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은 요즘 부동산 매물마다 '팔림' 스티커… 5년 새 4배 이상 값 뛴 곳도

입력 2016.03.05 03:05

세계 최초로 마이너스 금리 실시한 덴마크 가보니
고용·임금·소비 증가… 현재까진 성공적, 기업 대출촉진·물가상승 효과는 없어
장기적으론 '경제 뇌관' 우려 분위기

지난달 29일 덴마크 코펜하겐의 대표적인 부촌(富村) 외스터브로에 있는 붉은 지붕의 주택. 크기 356㎡, 방 8개인 이곳의 현재 가격은 2500만크로네(약 45억3000만원)이다. 덴마크 요아힘 왕자와 이혼한 알렉산드라 전(前) 왕자빈이 2011년 매입할 당시 가격은 600만크로네(약 10억8000만원)였다. 불과 5년 만에 4배 이상으로 뛴 것이다.

코펜하겐의 부동산 가격은 최근 3년 동안 평균 65~70% 급등했다. 인구는 변화가 없었지만, 작년 여름부터 수요가 재고를 크게 웃도는 이례적인 '주택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코펜하겐 중심가에 있는 부동산 유리창에는 매물 쪽지마다 '팔림(SOLGT)'이라는 붉은색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매물이 절반 이상 팔린 곳도 많았다. 외스터브로 사거리에는 고급 빌라 신축이나 빌딩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었다. 부동산 중개업자 클라우스 욀가르드씨는 "덴마크 중앙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후부터는 매물이 생기기만 하면 팔려나간다"며 "금융 위기 이전의 부동산 버블을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의 전경.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의 전경. / 블룸버그, 이혜운 기자
대출자에게 이자 주는 덴마크 은행, 부동산 가격 급등

전 세계에서 최초로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덴마크가 부동산 버블로 몸살을 앓고 있다. 덴마크는 2012년 7월 자국 통화인 크로네 가치의 급격한 상승을 막기 위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다. 중앙은행에 맡긴 시중은행의 돈에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는 것이다. 현재 예금금리는 -0.65%다.

일부 은행 역시 대출 상품에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면서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렸다. 덴마크 대형 모기지(주택대출) 전문회사인 노르디아 크레딧은 변동성주택대출 일부에 -0.3%의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대출을 해주고 0.3%의 이자도 준다는 얘기다. 은행도 3년 만기 대출 기준으로 0.01% 정도의 금리를 대출 고객에게 주고 있었다(대출금리 -0.01%).

은행이 고객에게 마이너스 금리 대출에 따른 수수료를 매기는 경우는 거의 없고, 기업에만 일부 수수료를 받고 있었다. 덴마크은행협회 관계자는 "마이너스 금리의 비용 부담은 은행이 모두 지고 있는 셈"이라며 "전체 은행 업계가 중앙은행에 직접 지불하는 비용만 해도 연간 12억크로네(약 2174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부촌 지역인 외스터브로의 주택가. 이 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최근 5년 사이에 배 이상으로 뛰었다.
대표적인 부촌 지역인 외스터브로의 주택가. 이 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최근 5년 사이에 배 이상으로 뛰었다. / 블룸버그, 이혜운 기자
그럼에도 현재까지 덴마크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대체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마이너스 금리가 도입된 후 크로네화 강세가 진정됐고, 2012~2013년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던 덴마크 경제는 2014년 이후 1% 초반 성장을 회복했다. 2015년 실질경제성장률은 1.2%다.

국제 신용평가회사 피치도 지난달 12일 덴마크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등급인 AAA(안정적)로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피치는 "경제 회복세가 다소 약해지기는 했지만, 민간 고용 증가, 명목임금 상승, 저(低)인플레이션, 저금리 등에 힘입어 민간 소비가 증가하면서 경제 성장을 이끌고 있다"고 평가했다. 피치는 2016~2017년에도 덴마크 경제가 민간 소비와 투자에 힘입어 1.9%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마이너스 금리와 이에 따른 부동산 버블은 덴마크 경제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뇌관'으로 평가된다. 피치 역시 덴마크 모기지 채권의 국제 투자자들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증가해 시장의 유동성 위험이나 금융 시스템의 취약도가 증가하는 경우, 신용등급이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덴마크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작년 11월 부동산 대출 규제를 도입했다. 매입자가 주택 가격의 5% 이상을 계약금으로 내야 하는 내용의 규제다. 이로 인해 치솟던 주택 가격은 조금 잡힌 듯하지만, 내려올 생각은 않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로 인한 은행들의 부담도 높아지고 있다. 한 덴마크 시중은행 관계자는 "마이너스 금리는 단기적으로 통화 강세를 막는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폐해가 큰 위험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마이너스 금리, 다른 나라에선 경기 부양 효과 적어

현재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택한 나라는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개국), 덴마크, 스위스, 스웨덴, 일본 등 5개 경제권이다. 경제 규모로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3.1%에 달한다. 돈을 맡기면서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이자를 내야 하는 상황이 이제는 흔해졌다는 뜻이다.

전 세계가 마이너스 금리 시대에 접어드는 이유는 세계적으로 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이 낮아지는 등 경기가 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가 조사한 97개국 중 지난해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나라는 그리스를 포함해 총 19개국이다. 2008년 이후 연간으로는 역대 최대다.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에도 14개국에 불과했다.

국제 유가가 2003년 이후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디플레이션(경기 침체에 따른 물가 하락) 우려도 더욱 커지고 있다. 글로벌 유가는 현재 배럴당 30달러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는 2008년 기록한 사상 최고치(147.27달러)에서 80%가량 하락한 것이다.

다만 덴마크를 제외하면 마이너스 금리가 중앙은행의 기대만큼 경기 부양에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마이너스 금리 정책의 목표는 장기금리를 낮춰 경제 주체들이 돈을 빌리기 쉽게 하는 것이다. 지난해 9월 유로존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 중 3분의 2는 연 1% 이하 금리로 발행됐다. 그만큼 돈 빌리기가 수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증가하는 것은 주로 기업 대출이 아니라 부동산 담보대출 쪽이다. 덴마크·스웨덴 등에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것도 이 때문이다. 덴마크 노디아은행의 헬지 피터슨 이코노미스트는 "우리는 마이너스 금리가 통화 가치 하락엔 효과가 있지만 대출 촉진에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배웠다"고 블룸버그통신에 말했다.

마이너스 금리 정책으로 인한 물가 상승 효과도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웨덴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4년 -0.2%에서 지난해 0.4%로 높아졌지만, 스위스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4년 0.01%에서 지난해 -1.1%로 오히려 떨어졌다. 스위스의 예치 금리는 -0.75%로 전 세계에서 가장 낮다. 유로존의 근원 물가도 1%를 밑돈다. 마틴 펠드스타인 미 하버드대 교수는 "유럽의 실업률은 아직 12% 수준으로 경기 침체가 시작되기 전과 비교해 5%포인트가량 높다"며 미국과 달리 유럽에선 실질 수요가 자극되지 않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말했다.

대신 마이너스 금리로 인한 역풍은 강하다. 대표적인 것이 대형 은행들의 위기다. 예금이 들어오기 힘들어진 것이다. 올 들어 유럽 은행 주가는 유로존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2011~2012년과 비슷한 양상이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유럽 금융회사들이 새로운 금융 태풍의 눈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이너스 금리, 어디까지 확산하나… 현금 퇴출도 논의

마이너스 금리는 더욱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티그룹은 최근 "중국도 내년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작년 말에 기준금리를 올렸던 미국마저 마이너스 금리를 검토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벤 버냉키 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 의장은 지난해 12월 마켓워치 인터뷰에서 "다음 경기 침체기에는 미국도 마이너스 금리를 검토해야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은 지난달 1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마이너스 금리는 생산적이지도 않고 투자도 꺾이게 할 것"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유럽 내에서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강화하기 위해 현금을 퇴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ECB는 최근 500유로(약 68만원)짜리 고액권 퇴출과 전자화폐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명목은 테러리스트 등 범죄자의 악용을 막자는 것이지만, 마이너스 금리 폭을 더 확대하기 위한 수순으로 해석하는 전문가가 많다.

스티브 체체티 전 국제결제은행(BIS) 통화경제국장은 "마이너스 금리가 심화하면 은행이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해줘서 신용을 창출하는 기능을 잃고 단순 대여금고 노릇만 하게 될 것이고, 은행을 통제하더라도 이런 기능을 하는 새로운 현금 보관 서비스 업체가 등장할 것"이라며 "이는 통화량 감소로 귀결돼 오히려 긴축을 유발할 것"이라고 미국 일간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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