니다. 그냥 수조 안을 둥둥 떠다니면서 인터넷이 주는 정보를 받아들이고 다시 인터넷에 정보를 돌려보내는 일을 하는 데 그칩니다. AI가 진정으로 구현되려면 인터넷 세상에만 갇혀있는 게 아니라 오프라인 세상의 정보를 스스로 감지하고 그 정보를 기반으로 결정을 내리고 행동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프라인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을 정보로 읽어들이는 단계인 '감지(sense)', 이 정보를 계산해서 다음 행위를 구상하는 '계획(plan)', 그리고 행위를 실제로 수행하는 '행동(act)'까지 이어지는 것이 미래의 디바이스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이 중에 '계획' 부분이 AI가 하는 역할이고, 페이스북·구글·아마존 같은 기업들이 집중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이와 달리 플레이그라운드는 오프라인 세상의 정보를 감지하고 행동하는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수조에 들어있는 뇌에 손과 발을 달아주고, 눈과 귀를 달아주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미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에 있는 플레이그라운드 사무실. 절반은 평범한 사무 공간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값비싼 장비들로 가득찬 ‘공장’으로 이뤄져있다. /팰로앨토(미 캘리포니아주)=박정현 조선비즈 기자
―앞으로 AI를 구현하기 위한 새로운 플랫폼이 탄생한다는 얘기입니까.

"차세대 컴퓨팅 플랫폼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클라우드(기기 대신 인터넷에 데이터를 두고 필요할 때 접속해서 쓰는 서비스) 기반 AI가 앞으로 우리가 쓰는 기기들의 두뇌 역할을 할 것이고, 이 두뇌를 물리적 세상과 연결하는 접점에서 혁신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미국 IT 전문 잡지 와이어드는 루빈 CEO를 ‘내일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항상 혁신의 최전선에 있었다. 1992년 애플에서 일할 때 ‘손으로 들고 다니는 통신기기’에 들어가는 운영체제 개발을 맡았다. 1999년 창업한 데인저(Danger)에서 ‘사이드킥(Sidekick)’이란 휴대전화를 출시했다. 인터넷 브라우저, 이메일, 메신저 기능, 애플리케이션 장터 기능이 더해진 ‘초기 스마트폰’이었다. 당시엔 꽤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사이드킥은 출시 후 얼마 안 돼 마이크로소프트(MS)에 인수됐다.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엔지니어가 상상하는 미래 기기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미래의 기기는 물리적 세상의 정보를 스스로 정확하게 읽어들이고 또 AI가 시킨 대로 행동하는 기술을 갖춘 기기”라고 얘기한다. 그는 미래에 탄생할 이런 수많은 기기가 플레이그라운드가 만든 하드웨어 기술들을 채택해 결국 플랫폼으로 자리 잡도록 ‘베팅’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비밀리에 자율주행차·로봇 프로젝트

―플레이그라운드는 하드웨어 스타트업 투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OS 시스템의 변혁을 예측하시는 분이 하드웨어 기술에 집중 투자하는 게 다소 의외입니다.

“제가 데인저를 창업했을 때 휴대전화를 하나 만드는데 2억4000만달러가 들었습니다. 액정, 중앙처리장치 같은 부품을 직접 만들어야 했고 운영체제, 애플리케이션(앱)도 우리가 개발해야 했습니다.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건 정말 골치 아픈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어떤가요. 하드웨어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을 다 사서 쓸 수 있게 됐죠. 스크린, 센서가 필요하면 사서 쓰면 됩니다. 운영체제가 필요하면 안드로이드 같은 개방된 소프트웨어를 가져다가 쓰면 되고요. 과거에 비해서 하드웨어 자체를 만드는 것이 훨씬 쉬워진 셈입니다.

플레이그라운드는 입주하는 스타트업들에 기본적인 모듈(여러 부품을 미리 조립해 특정 기능을 수행하게 만들어 놓은 덩어리)을 제공합니다. 플레이그라운드가 만든 중앙처리장치 모듈은 ‘뇌’, 카메라 모듈은 ‘눈’, 마이크 모듈은 ‘귀’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창업자들이 기본적인 부품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정말 좋은 제품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게 해주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지난 20년간 하드웨어 기기를 구현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들을 만들어왔습니다. 안드로이드, 데인저 때도 그렇고 제가 만들었던 기술의 공통점은 배터리가 든 기기를 (클라우드에) 연결해 쓸 수 있는 바탕이 됐다는 점입니다. 그런 바탕(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저의 DNA 안에 존재한달까요.”

―플레이그라운드는 평범한 벤처 투자사보다 스타트업을 도와주는 ‘액셀러레이터’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단순히 창업자들에게 투자 자금만 대주는 게 아니라 우리 쪽 엔지니어들과 디자이너들이 함께 앉아 제품 디자인을 고민하고 연구한다는 점이 다른 곳과 다소 다릅니다. 플레이그라운드에는 기계공학, 전기공학, 컴퓨터과학, 소프트웨어 등을 전공한 뛰어난 엔지니어들, 디자이너들이 50여명 가까이 있습니다.”

루빈 CEO가 창업한 안드로이드는 2005년 구글에 팔렸다. 스마트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구글 내 루빈의 입지도 탄탄해졌다. 그는 구글에서 모바일 사업을 총괄하는 수석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구글 내부에선 안드로이드를 인수한 것을 두고 ‘구글 역사상 가장 잘한 거래’로 평가했다. 안드로이드가 승승장구하던 2013년 3월 루빈은 모바일 사업을 선다 피차이(현 구글 CEO) 당시 크롬(구글의 인터넷 브라우저) 사업부 수석부사장에게 넘겨주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루빈은 로봇 등 미래 기술을 연구하는 신사업부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그는 몇개월 후 구글을 떠났고 2015년 2월 플레이그라운드를 창업했다. 현재 플레이그라운드 소속 20여개의 스타트업들은 자율 주행차, 센서, 로봇 등 광범위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진행 중이다.
스마트폰 능가하는 거대한 기기 혁명 온다
Getty Images 이매진스
―구글에서 떠나실 때 소문이 많았습니다. 안드로이드를 스마트폰 운영체제 시장의 1위 자리에 올려놓은 뒤 갑자기 안드로이드를 내려놓았으니까요.

“안드로이드 사업부를 10년 가까이 이끌다가 물러났을 때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학위를 딴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구글의 로보틱스 부문을 맡게 됐는데, 이때는 대학 졸업 후에 부모님 집에 들어가 얹혀살게 된 기분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구글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부모 역할을 한 셈이죠. 밥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제가 다음 단계에 무엇을 할지 궁리하는 동안 저를 챙겨줬으니까요.

안드로이드는 현재 전 세계 16억대 기기에 들어가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안드로이드 같은 걸 한번 이루고 나니 중년의 위기 비슷한 걸 느꼈습니다. 제가 (안드로이드 이후) 그 무슨 일을 하든지 안드로이드보다 더 성공적인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1개의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실험하고 만들 수 있는 회사를 창업하게 된 겁니다. 구글에서 1개 업무만 맡기보단, 제가 하고 싶은 수십여개의 프로젝트를 실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현재 구글은 플레이그라운드에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구글이 저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는 셈입니다.”

‘라떼 아트’ 로봇 만들어 커피 즐긴 괴짜

―플레이그라운드라는 회사 이름이 특이합니다.

“친구들에게 ‘놀이터(플레이그라운드)’ 같은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한 적이 있어요. 그러다가 나중에 정말 회사 이름을 ‘플레이그라운드’로 짓자고 의견이 모였습니다. 처음 회사를 시작했을 때는 컴퓨터 몇 대를 주문하려고 전화를 걸었는데 영업사원이 ‘놀이터로 가져 오라고요?’라고 되묻는 해프닝도 생겼습니다. 우편함에 ‘어린이용 미끄럼틀’ 광고 전단지가 들어오기도 하는데, 조만간 사무 공간을 확장하면서 진짜 미끄럼틀을 한 대 들여놓을 생각입니다.”

루빈 CEO는 로봇 마니아다. 그의 첫 번째 회사인 데인저와 두 번째 회사인 안드로이드 모두 영화나 소설 속 로봇의 이름이다. 그는 특이한 기기가 있으면 직접 써보기도 하고 최첨단 기술을 적용해 엉뚱한 로봇들을 만들기도 한다. 인터뷰 날에는 회사 주방에 데려가 “팬케이크를 만들어 먹어보라”며 얼마 전 구입한 ‘팬케이크 찍는 기계’를 보여줬다. 루빈 CEO는 “사업 목적이든 아니든 일단 여러 가지 발명품을 다양하게 실험하고 개발하고 또 발명해본다”고 했다.

―구글에서 일할 때 문자를 보내면 커피를 만들어주는 로봇을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커피 만드는 로봇뿐만 아니라 커피 위에 ‘라떼 아트’를 하는 로봇도 만들었죠. 커피를 타서 위에 우유 거품을 만들어서 가져오면 안드로이드 OS의 로고를 그려주는 로봇이었어요.”

―애플에서 일할 때는 존 스컬리 당시 CEO를 가장하고 직원들에게 장난 메시지를 보냈다던데요.

“인터넷도, 이메일도 없던 시절이라 그땐 CEO가 전화로 전체 직원들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기는 방식으로 소통했거든요. 제가 한 2년쯤 근무하고 나니 스컬리가 보낸 음성 메시지가 30개쯤 쌓인 겁니다. 그래서 음성 메시지를 컴퓨터에 옮겨서 한 단어씩 자른 다음에 제가 원하는 대로 단어를 끼워 맞춰 편집했죠. ‘전 직원에게 애플 주식 100만주를 주겠다’고요.”

괴짜 발명왕은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Android Operating System)
구글이 만든 모바일용 운영체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구동을 위한 바탕이 된다. 애플이 아이폰 등 자사 제품에만 폐쇄적으로 집어넣고 있는 운영체제 ‘iOS’와 달리 안드로이드 OS는 외부에 공개돼 있다. 구글은 스마트폰을 직접 제조하지 않는 대신 다른 제조사들에 안드로이드 OS를 개방하는 방식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다.

☞운영체제(OS)
컴퓨터·스마트폰·태블릿PC 등 디지털 기기를 작동시켜 각종 응용 프로그램이 효율적으로 실행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다.

☞컴퓨팅 플랫폼(Computing Platform)
소프트웨어를 구동시킬 수 있는 하드웨어 설계 방식이나 운영체제를 통칭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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