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도 못했다, 석유개발 기술을 헬리콥터에 쓸 수 있다니… 9개 자회사가 서로 기술 공유하는 'GE 스토어'의 힘

입력 2015.09.19 03:04

키어란 머피 GE헬스케어 대표에게 들어본 'GE 기술융합 시스템'

글로벌 기업 제너럴 일렉트릭(GE)에는 'GE 스토어'라는 것이 있다. 애플 스토어나 구글 스토어처럼 GE 제품을 사는 온라인 상점이 아니다. GE 그룹의 엔지니어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연구 결과를 공유하고 새로운 기술 개발을 위해 논의하는 플랫폼을 뜻한다. 흔히 이런 모임이나 장(場)을 가리킬 때 '콘퍼런스' 혹은 '미팅'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왜 굳이 '스토어'라고 할까.

워크아웃 타운홀(관련자들이 부서와 지위에 관계없이 격식 없이 모여 토론하는 모임), SWOT 분석(강점·약점·기회·위협을 각각 고려해서 전략을 짜는 것), 전략 계획(Strategic Planning), 6시그마(엄격한 품질 관리 시스템) 등 수많은 현대 경영 전략을 고안하거나 발전시켜 낸 GE는 최근 '기술 융합'에 주력하고 있다. GE 스토어를 통해 자회사 간 기술의 벽을 허물고, 새로운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이 플랫폼을 스토어라고 부르는 이유는 마치 '선반 위에 다양한 제품이 놓여 있듯 신기술을 둘러볼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쇼핑하듯 다른 계열사의 기술을 구경하고 필요한 기술을 가져다 쓰는 것이다. GE 스토어를 통해 풍력발전 기술을 열차 운행에 도입해 효율성을 높였고, 석유를 개발하던 기술을 헬리콥터에 적용했다.

GE는 1878년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설립한 에디슨 전기가 모태인데, 사업 다각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다국적 기업이다. 과거 전구 램프를 생산하던 GE는 에너지, 석유·가스, 헬스케어, 금융, 항공, 운송, 리서치 등 9개의 자회사로 나뉘어 있다. 각 사업부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 기업인 셈인데, GE의 각 자회사가 어떻게 다른 회사와 시너지 효과를 내는지 듣기 위해 영국 런던 북서부 근교에 있는 리틀 챌폰트(Little Chalfont)에서 키어란 머피(Murphy·52) GE헬스케어 글로벌 라이프사이언스 대표를 만났다. GE는 그룹 내 가장 빨리 성장하는 3대 유망 분야로 석유·가스, 분산 발전(distributed power)과 함께 라이프사이언스(생명과학)를 꼽고 있다.

2008년 GE헬스케어에 합류하기 전 머피 대표는 노바티스와 이노바타 등 다수의 글로벌 바이오·제약회사를 거쳤다. 총 25년간 헬스케어 산업에 몸담은 머피 대표는 "현재 3D 프린팅으로 생체 장기를 만드는 연구를 진행 중"이라며 "기술의 경계를 허물어야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
그래픽=박상훈 기자
―헬스케어 업종에서 오래 일하셨는데, GE헬스케어가 다른 회사들과 어떻게 다른가요?

"큰 회사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장점이 많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직원이 30만명, 연 매출은 1000억달러 이상입니다. 에너지, 금융, 항공 등 다양한 산업군의 자회사가 있기 때문에 많은 노하우를 공유하기 쉽습니다. 최근 들어 자회사 간 협업이 더 강조되고 있고 훨씬 체계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뉴욕, 뮌헨, 상파울루, 방갈로 등 6개 도시에 리서치 센터를 가지고 있어요. 여기에 속한 5만명의 엔지니어뿐 아니라 영업, 운영 쪽 직원도 정기적으로 모여 각자의 아이디어와 툴(tool)을 공유합니다.

석유회사 종사자는 보통 금융사, 항공 제조사, 헬스케어사에서 어떤 기술을 이용하고 어떤 기술을 필요로 하는지 모릅니다. 다른 회사의 혁신 사례를 듣다 보면, 우리 회사에서도 어떤 기술과 노하우를 도입할지 고민하는 시야가 넓어집니다. 헬스케어 회사라고 헬스케어 업종의 사례만 들여다보고, 기존의 헬스케어 기술만 공부한다면, 다른 헬스케어 회사를 뛰어넘을 만한 혁신을 이루긴 어려울 것입니다.

GE 스토어의 장점은 여러 자회사가 비슷한 연구를 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의 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20세기는 분업화와 전문화의 시대였습니다. 과거에는 분업 제도를 활용해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그 전담 부서가 특정 업무를 반복하는 구조였습니다. 한 가지 일을 계속 파는 사람이 그 일을 가장 잘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담당자의 의견이 중요했지요. 이 때문에 현대인들은 특정한 분야나 기술에 '특화된 기업'이 우월하다고 흔히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근 트렌드는 다릅니다. 서로 다른 산업군을 두루 이해하며, 각자의 장점을 활용하는 융통성과 창의력이 필요합니다. 즉, 사회적으로 여러 분야의 경계를 허물고, 기존의 영역 구분을 뛰어넘는 융합이 연구개발(R&D)의 대세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룹 내 중복 투자를 줄이고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대형 그룹이면 다 시도하는 일인 텐데요, 정보 공유의 노하우가 있습니까?

"GE그룹은 상당히 크기 때문에 개발 자회사에서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서로 모르고 있기 쉽습니다. 이 때문에 자회사별 프로젝트 간 연결 고리를 찾고 유사 프로젝트는 팀들이 함께 작업하도록 지원합니다. 다양한 신기술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또 빅데이터, 3D 프린팅, 사물인터넷(IoT) 등 앞으로 산업 지형을 바꿀 새로운 기술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각 분야의 전문가가 다른 기술의 쓰임새까지 파악하긴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GE 스토어에서는 각 분야의 엔지니어가 서로를 가르쳐주고, 연구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해오던 연구의 돌파구를 찾기도 합니다."

―구체적으로 시너지 효과가 난 사례가 있었나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대체에너지 회사인 GE파워앤워터는 '모델 기반 제어'라고 불리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이는 바람의 크기나 방향이 어떻게 변할지 정확히 예측하고, 풍력발전용 터빈을 움직여 가장 유리한 각도에서 바람을 포집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인데, 이 기술로 에너지 생산량이 20% 증가했습니다. 한데 GE는 이 기술을 운송 산업에도 적용해 열차 운행을 개선했습니다. 현재 전 세계 주요 철도회사가 사용하는 '트립 옵티마이저'라는 제품인데, 열차마다 평균 10%의 연료를 꾸준히 절약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석유 개발 기술을 헬리콥터 만드는 데 쓰기도 했습니다. GE오일앤가스에서는 원유에 접근하기 위해 고성능 회전 기계 기술을 개발했는데, 이 기술은 GE항공의 헬리콥터 터보에 쓰였고, 이후 GE운송의 기관차에도 적용됐습니다.

또 GE헬스케어가 사용하던 암 진단 CT를 가지고 GE오일앤가스는 바위의 샘플을 분석해 원유를 탐사하는 데 활용하고, GE항공에서는 엔진 재료 부품의 안전성을 검사합니다."

신기술에서 앞서나가야 선점할 수 있어

GE는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개척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진 회사다. 신약과 새로운 의료기기 연구에만 힘쓸 것 같은 GE헬스케어도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3D프린팅 기술을 모두 활용한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머피 대표는 "새로운 기술을 재빠르게 도입하고 개발하는 것은 발명가로부터 시작된 GE의 기업 문화"라며 "특히 최근에 나온 기술들은 앞으로 산업의 모습을 완전히 바꿀 수도 있기 때문에 헬스케어회사뿐만 아니라 전 업종이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GE 스토어 같은 전략은 GE처럼 원천 기술을 보유할 능력이 되는 소수의 기업만 가능한 것 아닌가요?

"회사 내부에서만 기술을 공유한다고 가정하면 그렇겠지요. 하지만 계열사가 없다고 해도, 충분히 다른 회사 혹은 연구소와 제휴를 통해 기술의 시야를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최근 주요 기술은 판매와 마케팅 채널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점점 한 산업군에만 국한된 기술은 없어지고 있다고 봐요. 최근 화제가 되는 기업들의 혁신 모델을 연구하는 것도 비즈니스에 큰 도움이 되는 방법입니다."

―R&D에 대한 투자가 상당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발명가 에디슨이 시작한 회사 아닙니까.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것처럼,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발명품은 GE에서 나온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모든 자회사마다 R&D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3D 프린팅은 최근 가장 주목하는 연구 중 하나인데, 그룹 차원에서도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고, 우리는 그중에서도 3D 바이오 프린팅에 대한 개발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인체에 친화적인 재료를 이용해서 3D 프린터로 심장이나 폐, 간 같은 장기를 만드는 것이지요. 혈관이나 근육 같은 단순한 기관은 이미 가능해졌고, 실질적으로 주요 장기를 프린트해내는 것은 미래의 기술 발전에 달렸습니다. 상상해보세요. 이런 기술이 현실화된다면 미래의 임상 연구, 신약 개발과 실험, 궁극적으로 장기 생산 및 이식에 활용되어 헬스케어 산업에 큰 혁신을 가져올 것입니다. 전구처럼 세상을 바꿀 기술을 선점해야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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