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거시 건전성 강화 안 하면… 선진국 진입 10년을 또 기다려야 할지도

    • 김소영 서울대 교수

입력 2015.12.05 03:03

금융 위기 대비
美 금리 올리기 시작하면 수년간 지속적으로 인상
한국서 해외 자본 이탈 땐 금융시장 흔들릴 가능성

정부 정책 시험대
외환보유 수준 양호하고 경상수지 흑자 행진이지만 추가 보완책 도입할 필요
신흥국 딱지 떼고 선진국으로 불릴 기회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올 한 해 동안 지속적으로 논란이 됐던 미국의 금리 인상이 드디어 가시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미국의 고용지표 개선으로 이번 12월에 금리 인상이 시작될 가능성이 크고, 늦어도 미국 경기가 더욱 회복될 내년 초에는 금리 인상이 시작될 것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에 대해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은 걱정이 앞선다. 한국은 1990년대 초 국제 자본 이동을 자유화하기 시작한 이후, 국제 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에 따라 주기적으로 위기 상황을 경험했다. 1990년대 후반 극심한 경제 위기를 체험했고, 이후 약 10년 후인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 위기 때엔 급격하게 금융시장이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 마침 다시 2010년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시점이다. 그동안 축적되어 온 국제 자본이 미국의 금리 인상과 맞물려 다시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금융시장을 뒤흔들 것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예측된 만큼 경제 상황에 이미 반영됐고, 실제로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미국은 금리를 한 번 인상하기 시작하면 지속적으로 인상하는 경향이 있다. 가장 최근에는 2004년 5월 1%에서 2006년 6월 5.25%까지, 그 바로 전에는 1999년 5월 4.75%에서 2000년 5월 6.5%까지 점진적·지속적으로 금리가 인상됐다. 미국은 2% 정도의 인플레이션율과 2% 내외의 경제성장률을 기록 중인데, 이를 감안한다면 미국의 장기 균형 금리는 적어도 3%는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금리 인상은 금리를 단 한 번만 0.25% 인상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미국 금리의 장기 추세가 상승세로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장기적인 추세의 변화가 한국의 현 경제 상황에 전부 반영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 블룸버그
미국의 금리 인상과 그에 따른 국제 자본 유출, 달러 유동성 위기 상황에 대비한 한국의 준비 상황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전통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수치들을 보면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 채무는 33% 정도 수준에 불과하고, 외환보유액 대비 3개월치 수입액은 36% 수준, 통화량(M2) 대비 외환보유액은 거의 20% 수준으로 양호한 편이다. 경상수지는 지속적인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그동안의 거시 건전성 정책 도입, 글로벌 금융 안전망 확대 등으로 이전보다 그리고 다른 신흥국들보다 훨씬 더 준비가 잘 되어 있다. 하지만 위기 상황이 오지는 않더라도 국제 자본 유출에 따라 금융시장이 흔들릴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한국의 단기 채무는 감소했지만, 외국인의 한국에 대한 주식, 채권 등 이른바 '포트폴리오 투자'는 꾸준히 증가했다. 현재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는 주식은 단기 채무의 2.5배 이상이며 장기 채권도 단기 채무의 1.5배 이상이다. 상대적으로 덜 위험할 수 있지만 포트폴리오 투자 관련 자본 유출에 따라 금융시장이 흔들릴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미국 금리 인상으로 미국 금융 자산의 수익률이 증가하면 더 높은 수익률을 노리는 국제 자본이 빠져나갈 가능성도 상당히 있다. 이는 한국이 그동안 여러모로 노력해온 '위기 방지를 위한 달러 유동성의 충분한 준비'와는 별개일 수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한국의 환율 정책과 금리 정책 수행에 딜레마를 제공할 것이다. 환율을 스무딩(기술적인 미세조정)함으로써 환율 안정에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과도한 환율 방어는 외환 위기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자본 유출 완화를 위해 한국이 금리를 동반 상승시키는 경우, 이미 낮은 인플레이션율이 더욱 낮아지고 경기는 악화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외환 건전성 부담금(은행세), 선물환 포지션 규제,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등 거시 건전성 3종 세트에 더해 추가로 거시 건전성 정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이 유입될 때 미리 도입했었더라면 더욱 좋았겠지만 이미 늦었다고 포기할 필요도 없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지속적일 것이고 이는 향후 지속적으로 한국 경제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재정 정책, 거시 건전성 정책을 포함한 모든 거시 경제 정책들의 적절한 조합을 모색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지금은 우리가 기다려온 순간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준비한 방패들의 효과를 확인해 보고 싶기도 하고, 이번에 무사히 넘기면서 신흥국 딱지를 떼고 선진국으로 불리고 싶기도 하다. 이것이 추가 보완책을 도입해도 지나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아니면 또 10년을 기다려야 한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