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100% 社內 제작… 지속 가능한 성장은 브랜드 구축에 달렸다

입력 2015.10.31 03:04

피터 어스본 어린이책 출판사 '어스본'창업자 겸 CEO

어린이 책 출판사 '어스본'의 피터 어스본(Usborne·78·사진)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어린이 책 한 권을 들더니 한 입 베어 무는 시늉을 했다.

그러더니 얘기했다. "먹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는 "어린이 책은 마치 초콜릿이나 사탕으로 착각할 정도로 맛있어 보여야 한다"며 "어린아이가 손에서 뗄 수 없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스본 출판사는 특이한 아동 출판사다. 창립 이래 단 한 사람도 해고한 일이 없다. 책은 외부 작가를 쓰지 않고 내부 작가진이 만든다.

어스본은 동화책에 장난감 요소를 넣은 '액티비티 북'이란 영역의 최강자로 지난 5년간 연간 약 8%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닐슨 데이터 기준으로 올해 영국 아동 출판사 중 매출 1위를 기록했다. 전자책의 시대가 오면서 출판사가 위기를 맞을 것이란 예상이 있지만 어스본은 그런 우려를 하지 않는다. 지난달 어스본 CEO는 출판사 최초로 '영국 기업상(UK Private Business Award 2015)'을 받았다. 이 상은 날개 없는 선풍기로 유명한 다이슨 등 주로 혁신 기업이 받던 상이다.

피터 어스본. /주완중 기자
어스본 CEO는 옥스퍼드대 재학 시절 정치 풍자 잡지인 '프라이빗 아이(private eye)'를 창간한 것을 계기로 출판업에 발을 디뎠다. 프랑스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한 뒤 맥도널드 북스에서 처음 출판 일을 시작했으며, 아들 마틴이 태어나면서 1973년 어린이 책 출판사인 어스본을 창립하게 됐다.

어스본 CEO는 그의 경영전략을 5가지로 요약했다.

①먹고 싶을 만큼 맛있어 보이는 책을 만들라

"출판업을 하는 저의 좌우명은 '시각적으로 설레는 아름다운 책을 만들어라'입니다. 어스본의 책을 보면 마치 그림이 튀어나올 것처럼 색감이 뛰어나요. 색감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 소재죠. 입체 책은 일부가 위로 올라오면서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저는 앞으로 출판업계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미학적'인 부분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킨들 등 전자책이 등장하면서 출판업계가 어려워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요?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해 영국 전체에서 어린이 책 매출은 10% 가까이 증가했어요. 우리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고요. 전자책이 활자를 전달한다는 기능적인 면에서 물론 뛰어나지만, 아름다운 혹은 멋진 종이책을 소유하고 싶은 소비자의 욕구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종이책 시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더군다나 최근 영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여성의 대학 진학 비중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30년 전만 해도 유럽 여성 5%가 대학에 진학했는데 지금은 45~50% 이상이 진학합니다. 이들은 사회에 나와 일을 하고 있는데, 교육 수준이 높은 어머니일수록 책의 중요성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린이에게 침대에서 킨들을 쥐여줄 순 없겠지요? 어린이 출판업계는 전자책이 쉽게 넘볼 수 없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피터 어스본. /주완중 기자
②스타 작가를 기다리지 말고 출판사의 브랜드를 구축하라

"대부분의 출판업계가 영세한 이유는 브랜드를 구축할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타 작가를 앞세울 뿐 출판사의 이름을 알릴 생각을 하지 않아요. 예컨대, 해리포터를 쓴 조앤 롤링 같은 작가만 나타나 준다면, 출판사는 어마어마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마치 할리우드 영화 찍듯이 작가 발굴에만 힘쓰는 곳이 많아요. 하지만 '제2의 해리포터'를 기다리는 일은 복권 당첨을 바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출판업체도 하나의 기업이자, 브랜드입니다. 지속 가능하려면 작가에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최고경영자가 주체적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해 올해, 앞으로 5년 뒤, 10년 뒤의 업무를 계획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스본의 다음 행보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일관성 있게 한 방향으로 일을 추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매해 새로운 나무를 심는 게 아니라, 한 나무에서 가지를 치는 것이지요. 영국 등 유럽 어느 국가를 가도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대부분 어스본의 브랜드 로고를 알아봅니다. 이 열기구 로고를 보면, 책의 질(質)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고 소비자들은 인식하고 있지요. 출판업계에서 이렇게 출판사의 이름만으로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는 경우는 펭귄 출판사 정도입니다. 스타 작가를 발굴하게 되면 일확천금이 가능하지만, 기업을 지속 가능하게 키우는 것은 소비자의 신뢰를 바탕에 둔 브랜드 구축입니다."

③모든 책은 내부 직원을 통해 제작

"어스본의 모든 책은 모두 사내에서 기획하고, 쓰고, 디자인합니다. 물론 우리 직원들이 모든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종종 외부 사람을 초청할 때는 있지요. 예컨대 공룡에 대한 책을 쓸 경우, 공룡 전문가를 불러, 어스본 작가에게 공룡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치게 합니다. 하지만 결국 어린이와 소통하는 방법에 정통한 작가들이 책을 씁니다. 특히 어스본은 책 디자인까지 직접 합니다. 대부분의 영국 출판사는 책의 디자인 업무를 외주에 맡기지요. 하지만 어스본은 현재 사내에 디자이너 65명을 두고 있으며, 이는 영국 출판사 중 가장 많은 수입니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디자인은 어스본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만약 매번 다른 외주 직원이 책을 디자인하게 된다면, 제품의 일관성이 떨어지게 되고, 제품을 봤을 때 어스본의 브랜드가 바로 떠오르기 어렵겠지요. 이 때문에 지금까지 모든 책은 100% 사내 제작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④남들이 보고도 놓치는 틈새 찾아야


"어스본은 만지면서 다른 촉감을 체험하거나, 스티커를 떼었다 붙이거나, 가위로 종이를 잘라 꽃을 만드는 등 놀면서 배우는 '액티비티 북'을 처음 만들었습니다. 전자책은 확실히 따라올 수 없는 분야지요. 앞으로 온라인과 모바일이 대세라고 하지만, 디지털이 절대로 따라올 수 없는 시장도 분명히 있습니다. 이 때문에 컴퓨터나 모바일이 제공할 수 없는 경험을 주는 것이 앞으로 출판업계의 중요 과제가 될 것입니다.

어스본은 남들이 하지 않는, 혹은 보고도 놓치는 틈새시장을 목표로 합니다. 다른 출판사들이 하지 않는 것이나 미처 못 보고 놓친 작은 분야들을 붙잡아 언제나 남들보다 더 잘해내야 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그동안 예술과 그림, 어학, 요리법, 소설 등 폭넓은 주제를 담은 어린이 책을 출간해온 것입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남들이 생각지 못한 시장을 창출해낼 것입니다."

⑤모든 직원이 안심하고 일하게 해야

"어스본의 가장 큰 재산은 직원입니다. 창업 이래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직원도 해고한 적이 없습니다. 200명이 넘는 직원이 현재 어스본에서 일하고 있는데, 20년이 넘게 일한 사람이 30% 정도 되고, 직원들 평균 근속 기간은 10년이 넘어요. 더군다나 편집장 제니 타일러는 지금까지 41년간 저와 일해 왔습니다. 베테랑 직원이 많기 때문의 책의 수준을 더 잘 유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위험을 싫어하는 편이에요. 갑자기 새로운 아이디어가 번득 떠올라 위험을 무릅쓰고 도박을 거는 편이 절대 못 됩니다. 그래서 직원들을 대할 때도 항상 위험을 생각해요. 물론 일을 못하는 사람도 가끔 보았지요. 그때 제가 한 고민은 '이 사람을 자르면 이익이 좀 더 남겠지만, 다른 직원들이 불안해하면서 근무 환경이 나빠지지 않을까'였습니다. 결국 저는 그 사람에게 약간의 경고를 하는 선에서 그쳤는데,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창업 40년 넘은 어스본이 지금처럼 가족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있어 '단 한 명도 해고하지 않은 회사'라는 타이틀이 큰 도움이 됐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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