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셰프는 기술자 아닌 예술가" 세계 최대 요리학교 佛 '르코르동 블루'

1578년 프랑스 국왕 앙리 3세는 왕족들이 포함된 '성령의 기사단'을 조직했다. 그들의 상징은 '파란 리본(Le Cordon Blue)'.
성령의 기사단은 당대 최고의 음식들로 성대한 연회를 갖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때부터 프랑스에서 파란 리본, 즉 '르코르동 블루'는 최고의 요리를 상징했다.
1895년 프랑스 언론인 마르트 디스텔은 여성들의 사회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그 이름을 딴 요리 학교를 개교했다. 현재 전 세계 20개국에 35개 분교를 가진 '르코르동 블루'의 시작이다.
미국 요리계의 전설인 줄리아 차일드, 영국 최고의 제빵사 메리 베리, 세계적인 스타 셰프인 낸시 실버튼과 제임스 피터슨…. 국적도 성별도 다양하지만 모두 르코르동 블루의 동문(同門)이다. 1954년 개봉한 영화 '사브리나'에서 오드리 헵번이 짝사랑에 실패한 후 파리로 건너가 검은색 앞치마를 입고 요리를 배운 곳도, 2009년 개봉한 '줄리 앤 줄리아'에서 메릴 스트립이 흰색 조리복을 입고 프랑스 요리 레시피를 개발한 곳도 이곳이다.
121년의 역사를 가진 르코르동 블루에서는 매년 70개국의 국적을 가진 2만명의 학생들이 파란 리본을 달고 졸업한다. 기업 관점으로 보자면 불황에도 불구하고 매년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현지 진출이 어렵기로 유명한 멕시코·페루 등 남미뿐 아니라 음식 문화가 발달한 중국 상하이(上海)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파리의 작은 요리 학교를 세계 최대의 체인 교육기관으로 키운 것은 1984년 르코르동 블루를 인수한 프랑스 쿠앵트로그룹의 앙드레 쿠앵트로(Cointreau·68·사진) 르코르동 블루 회장이다. 3대 코냑 브랜드인 '레미 마르탱',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럼주(酒) 브랜드인 '마운트 게이' 등을 보유한 쿠앵트로 가문의 직계손(孫)이다.
쿠앵트로 회장은 프랑스 상경계 그랑제콜(HEC)과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을 졸업한 후 유니레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등을 거쳐 1977년 쿠앵트로그룹에 입사했다. 1984년 쿠앵트로그룹이 르코르동 블루를 인수한 후부터 32년간 회장을 맡고 있다. 프랑스 음식 문화를 널리 알리고 세계 음식 문화 수준을 올린 공을 인정받아 국제요리전문가협회(IACP)로부터 공로상을, 프랑스 정부로부터는 최고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았다.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캠퍼스 내에 있는 분원을 방문한 쿠앵트로 회장을 만나 그의 경영 비법을 들었다.


"상하이 분교는 중국 정부의 요청으로 이뤄졌습니다. 정부 자본과의 '합작회사(joint venture)' 형태입니다. 요리학교뿐 아니라 중국 정부가 외국 자본과 교육기관을 만든다는 자체가 처음입니다. 저희도 제안을 받고 놀랐습니다.
중국 정부가 우리 학교에 개교를 요청한 것은 프랑스 요리를 가르치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 나라가 자국(自國) 요리를 체계화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지역별로 우수한 요리들이 많지만 체계적으로 레시피화되고 기록되진 못한 상황입니다. 프랑스는 400년 전부터 이런 작업을 해왔고, 르코르동 블루가 문을 연 이후에는 그 작업을 함께해 왔기 때문에 노하우가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우리에게 '중식(中食)의 모든 부문에서 교수법을 다양화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상하이 분교는 작년 4월 10명의 교수진으로 시작했는데 학생들 반응이 좋아 올해 말 두 배로 늘릴 계획입니다."
―다른 분교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나요?
"물론입니다. 기업이 물건을 팔 때만 현지화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문화를 팔 때도 철저한 현지화가 중요합니다. 프랑스의 카르푸와 미국의 월마트가 한국에서 실패한 이유는 현지화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 분교는 2005년 전통 김치 조리법을 레시피로 정리하고 김치를 이용한 프랑스 퓨전 요리책을 냈습니다. 이 책에는 '김치소스 대구 부야베스(해산물 스튜 일종)', '김치 갈레트(팬케이크 일종)' 등이 담겨 있습니다. 태국·페루·스페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스 요리와 스페인 파에야의 만남, 태국 쏨땀과의 만남을 추구합니다. 각국 입장에서는 프랑스 요리 문화도 배우면서 자국 음식 문화도 발전시키는 '상생(相生·win win)'인 것입니다. 이런 교육 방식은 졸업생들이 다양한 요식사업을 시작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얼마 전 페루 리마에서 졸업생 초청 행사가 있었는데 이들은 프랑스 요리, 페루 요리, 퓨전 요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1인자가 돼 있었습니다."
―잘못된 현지화는 상대방에게 이질감을 들게 할 수 있지 않나요?
"현지화 전략을 구사하기 전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입니다. 저는 2004년부터 한국 농림축산식품부의 김치 홍보 대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치 요리법도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와 함께 연구한 것입니다. 김치를 세계적인 음식으로 만들고 싶다는 유통공사의 요청이었습니다. 김치 퓨전 요리책은 2006년 세계 미식 책 박람회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각국 음식을 연구할 때는 지역별 최고의 셰프와 협력해 진행합니다. 상급 요리 코스에서는 현지 식자재를 이용한 요리법 개발이 필수 코스입니다. 지역별 특별 강연 프로그램도 만들고 투자를 통해 현지 음식 연구소도 만듭니다. 한국 분교에도 한국음식연구소가 있습니다. 현지 문화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열정과 그 마음으로 접근하는 현지화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교육이야말로 최고의 복지라고 생각합니다. 경제 위기일수록 개인은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 합니다. 저희는 학생들에게 요리 기술뿐 아니라 자신만의 표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습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교육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배운 것을 요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직업에 적용하기도 하고, 그런 직업 분야 자체를 만들어 낼 수도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희는 소득이 낮은 남미 등의 국가에서는 장학 혜택을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더 몰려 지난해에만 15%의 성장을 이뤘습니다. 불황이 오히려 기회일 수 있습니다."
"음식 맛이 형편 없는 나라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 핀란드를 제외하면 영국이 유럽에서 가장 음식 맛이 없다."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이 2012년 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앞두고 열린 정상회담 자리에서 한 이 농담은 외교사상 가장 큰 말실수의 하나인 동시에 프랑스 국민의 음식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프랑스 요리는 중국·터키 요리와 함께 세계 3대 요리로 꼽힌다. 셋 중 음식 단가가 가장 높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각국 음식 중 가장 브랜드 마케팅이 잘됐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 요리가 옛날부터 인정받은 건 아니다. 프랑스 음식 문화의 시작인 갈리아족의 음식 문화는 투박했다. 이들은 수렵으로 식생활을 해결했기에 직화구이를 선호했다. 뿌리 자체는 영국 요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프랑스 요리가 대접받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다른 음식 문화와의 결합, 그리고 체계적인 기록입니다. 독일이나 스위스·벨기에 등에도 프랑스와 국경을 맞닿은 지역에 가면 유사한 요리가 많습니다. 유럽은 기본적으로 국경선이 자주 바뀌었기 때문에 음식 문화가 섞여 있습니다. 프랑스 요리가 발달한 것도 16세기 중반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앙리 2세와 결혼할 때 이탈리아의 고급 식문화를 들여오면서 시작됐습니다. 18세기에는 중국 요리의 영향을 받았고, 19세기에는 러시아 요리의 영향을 받으며 코스 요리가 정립됐습니다.
사람들이 떠올리는 프랑스 요리의 형태는 1800년대 초반 프랑스의 궁중 요리사 안톤 카렘이 프랑스 요리를 레시피로 만들어 '요리 안내'라는 제목으로 기록한 데서 비롯됩니다. 이때부터 프랑스는 궁중 요리부터 서민 요리까지 모든 요리를 정리하고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술은 더욱 발전하고, 문화도 풍요로워졌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셰프를 기술자가 아닌 예술가로 대접합니다. 프랑스에서 밥을 먹는 행위는 단순히 허기를 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질을 가늠하는 행위입니다. 물론 지리적인 여건상 유럽 어느 나라보다 풍부한 식자재를 구할 수 있다는 것도 요리 문화를 만드는 데 영향을 줬습니다."
―쿠앵트로 가문에서 내려오는 사업 원칙은 무엇입니까.
"음식을 파는 것이 아니라 '요리 예술'과 '생활 예술'을 전파한다는 것입니다. 요리로 전 세계인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이 저희의 사업 원칙입니다. 저는 12세가 될 때까지 프랑스 코냑 지방에 살았습니다. 지역 분위기, 식자재, 문화 등이 제 몸속에 박혀 있습니다. 저희 가문 브랜드 중에는 역사가 깊은 것이 많습니다. 음식 사업을 당장의 수익성으로 평가하지 않고 문화로 보아 투자를 유지했습니다. 르코르동 블루를 인수한 것도 이런 원칙에서 나온 것입니다. 요식업은 빈국(貧國)이 가장 선진화된 수단으로 부(富)를 창출하는 수단입니다. 미슐랭 별 3개짜리 식당은 그 음식을 먹기 위해 그 지방을 방문하는 관광객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습니다. 그 나라에 훌륭한 식당이 많다면 관광 자원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사업을 확대한 것은 외식 사업을 하는 동문들과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지역 사회의 문화 활동에 참여해 고유의 외식 문화가 성장하고 새로운 고용 창출이 이뤄지도록 공헌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지에 식당을 만들 때는 해당 국가의 현지 업체와 반드시 파트너십을 맺습니다. 여기서 얻은 수익금은 다양한 학술 교류와 졸업생들을 위한 컨설팅 등에 사용됩니다. 새로운 제품과 수익 모델을 개발하고 현지 업체가 성장할 발판을 마련하는 형태로만 사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르코르동 블루와 같은 요리 학교들이 많이 생깁니다만, 어느 점에서 차별화를 하십니까.
"한마디로 '학생의 성공'입니다. 교수진, 설비, 실습 기회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방에서 지켜야 할 규율부터 요식업계에서 알아야 할 세부 규칙, 재료를 다듬는 법부터 음식 문화의 역사까지 모든 것을 가르칩니다.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교수진입니다. 세계 최고의 요리사를 대상으로 시험을 거쳐 교수진을 선발한 후 독점 계약을 통해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교수진 합격 비율이 20%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모든 분교가 동일한 커리큘럼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나라를 방문하며 수업을 들을 수도 있게 했습니다.
특히 지역 커뮤니티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 버킹엄 대관식 행사는 런던 분교의 교수와 학생들이 진행했고, 호주 시드니올림픽 행사는 호주 분교에서 진행하는 식입니다."
―졸업생 중 상당수가 요식업을 할 것입니다. 장사가 잘되는 식당과 안 되는 식당, 그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시간의 흐름을 버틸 수 있느냐입니다. 프랑스에서는 미슐랭으로부터 별 3개를 받으려면 3세대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정도 시간은 흘러야 그 식당의 음식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훌륭한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적절한 가격을 받으면 식당이 망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하지만 그런 원칙을 무너뜨리지 않고 고수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자금을 대준 금융권으로부터 압박을 받을 수도 있고, 일부 손님 혹은 동업자들로부터도 압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원칙이 맞다는 확신이 든다면 소문이 나고 식당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버틸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사회에서 셰프란 기술자인 동시에 장인이고, 예술가이기도 하면서 사업가입니다. 르코르동 블루에서 재정, 통계, 인사 관리 등을 가르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 모든 분야에서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줘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최근 셰프들의 인기가 높습니다. '셰프의 전성시대'는 계속될 것으로 보십니까. 앞으로 외식 산업의 전망이 궁금합니다.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집니다. 먹는다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나라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계적인 흐름에서 '스타 셰프 열풍'은 계속될 것입니다. 앞으로 외식 산업은 장인정신으로 만드는 고급 식당(fine dining)과 가성비 높은 프랜차이즈 식당으로 양분될 것입니다. 양극화가 진행되면 그 사이에 끼인 식당들의 위기는 심화될 것입니다. 색깔이 있고 원칙이 있는 식당만이 살아남게 된다는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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