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의 완벽한 컬래버레이션

입력 2016.02.06 03:04 | 수정 2016.02.06 03:33

앤디 팔머 애스턴 마틴 CEO "1+1=10 시너지… 강력한 브랜드끼리 컬래버레이션하라"

영국 스포츠카 애스턴 마틴(Aston Martin)은 영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카'라는 별명으로 알려졌다.

'본드카' 이미지 덕분에 애스턴 마틴의 애호가들은 차를 몰면서 마치 영국 정부의 비밀 첩보 요원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한다. 스포츠카로 재빠르게 적을 따돌리고, 능수능란하게 총을 쏘며, 전투가 끝나면 여유롭게 칵테일을 마시며 이성을 유혹할 것 같다. '당다당당당' 하는 007 주제곡과 함께. 물론 이런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애스턴 마틴의 전략이었다.

앤디 팔머 애스턴 마틴 CEO. / 박상훈 기자
애스턴 마틴은 브랜드 컬래버레이션(협업)의 원조이자 가장 성공적인 사례를 일군 회사로 꼽힌다. 애스턴 마틴은 영화 007에 출연하면서, 그냥 쇳덩어리일 수 있는 자동차에 제임스 본드라는 인물의 이미지를 입혔고, 여전히 소비자들은 이 차를 본드카라 부르고 있다.

최근 많은 브랜드가 다른 브랜드 이미지를 더한 제품을 내놓으면서 소비 심리를 자극한다. 레고는 심슨, 스타워즈 등 영화·만화 캐릭터의 제품을 내놓고, 코카콜라는 병에 디즈니 캐릭터를 그린 한정판으로 수집가의 지갑을 열었다. 라이카는 명품 패션 브랜드 몽클레르와 함께 카메라를 디자인했다. 이종(異種) 브랜드 간 협업은 기존 브랜드가 가진 것 이상으로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앤디 팔머(Palmer·53) 애스턴 마틴 CEO는 "멋진 브랜드끼리 힘을 모으면 1 더하기 1이 2가 아니라, 10이 되는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며 "특히 브랜드끼리 비슷한 이미지로 같은 팬층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소비자에게 더 강력하게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23년간 닛산 그룹에서 근무한 팔머 CEO는 닛산 부사장과 인피니트 회장을 역임했다. 2012년 영국 자동차 전문 매체 오토익스프레스는 팔머 CEO를 자동차 산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국인 경영자로 선정했다.

팔머 CEO는 브랜드에 구체적인 이미지를 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품이 시각, 역사, 철학 등 다양한 이미지를 가질수록 소비자가 더 애정을 느낀다"며 "애스턴 마틴은 제임스 본드라는 구체적 시각·청각 이미지를 자동차에 연결하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애스턴 마틴 CEO
영화 007에 등장한 애스턴 마틴 '본드카'

구체적 이미지 입히면 브랜딩에 효과적

―애스턴 마틴은 오랫동안 영화 007과 컬래버레이션을 해오고 있습니다. 수십년간 관계가 유지되는 이유가 있나요?

"두 브랜드가 공통점이 많아 소비자층이 겹치고, 시너지를 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두 가지 브랜드가 합쳐지면 애정이 더 커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007의 제임스 본드를 떠올려보세요. 그는 영화에서 몸에 딱 달라붙는 비싼 정장을 입었지만 날쌥니다. 또 어떤 상황도 척척 풀어내는 능력이 있지만, 다소 건방진 태도를 지녔지요. 이런 점은 애스턴 마틴의 이미지와도 일치합니다. 아울러 아무나 영국의 비밀 요원 제임스 본드가 될 수 없듯이, 아무나 값비싼 자동차인 애스턴 마틴을 살 수 없습니다. 공통된 이미지가 많기 때문에, 두 브랜드가 함께했을 때 시너지가 났던 것이지요."

―최근 많은 협업 사례가 나옵니다만 모두가 성공적인 것은 아닙니다. 성공하는 협업의 전략은 뭔가요?

"컬래버레이션이 성공하려면 서로 이미지를 구체화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007과 애스턴 마틴은 함께했을 때 윈윈(win-win) 할 수 있는 경우였습니다. 007은 영화 캐릭터에 어울리는 차량으로 역동적 액션 장면을 찍을 수 있었고, 애스턴 마틴은 영화 속 멋쟁이 캐릭터 이미지를 얻었습니다. 브랜딩의 생명은 이미지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가지고 있느냐에 달렸습니다. 자동차 하나만 봤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자동차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성능, 디자인, 색상, 광고 속 모습 등 몇 가지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애스턴 마틴의 이미지는 상당히 구체적입니다. 그저 비싼 스포츠카를 타는 게 아니라, 007의 제임스 본드가 되는 것 같은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마치 내가 영국의 비밀 첩보 요원이자, 키가 크고 몸매가 좋아 값비싼 정장이 잘 어울리는 미남,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바람둥이 혹은 고독한 남자가 되는 것 같지요. 어떤 자동차도 이런 구체적 브랜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진 않습니다."

강력한 한 번의 인상이 광고보다 낫다

―애스턴 마틴을 '본드카'로 부릅니다만 실제로 007 영화 속에서는 벤틀리와 BMW 등 다른 명차도 꽤 나옵니다. 이런 각인 효과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요?

"애스턴 마틴은 007 영화에만 주력했습니다. 유명 영화마다 나오는 다른 자동차 브랜드와 달리, 애스턴 마틴은 007 영화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노출 빈도를 높이기 위해서 이곳저곳에 마케팅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 한 번이라도 얼마나 시선을 끄느냐가 중요하지요. 이 때문에 007 영화에 등장하는 자동차는 따로 심혈을 기울여 제작합니다. 지난해 개봉한 '007 스펙터'에 등장한 DB10은 오로지 007을 위해서 수십 개월에 걸쳐 연구하고 제작했습니다. 애스턴 마틴은 007 외에는 많은 매체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흔히 광고에서 볼 수 없기에 소비자들이 애스턴 마틴에 대해 더 궁금해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TV만 틀면 쉽게 광고를 볼 수 있는 브랜드가 아닙니다."

―고급 자동차 업체들은 각각 독특한 전략이 있더군요. 특히 생산량을 어느 수준 이상 늘리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애스턴 마틴도 고급차 이미지를 위해 생산량을 조절하는지요.

"가장 중요한 원칙은 희소성입니다. 애스턴 마틴은 102년 동안 총 7만5000대 이하만 생산했습니다. 지금도 1년에 4000대 이상은 만들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이 원칙을 고수할 생각입니다. 고가의 자동차를 고객이 가졌을 때 줄 수 있는 가장 큰 만족감은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장에서 마구 찍어내서 대중화된다면, 럭셔리의 의미가 퇴색할 것입니다."

―한정된 수량만을 판매한다면 마케팅 역시 일부 대상에 주력해야 할 텐데, 현재는 어디에 타깃을 두고 계십니까?

"과거와 비교해 소비자들의 연령이 50대 에서 40대로 낮아지고 있고, 여성 비중이 커지고 있습니다. 과거 여성은 스스로에 대한 보상에 인색했습니다. 주로 남편, 아이들을 위해 좋은 물건을 사고, 본인에게 돈을 쓰는 것은 아까워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여성이 남성 못지않은 경제력을 가진 시대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여성이 에르메스 가방이 아닌 스포츠카를 사는 시대가 멀지 않았다고 봅니다. 앞으로 이런 여성 소비자를 사로잡는 마케팅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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