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뿌려라, 중앙銀이 찍어내서… 수요부족 해결, 다른 길은 없다

    • 어데어 터너(전 영국 금융감독청장)

입력 2016.03.12 03:05

마이너스 금리·양적완화론 안돼… 정부의 국채 발행 방식도 안돼…
정부가 대규모 재정적자 감내하고 돈 푼다면 명목 수요 확실히 늘 것

어데어 터너(전 영국 금융감독청장)
어데어 터너(전 영국 금융감독청장)
글로벌 경제는 수요 부족이라는 만성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일본 경제는 거의 성장하지 못하고 있고, 낮은 물가상승률로 고통받고 있다. 유로존은 디플레이션(경기 침체에 따른 물가 하락)에 시름하고 있고, 영국 역시 낮은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 둔화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경제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회복세가 더디다. 미국의 실업률은 지난 2007년 수준보다 낮지만, 물가상승률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목표치인 2%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정책이 수요를 증진할 수 있는지 논쟁을 벌이는 것은 적절하지도 명확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혼란만 가중시킨다. 중국 상하이에서 주요 20개국(G20) 외무장관들은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디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해 구조 개혁, 통화정책, 재정정책 등 모든 정책을 다 동원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주요 의사 결정자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보다는 '무엇을 할 수 없을까'를 지적하고 싶어 한다.

중앙은행들은 역량의 한계를 자주 강조한다. 중앙은행들은 교역 자유화와 노동 및 상품 시장의 개혁, 연금 수령 연령 상향 조정 같은 중장기 재정 목표 등을 포괄하는 정부의 구조 개혁에 진전이 없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이 가운데 일부 조치가 장기적으로 잠재 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 하더라도, 앞으로 1~3년 동안 경제성장을 촉진하거나 물가상승률을 상승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구조 개혁 가운데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는 조치들은 시행 초기에는 소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구조 개혁이라고 모호하게 얘기하는 것은 금지해야 한다. 어떤 개혁인지 구체적으로 말해야 하고, 구조 개혁에 따른 혜택을 언제 받을 수 있는지 명확히 해야 한다.

만약 문제의 핵심이 글로벌 수요 부진이라면,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강조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일본은행(BOJ)은 최근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앞으로 마이너스 금리 폭을 확대하거나 더 큰 규모의 양적 완화를 실시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은 실질 소비와 투자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마이너스 금리는 기업과 가계의 신용 수요를 촉진하기 위한 정책이다. 그러나 은행들이 예금자에게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길 꺼린다면, 오히려 높은 대출 금리라는 왜곡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은행들이 중앙은행에 지급준비금을 예치함으로써 보는 손실을 만회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크 카니 영란은행(BOE) 총재가 지적했듯이 마이너스 금리는 통화가치 하락을 통해서 한 나라의 수요를 다른 나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글로벌 수요를 촉진하기 위한 방식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마이너스 금리를 통해 글로벌 수요를 촉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더 많은 양적 완화를 통해 경제주체들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도 마찬가지로 불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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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것들은 명목 수요(물가와 상관 없이 존재하는 화폐수요)가 정부의 세금 감면이나 재정정책을 통해 진작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밀턴 프리드먼이 말했던 것처럼, 새로운 수요는 소득 증가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그러나 각국 정부들은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일본 재무장관은 2017년 4월 소비세율을 높여 재정적자를 줄여야만 한다고 믿고 있다. 유로존의 규율에 따르면 많은 유로존 회원국은 재정적자를 줄여야 한다. 영국의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도 영국의 재정적자를 줄이기로 약속했다.

재정적으로 여력이 있는 나라들이 재정 지출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지만, 독일 같은 나라들이 실제로 재정 지출에 나설 것이라는 확실한 근거는 없다. 그리고 재정 여력이 있는 나라들이 모두 재정을 투입한다고 하더라도 글로벌 수요가 충분히 늘어날지 확신도 없다.

수요 부족 및 잠재적 디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한 총알이 고갈되고 있다는 두려움이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이 수요 부족이라면, 언제나 효과가 있는 해결책이 하나 있다. 만약 정부가 대규모 재정적자를 감내하고, 재정 지출에 필요한 돈을 국채 발행처럼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이 아니라 중앙은행의 돈을 통해 조달한다면, 명목 수요는 확실히 늘어날 것이다. 명목 수요가 늘어나면, 물가상승률도 올라가고, 실질 생산량도 증가할 것이다.

따라서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는 것과 같은 조치들은 더 자주 논의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논란이 많다. 돈을 찍어내는 방식으로 재정을 지출하기 시작하면 중앙은행이 영원히 금리를 낮게 유지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자주 나온다. 이런 방식은 과도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고, 이 경우 통화정책을 통한 자금 조달은 수요를 촉발할 수 없게 된다는 주장도 있다. 개인들이 미래의 인플레이션을 두려워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소규모 재정 적자는 수요에 아주 미미한 영향만 미칠 것이다. 대규모 재정 적자는 치명적인 고(高)인플레이션을 낳을 것이다. 최적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접점은 분명히 있다. 논쟁을 하다 보면 상식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나온다.

혼란의 와중에 진짜 중요한 정치적 이슈가 간과되고 있다. 바로 재정 지출에 필요한 재원 조달 관련 규칙을 만드는 일이다. 재정 지출은 엄격하게 이뤄져야 하며, 과도한 재정 지출 유혹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정부가 구조 개혁이나 순수한 통화정책, 또 재정 지출에 필요한 재원은 빚으로 조달되어야 한다고 믿는 상태에서 재정 정책에 의존해서는, 전 세계적인 수요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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