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밑바닥 '삐딱이'처럼 혁신하라

    • 키라 마야 필립스 '미스핏 이코노미(The Misfit Economy)' 저자

입력 2015.09.26 03:04

사회 부적응자의 도전
구글·애플같은 기업만 혁신하나
해커·마약 밀매업자·해적처럼 엉뚱한 일 벌이는 '삐딱이 혁신' 주목

키라 마야 필립스
키라 마야 필립스
드웨인 잭슨은 영국의 마약 밀매업자였다. 마약을 밀수하려다가 경찰에 체포됐고, 2년 반 동안 교도소에 수감됐다. 런던 동쪽에 있는 보육원에서 자랐고, 15세에 퇴학을 당했던 그는 흔히 볼 수 있는 사회 부적응자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보통 재소자들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 멀뚱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대신,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감옥에서는 컴퓨터를 쓸 수 없었지만, 그래도 방법은 있었다. 그는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가장 필요한 자원이 없었지만 방법을 찾은 셈이다. 잭슨은 감옥에서 익힌 지식을 바탕으로 출소 후 프리랜서 웹 개발자로 일했다.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 영수증을 정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곤 했다. 그래서 그는 각종 거래를 정리해주는 회계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다. 결국 2006년에는 '캐시플로(Kashflow)'라는 회사를 차렸고, 매달 수수료를 받는 방식으로 이 프로그램을 작은 기업들에 팔았다. 현재 2000개가 넘는 스타트업이 그가 개발한 제품을 쓰고 있다.

모두가 구글, 애플, 아마존 같은 기업의 혁신을 배우려고 한다. 하지만 혁신은 위대한 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삐딱이(misfit)'라고 불리는 이들에게 주목하라고 말하고 싶다. 드웨인 잭슨 같은 사람이 삐딱이의 좋은 예다.

삐딱이들은 창업자들과 비슷한 점이 많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열정과 도전을 통해 원하는 것을 성취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차이도 있다. 삐딱이들은 기존 체제에 반대하고, 약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순탄치 않은 환경에서 자란 경우가 많다. 그래서 타격을 받아도 잘 회복한다. 자기 사업을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위기에 잘 대처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시스템에 도전한다.
삐딱이 이미지
Getty Images/멀티비츠
삐딱이들은 대체 어떤 방법으로 혁신을 이룰까. 우선은 허슬(hustle)이다. 핑계를 찾는 대신에 어떻게든 방법을 찾는다는 뜻이다. 영국 의사인 헬레나 라이트는 1917년 정자 기부를 최초로 시도한 인물이다. 오늘날 정자은행과 불임치료 센터는 20억달러짜리 산업으로 성장했지만, 당시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이 의사는 여성 환자 한 명당 현재 가치로 약 600달러를 받고, 젊고 잘생긴 남자를 보내 여성들의 임신을 도왔다. 어떻게든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는 목적의식이 그가 이전엔 상상도 못 하던 방법을 생각해내게 만들었다.

해킹(hack)도 삐딱이 혁신의 키워드다. 여기서 말하는 해킹이란 기존의 것에 덤벼들어 더 좋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시스템을 속속들이 파악해 효율적으로 분해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힘이 생긴다.

18세기 해적의 예가 있다. 당시 상선에서 일하는 선원들의 삶은 비참했다. 돈을 위해 노동을 파는 신세에 불과했다. 모험에서 성과를 얻어도 이에 대한 지분이 없었다. 그러나 해적들은 기존의 상선 시스템을 해킹한다. 즉 시스템을 해체한 후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재구성했다. 선장, 즉 지도자를 민주적 선거로 뽑았고, 권력의 분산을 위해 갑판수라는 2인자 직책을 만들었다. 최고 권력기구는 선원 전원으로 구성된 총회였다. 총회는 정기적으로 열려 보급품의 배급이나 목표물의 선정, 공격 개시 여부 등을 결정했다. 상선에 존재했던 계급 체계의 재편, 즉 해킹을 통해 당시 해적들은 해적선 위에서 진정한 권한을 누리게 됐고, 이는 성공적인 경제 모델이기도 했다. 1715~1728년 영국의 해운산업은 성장률이 제로였는데, 이는 악명 높은 해적들이 맹위를 떨친 시기와 일치한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의 직장 문화와 독특한 경영 방식을 '해커 방식'이라고 정의한다. 페이스북 사무실에는 '완성된 것이 완벽한 것보다 낫다'라고 쓰여 있다.

페이스북은 테스트 플랫폼을 만들어 직원들이 아무 때나 새로운 웹사이트를 시험하고 수정할 수 있게 했다. 이것이 바로 해킹이다.

복제(copy)도 삐딱이들이 하는 혁신의 일부다. 혁신을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중국 전역에 걸쳐 창업자들은 '산자이(山寨)'라는 과정을 통해 '부자'들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한다. 산자이라는 용어는 브랜드나 상품을 도용하거나 복제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산자이에는 단순한 모조품이 아니라 소비자의 구미에 맞춰 상품을 개량한다는 개념까지 포함되어 있다. 산자이가 명백한 범죄이자 절도라는 비판도 있지만, 기존의 제품을 단순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수 시장과 저소득 소비자를 겨냥해 기술을 응용, 발전시킨다는 점에서 그 독창성을 높이 사는 이들도 있다. 산자이 창업자들은 유명 브랜드 제품의 5분의 1 가격에 휴대폰을 만들어 판다.

하지만 모든 것이 해킹이나 복제에서 출발할 수는 없다. 결국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려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도발(provoke)'이다. 도발은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무언가를 상상하도록 만드는 것을 뜻한다. 모든 답을 알고 있지 않아도, 심지어 답을 하나도 몰라도 상관없다. 새로운 대화가 시작되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불만을 조장하고, 대안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족하다.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은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다녀온 뒤 방송에 출연해 쥘 베른의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를 언급한다. 그 소설은 우주여행에 관한, 증명되지 않았던 수학적 계산들로 가득하다. 나사(NASA)에 있는 경제학자를 인터뷰했는데, 그의 동료 대부분이 공상과학 커뮤니티에 가입해 있다고 한다.

좋은 생각이 떠오른 다음 해야 할 일은 방향 전환(pivot)이다. 주변인들을 설득하고,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엉뚱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그 이후에 아이디어를 엄호해 줄 세력을 찾는 것은 더 어렵다. 이 때문에 조직 내에서 성공한 삐딱이가 되려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가령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진할 때, 예산을 틀어쥔 사람과 친해지는 것도 방법이다.

순서를 따져보자면 도발이 처음이고, 그다음은 허슬이다. 생각을 하고 일단 어떻게든 저질러야 한다. 저지르는 과정에서 해킹도 하고, 복제도 하면서 아이디어를 다듬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하면 주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것이 전환이다. 다른 사람에게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협업을 하는 것이다.

삐딱이 기질을 가진 인재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테스트를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기존 체제에 들어와서 잘할 수 있는가를 테스트하지 말란 이야기다. 삐딱이들은 조직에 잘 적응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기존 조직의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고, 그 사람의 강점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아울러 삐딱이들을 조직에 데려오면,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그들에게 시간을 줘야 한다. 단기적인 관점에서 그런 결정이 비생산적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에 쫓겨 삐딱이들을 부추기는 것은 그들이 이룰 수 있는 창조나 혁신을 얻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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